미역국이 심심해갈즈음... 간을 더하는 대신 엄마가 보내온 김치를 곁들였다. 조금 짤테니까 무 하나 사서 잘라 넣어 먹으라던 엄마. 짜다고 하면 짜지 않고 싱겁다 말하면 싱거운 적 없던 엄마밥. 갓과 쪽파, 푸른 채소들이 함께 버무려져 더욱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김치를 담가 보내고도 엄마는 걱정이었다.
김치는 송송 썰리어 넓은 물침대를 사이좋게 둔눠 있었다. 엄마의 작은 손이 겹겹이 쌓여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종일 바깥일을 하다 말라버린 손등 같은 그것을 나는 억지로 뒤집어 손바닥으로 꾹꾹 맞잡아 눌렀다. 이제는 성치 않은 몸으로 부러 집에서 김치를 담그면서도 어떡해야 아들이 좋아할지 마음 쓰다가 기어이 커다란 플라스틱 반찬통을 새로 사서 깨끗이 씻기고는 또 살근살근 김치를 썰어 담으셨을 엄마의 시간들을 주욱 떠올리니... 한점 입에 담기가 어렵고... 벌써 이만큼 힘든데... 이 많은 조각들을 언제 다 소화할 수 있을까. 이해할 수 있을까. 못난 아들은.
필요한 게 있는지 물으면 맨 없다고 말하는 아들이 얼마나 가슴 시고 걱정될는지 알지 못하는 나는,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까 이제도 없었으면 좋겠다. 꿈도, 기억도, 순간도, 시침처럼 또각또각 다가오는 두려움과 때때로 그 두려움을 조각내는 사랑조차 더는 느낄 수 없도록...
사랑받는 것이 고통스러울 때... 내 안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염炎이 있다. 알고 싶지 않아 숨겨둔. 보고 싶지 않아 하얗게 칠한 액자 같은 것이. 덧칠해도 또렷한 그것이... 녹아내리며 맺히는 눈물. 떨어지려 맺히는 눈물. 멀리 사라지려 떨어질 때... 그제야 김치가 짜다고 나무랄 사람아. 톡톡 소리 내 우는 김치처럼 참아온 줄도 모르고 농들은 피막을 한꺼번에 터트릴 몹쓸 자식아.
나에게는 손가락 있고 이빨도 있고... 칼도 가위도 있는데 그 모든 것 필요치 않는 큰 사랑 속에 내가 있네. 그 사랑... 우리 아들, 예쁜 아들 소리로 노랗게 묵어가네.
......
담배만큼은 잔소리 않던 엄마.
이제는 엄마가 바라는 모습도 보여주고 싶은데.
그 모습 무언지 아무도 모르게 되었네.
담배는 어쩔 줄 모르는 맘 쉽사리 달래 보내고.
엄마 생각 날 때면 뭘 태워야 하나.
무엇으로 나를 앓아야 하나.
나의 불행 데려갈 곳 어데이고.
내 그리움 사무칠 곳 어데인가.
살아가는 건 잊는 것일 텐데.
살아가려나 잊은 척.
잊으려나 살아있는 척.
그럴 리 있나.
정말 그럴 리가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