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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확행 Dec 08. 2023

살얼음 동동 컵라면을 들고 다니면

그것도 토요일 아침에


동네 사람들이 다 쳐다본다.




아이가 근신 중이다. 최근 크게 잘못한 일이 있었다. 벌은 주말에 친구들과 하는 모바일 게임 금지와 외출 금지. 주말만 바라보고 힘겨운 몸을 끌면서 일주일을 살아가는 건 직장인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 고단한 초딩 라이프에 큰 위로가 되는 모바일 게임과 농구가 사라졌으니, 주말 출근급만큼 마음이 답답하겠지.



벌을 받는 이유가 결코 가볍지 않아 감히 아버지께 '다른 벌은 안 되냐'며 물어볼 분위기도 못 된다. 남편이 절망에 빠져있는 아이에게 숨 쉴 구멍은 틔워 준다.

"플레이스테이션이랑 닌텐도 게임은 가능해. 농구는 아빠랑 같이 하고"

15년째 같이 살고 남편. 농구할 줄 아는 사람이었나? 갸우뚱하려는 차에 남편이 덧붙인다

"엄마도 같이 나갈 거야. 당신은 우리 사진 좀 찍어주고 책 읽으면 되겠네"



아니 이보시오! 내가 놀이터 졸업한 지가 언젠데 나더러 추운 토요일 아침 댓바람부터 아이들 노는 걸 지켜보는 목적으로만 집을 나서란 말이요? 주머니에서 손 꺼내기가 벌칙인 요즘 같은 날씨에 나더러 거기서 책을 읽으라고? 어이가 없어 한마디 하려는 순간, 첫째가 세상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를 좀 구해 달라고. 같이 나가달라고.





"엄마! 성당 같이 다니는 5학년 동생이에요. 아빠 오실 때까지 일단 같이 놀게요. 엄마는 놀이터 산책하고 계세요!"

아이는 벌써 아우터를 벗어던지고 골대를 향해 공을 쏘아댄다. 백만 년 만에 아이 노는 사진을 몇 장 남기고 돌아서는데 농구 코트 바닥에 떨어진 페트병이 내 발 앞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차인다.


이걸 코트 바깥으로 밀어내? 아님 주워?



집에 들어가는 길에 혹시나 슈퍼 들릴 일이 있을까 봐 챙긴 얇은 장바구니가 왼쪽 주머니에서 만져진다. 발에 차인 것만 주워볼까 싶었는데 코트를 쓱 살펴보니 골대 옆, 코트 펜스 여기저기 떨어진 페트병들이 여러 개다.

'야! 버리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냐!!'

500원짜리 크기만큼 커진 콧구멍에서 분노의 뜨거운 콧바람이 뿜어져 나온다.



고백한다. 매주 금요일 환경 관련 글을 써보겠다고 일을 벌이지 않았으면 100%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쓰레기를 버린 누군가를 탓하고, 우리 집 아이들은 저렇게 키우지 않겠다며. 딱 거기까지. 허나 글쓰기의 힘은 대단하지. '버리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냐'며 남이 버린 쓰레기 치우는 일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내 허리를 집플립 마냥 접히게 한다. 어느새 장바구니는 페트병들로 차 오른다.  





'이만하면 충분해!'

의도하지 않았지만 오래간만에 기후행동도 하고 글감도 사진도 얻었으니 남는 장사다. 농구코트를 지나 놀이터로 나오는데 내 눈길을 잡는 것이 또 있다. 나만 사로잡힐 수 없다. 여러분도 함께 해 보시라.  아래 사진에서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물건을 하나 찾으시면 된다.


위 사진을 보고 어울리지 않는 물건 하나를 고르시오.



힌트

정답 유출 수준



정답은 오른쪽 테이블 위에 놓인 먹다 남은 컵라면 (젓가락까지 고이 꽂혀있음)   



컵라면을 공원 테이블에 고이 두고 간 이여!

뚜껑까지 멀리 날리고 간 이여!

깨끗한 공원 테이블에 먹다 남은 컵라면을 당당하게 버리고 갈 만큼의 배짱은 접어두면서 살자. 이곳은 날씨 좋은 토요일 오후, 누군가의 어린 딸들과 아들이 나와서 즐겁게 뛰어노는 곳이 아닌가. 호기심 많은 꼬마가 엄마가 잠시 한 눈 판 사이에 혹시나 손이나 입이라도 대면 어떡하란 말인가. 당신에겐 어느 단란한 가족의 여유 있는 토요일 오후 시간을 망칠 그 어떤 권리도 없다.




동네 사람들이 날 쳐다본다.

오른팔을 어정쩡하게 뻗고선 젓가락 꽂힌 사발면을 들고 걸어가는 나를.

그것도 토요일 이른 오전 댓바람부터.



농구 코트에 요고 버리고 간 사람들. 혼꾸녕이 날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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