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런 회고

300K보다 중요한 것

by 조아

새해가 되면 신년 일출 명소에서 밝게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한 해를 맞이했던 적이 있다. 일출의 감흥을 가슴에 담아 새해 계획을 작성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지키지도 못할 거창한 계획보다는 진짜 지킬 수 있는 한두 가지 목표에 대해 고민하고 달성 방법을 고민한다.



발목 상태가 좋지 않지만 장거리 달리기 훈련과 함께 2026년 맞이 20.26K 달리기를 하고 싶어 지난 일요일 홀로 율하천을 달리며 2025년을 다시 돌아보았다. 2025년, 나는 2,232km를 달렸는데 숫자로만 보면 꽤 성실한 한 해였다.


달리기 애플리케이션에 쌓인 누적 거리는 내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는 증거처럼 느껴졌고, 달력 위에 체크된 러닝 기록들은 하루하루를 성실히 통과해 왔다는 작은 훈장 같았다. 달리지 않은 날보다 달린 날이 더 많았다는 사실은, 적어도 나 자신에게만큼은 떳떳해질 수 있는 이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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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2026년 1월을 앞두고, 나는 또 하나의 목표를 세웠다. 월 300km. 분명하고 단순한 목표였다. 애매함이 없다는 점에서 마음이 편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목표를 마음속에서 몇 번이고 되뇌는 동안, 몸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오른쪽 발목이 자주 불편함을 드러냈고, 달리고 난 다음 날이면 이전보다 회복이 더디게 느껴졌다. 예전 같았으면 무시했을 신호였다. ‘이 정도는 참고 넘길 수 있다’는 생각은 늘 나를 더 멀리 데려다주었으니까.


러너는 숫자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킬로미터, 페이스, 누적 거리, 평균 속도. 이 숫자들은 훈련을 객관화해 주는 도구이자, 스스로를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특히 ‘꾸준함’을 삶의 중요한 가치로 삼아온 사람에게 마일리지는 정체성과도 같다. 숫자가 줄어들면 마음이 먼저 흔들리고, 훈련을 덜 한 날은 마치 게을러진 하루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번에는 질문을 조금 바꿔 보기로 했다. 2월에 열릴 대구마라톤을 떠올리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300km를 채운 몸으로 출발선에 서고 싶은가, 아니면 멀쩡한 발목으로 서고 싶은가. 그 질문 앞에서 생각은 길어지지 않았다.

답은 이미 몸이 알고 있었다.


달리기는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래 하는 사람의 운동이라는 말을 이제야 이해하게 된다. 오래 달리기 위해서는 언제나 앞으로만 나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멈추는 법과 줄이는 법도 함께 배워야 한다. 덜 달린 하루가 실패가 아니라 하나의 설계가 될 수 있을 때, 달리기는 비로소 삶과 닮아간다.



그래서 나는 이번 겨울, 300km를 목표로 삼되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숫자를 증명하기 위해 몸을 쓰는 대신, 다음 계절을 위해 몸을 남기기로 했다. 출발선에 서는 것이 완주보다 중요하고, 완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시 달릴 수 있는 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쩌면 이번 훈련의 시간은 기록을 경신하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태도를 배우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더 많이 달리는 방법이 아니라, 언제 덜 달려야 하는지를 아는 감각. 그 감각이야말로 앞으로의 달리기를 더 길게, 더 깊게 이어주리라 믿는다.


300km보다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다. 다음 달에도, 다음 해에도, 나는 여전히 달리고 있을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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