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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러더스 Apr 23. 2022

기념품샵에서 일하면 벌어지는 일들


캐나다 사람들은 정말 친절하다. 본인들 말로는 '그렇게 교육받았기 때문'이라거나 넓은 토지, 무상 의료, 높은 복지 수준 등 여유롭지 않으면 이상할 배경때문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내가 도착했을 때, 유난히 뛰어난 이곳 경치를 보고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게 무엇인지 단번에 느꼈을 정도니까. 하지만 내가 만나는 캐나다 사람들은(아직까지는 국내여행자가 대부분이다) '정말로' 친절하다. 하기사 누가 기념품샵에서 난동을 피우고 소위 '갑질'을 하겠어...


하지만 그만큼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연유로, 이번에는 특색있는 짧은 에피소드 몇 개를 소개할까 한다.


네? 여기서요? 이런 질문을요?
Sanitary pad있나요?

내가 일하는 곳은 리터럴리 프론티어다. 특정 경로로 도착하는 손님들에겐 처음 보는 가게라서 화장실 및 음식점이나 우체국 또는 ATM 위치, 버스 시간 등을 자주 묻곤 한다. 때로는 Gravol(멀미약), Advil(두통약)을 찾기도. 그러다 최근에 급히 들어온 어떤 손님 왈. 


여기 Sanitary pad 있나요?

"(위생대...? 그게 뭔데) 네?"

"오우, 탐폰! 유노?"


아! 한국에선 위생용품이라 부르는 그것! 생리대! 처음에는 Passport cover로 들었다. 대체 어떻게 되먹은 고막인가. 이레서 어휘가 중요하다. 물론 우리 가게에 없으므로 손님은 나갔다는 후문.


아기 분유는 인정이지

일하기 시작하고 삼일 쯤, 폐장 직전에 들어온 한 부부. 대뜸 묻는다.


전자레인지 좀 써도 될까요?

그... 기념품 샵에서요?


"(일동 당황) 아뇨, 우린 전자레인지가 없어요. 죄송합니다."

"아... 사실은 아기 분유를 데워야 하거든요."


정말 삼성은 어딜가나 있다. 몇 년도 유물인지는 모르겠다.


그러셨구나. 오랜만의 특이한 질문에 놀랐던 베테랑 할머니도 이해한다는 듯 웃었다. 미안하지만 사실 우리는 전자레인지가 있다. 직원 전용인지라 차라리 거짓말을 하는 것. 그렇게 손님은 사과를 하더니 돌아갔다더라.


가끔은 이런 손님도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여기는 진상이 정말 없다고 보면 된다.(아직까진) 뭐, 요리 업종의 사람들 말로는 한국같은 진상은 없어도 가격표 10센트 하나로 민감하게 구는 진상은 종종 나온다고 한다...실제로 이 쪽도 만만치 않게 골치아프다고. 여긴 없다. 그치 아무래도 일년 전 기념품 가격을 기억하는 관광객은 없으니까 요즘 국내에서 대두하는 '젊은 진상' 현상이 새삼스럽게 다가올 정도. 하지만 가끔가다 진상인지 아닌지 애매모호한 사람들도 있다.


전설의 coin holder(literally)

외국인이 캐셔를 할 때 가장 골치 아픈 건 캐나다의 동전 시스템이다. 2달러(투니), 1달러(루니), 25센트(쿼터), 10센트(다임), 5센트(니클)가 모두 동전인 데다가(심지어 5센트가 10센트보다 크다. 아~ 헷갈려!), 몇 년 전 정책이 바껴 1센트(페니)가 사라진 뒤로 요상한 반올림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차라리 5를 기준으로 버리고 올리면 나으련만, '5'를 기준으로 1,2는 '0', 3,4,6,7은 '5', 8,9는 다시 올려 '0'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아놔.

그런데 일한 지 2-3일 차에 한 가족이 등장한다. 자잘구리 두개를 구입하고선 카운터에 흩어지는 수많은 동전들... 그렇다, 이 사람은 심지어 1달러나 2달러 동전을 사용할 마음도 없었다. 쿼터는 양반, 다임이나 니클로 전부 계산하려고 드는 탓에, 편의점에서 10원으로 계산하는 사람을 만난 아르바이트생의 기분을 느꼈다. 


왼쪽부터 루니(2), 투니(1), 쿼터(0.25), 다임(0.1), 니클(0.05). 캐나다는 기념주화가 참 많다. 상기 동전 중 5센트를 제외하곤 모두 일반 동전과 다른 뒷면.


하지만 한국인은 지치고 힘들 때 웃는다던가. 일한 지 얼마 안 된 차에 잘됐군, 동전을 익힐 시간이다!하고 괜시리 웃음이 나오며 열심히 동전을 셌다. 아침에 먹은 샌드위치에 약이 잘못 들은 게 분명하다. 아무튼 남편으로 추정되는 사람과 나와 할머니 셋이서 동전을 모두 세고 그의 아내가 하는 말,


왜 가격이 더 비싸죠?


그렇다, 캐나다는 다 계산하고 나서 택스가 붙는다... 아주 개떡같은 시스템인 건 모두가 인정. 심지어 주정부세금+연방정부 세금 합하면 10%가 훌쩍 넘으니 관광객 입장에선 분통터질 수밖에. 하지만 다 계산하고 나서 딴지걸 필요가 있었나요.

열심히 설명하고 그들이 돌아간 후에 정작 동료들이 계속 걱정과 위로를 해줬다. 그 다음 주까지! 사장까지 나서서 위로해 주는데, 그들이 느끼기엔 정말 mean했다고 한다. 이상도 하지, 내 입장에선 진상 수준에도 못 끼는데.


나는 퀘백에서 왔어!

정말로 진상은 따로 있다. 이 일에 어느정도 적응했을 무렵, 부활절 휴가가 시작되자 정말로 손님들이 평소의 세네배로 몰려들었다. 여기서의 Easter는 Good Friday, Easter Saturday, Easter Sunday, Easter Monday까지 합해 자그마치 4일을 기념한다. 심지어는 진짜로 휴가를 주는 직장도 가끔가다 있으니 말 다했지 뭐. 동료에 의하면 Thanksgiving보다 더 기념일같은 느낌이라고. 아무튼 미사가 끝나는 점심쯤 손님이 닥치는 대로 몰려들어 중국에서 온 직원과 함께 포장과 계산을 하며 분주한데, 웬 아저씨가 미친 듯이 말을 건다. 


퀘백 때문인지 모든 상품엔 불어가 함께 써져 있다. 이상도 하지... 내가 만난 캐나다인들은 대부분 프랑스어를 모르던데.


"안녕, 난 퀘백에서 왔어. 우-후!"

"그러셨군요.. 와, 퀘백!" 

"(프랑스어???)@$%#%$"


지금 내 욕하나..


"아 알버타는 너무 추워!"


???


"배! 배 시간에 늦었어! 빨리빨리"

"오케이"

"오 괜찮아 랄라라랄ㄹ#$@$%@$@$%!~ (잔인한 혼잣말 연속)"


이 사람 뭐지... 일에 혹사당해서 드디어 영어가 안 들리기 시작한 건가, 분명히 말을 하는데 종잡을 수가 없다. 혹시나 나와 내 중국인 친구가 빠릿빠릿하지 못하다고 불평하는 걸까봐 슬슬 기분이 나빠지려는 찰나, 계산이 끝났다. 안녕히 가세요, 하자마자 빠르게 사라지는 그 남자. 사장은 가게 한 편에서 옷을 접는 중이었다. 그리고 시작된 Break.

가만가만 밥을 먹으면서 생각해보니 갈수록 기분이 나빠진다. 혹시나 내 예상이 맞다면 손님 앞에서 외국인 직원 둘을 바보로 만든 셈. 다 먹고 나서자마자 사장에게 묻는다. 저기, 아까 들어온 손님 있잖아요.


"그 시끄러운 사람, 음, 그러니까 말이에요...그 사람 aggressive하다고 느꼈는데..."

"오우! 아냐! 그 사람은 harmless했어! 그냥 술취했거나, 아니면, 음, 약을 한 거일수도 있지."

"Homeless요? 그런 것 치곤 많이 사가던데." (진심으로 말하지만 harmless 단어는 안다. 일상 속 대화에서 사용해본 적 없어 단번에 못 알아들었을 뿐...)

"노놉, 내 말은, aggressive하지 않았다는 뜻이야. 걱정 마, 여름이 되면 이런 사람들 자주 보게 될 거야."


그랬구나... 어쩐지, 술 취한 것 같긴 하더라. 조용히 담아둔 또다른 한 가지 가능성에 확신을 얻자 불쾌한 감정이 사라졌다. 하지만 하나의 확신. 저건 약이다. 술 취한 사람치고는 눈이 맑고 광기가 있었기 때문에... 아무튼 신기한 점은 직원들이 이 사람을 진상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것. 정말 이상하다. 나였다면 동전 손님은 그냥 까칠한 손님, 이 사람은 진짜 진상이었을 텐데.


덧, 우리도 실수를 한다
살다보면 엽서 300장 정도는...

이건 내 동료 D양의 이야기. D양은 머리가 아주 빠릿빠릿해 온 지 2주만에 인수인계를 할 정도로 베테랑같아 보인다. 하지만 지켜본 바 그녀도 아직 미숙한 부분이 있으니, 바로 Till(계산대). 내가 온 후 연습삼아 계산대를 도맡느라 나보다 휴일이 긴 그녀는 가끔가다 실수를 했다. 

평소보다 세 배의 매출이 나온 날, 싱글벙글하며 당일 판매기록을 본 사장님의 당혹스러운 얼굴. 


이것 봐, 엽서가 380장 넘게 찍혔잖아!


이 때 나는 조금 멈칫했다. 대부분의 계산업무는 내가 하기 때문. 하지만 자수하기 시작하는 D양. 


"오우, 쏘리. 나인 것 같아요..."


실상은 이랬다. 우리 계산대는 낡아서 바코드 없이 일일이 손으로 입력해야 하는데, 개수*금액이 아니라 금액*개수로 입력해 버린 것. 전체 금액이야 같다지만, 드디어 이 절차의 진가가 드러난다. 예를 들어, 카드가 60센트라고 치자. 당신에게 카드 6장을 준다. 이걸 6개*60센트가 아닌 60개*6센트로 계산하면 순식간에 엽서 360장을 판 셈...... 아아, D양... 그러나 기죽지 말자. 우리에겐 20년을 넘게 일한 정원사 출신 할머니가 있다. 사실상 이 공간의 구세주이신 분


이건 단지 우리 물건의 반일 뿐. 바코드 물류 방식이 아니라 개수는 정말 중요하다.


아아, 그리고 님은 갔습니다.

엽서 이야기의 후일담. 전체 판매기록 중 저 엽서 부분을 고치는데, 재난은 연이어 찾아오는 법이라 했던가, 한 사내가 티셔츠를 들고 나타난다. 그리고 에러가 나기 시작하는 계산대. 계산종이가 막혀 다시 꺼내 돌돌 감으며 그에게 사과를 한다.


"죄송합니다, 기계에 문제가 생겨서요."

"괜찮아요." (착한 척은)

"기다리는 동안 포장해 드릴게요."


그리고 그는 포장된 물건을 들고 나갔다. 잠시 후, 할머니의 말.


근데... 저 남자 계산했니?

"아아!" (D양)

"제가 뛰어가 볼까요?" (나)

"뭐.. 시도는 할 수 있지."


기세 좋게 뛰쳐나간 나는 문에 걸려 가판대 물건을 떨어뜨리고... 님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힘내, D양! 어쨌거나 이번 사건으로 교훈을 배웠잖아? 이상으로 언제나 즐거운 가게 이야기를 마친다. 여름에는 더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잔뜩 가져오길 바라며사실 안바란다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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