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에 병원 측에 전화하여 수요일에 아내를 일반 병동으로 옮기겠다고 전달했다. 병원 측에서는 당연히 보호자의 의견을 전적으로 따라야 하기에 이견 없이 접수해 주고 1인실과 4인실 중에서 어디로 옮기겠냐고 물어봤다. 어제 중환자실에서 간호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내가 현재 청력이 매우 예민해진 상태라는 것을 전해 들었기에 비교적 큰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한동안은 안정을 취할 수 있는 1인실에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자가면역뇌염 검사 때도 그랬듯이, 이런 것들로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라서 참 다행스러웠다.
오늘은 이전의 면회들과는 다르게 무척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아내가 일반 병실로의 이동 소식을 간호사들에게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기쁜 소식을 전해줄 생각에 처음으로 중환자실 면회가 기다려졌다. 본인이 회복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알면 힘을 내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있었다. 오늘은 병원에 혼자 방문하기로 했다. 어차피 중환자실 면회도 내가 들어갈 예정이었고, 장모님도 내일이면 딸을 만날 수 있으니 내가 혼자서 중환자실 면회를 매조지는 역할을 수행하기로 했다. 어차피 장모님도 내일부터 줄기차게 딸을 옆에서 보필해야 할 테니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은 내가 혼자 가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내일 일반 병실에 옮기는 것으로 결정 나긴 했지만, 여전히 아내의 모습은 정상과 거리가 멀었다. 움직임은 극히 제한적이었고, 고개를 돌리거나 드는 것도 누구의 도움 없이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간사하다. 어제와 오늘의 상태에 큰 차이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담당의에게 회복 선언을 받은 이후가 돼서 그런지 아내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한결 밝고 힘찬 느낌이었다. 나는 아내를 만나자마자 내일 일반실로 옮기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전달했다. 그리고 겉으로는 알 수 없지만, 아내는 분명 나의 전갈을 인지한 것 같았다.
인지한 것을 감지한 나는 신나서 몇 번이나 반복해서 언급했으며 그간 내가 했던 말들 중에 아내가 기억하지 못할 것 같은 이야기들을 재차 재잘대기 시작했다. 딸과 대판 싸운 이야기, 딸의 영어 학원을 끊기로 한 이야기 등을 해줬다. 건강한 아내였다면 응당 했을 반응이 나오지 않았지만, 누군가 안에서 듣고 있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나의 브리핑이 끝날 때까지 특별한 리액션이 없던 아내는 동공이 풀린 채로 힘겹게 두 입술을 모아서 동그랗게 만들려고 노력했고, 굳어버린 구강 구조를 통해 매우 힘겹게 내게 무언가를 전달하려고 했다.
“오…오…이”
“뭐라고?”
“오…요…이”
처음으로 말하면서 입을 떼려고 하는 아이를 보는 심정으로 지켜보던 나는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 최대한 머릿속에서 ‘ㅗ’와 ‘ㅣ’가 모음으로 들어가는 단어들을 떠올리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이것저것 던져보다가 결국 하나 얻어걸렸다.
“요일?”
내가 겨우 맞췄는지, 아내는 반복해서 말하려고 하는 시도를 멈췄다.
“오늘 화요일이야!”
거의 2주 만에 의사소통이 된 나는 신명 나서 어린이집을 다니게 된 어린 자녀에게 월화수목금토일을 가르쳐 주듯이 오늘이 화요일이라는 것을 안내해 줬다. 그리고 아내는 다시금 힘겹게 두 입술을 뗐다.
“왜…”
아내는 아직도 이 상황을 납득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왜 이렇게 누워 있고, 왜 나의 몸은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인가. 나는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인가.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가. 내가 무얼 잘못한 것일까. 왜, 왜, 왜.
‘왜’라는 한 단어 속에 수많은 질문이 숨어 있는 것이 여과 없이 보였다. 사실 나도 답을 알 리 없는 질문들이었다. 답보다는 의문만 많았던 우리였다. 하지만, 그게 궁금하지 않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최선을 다해서 몇 번이고 설명해 줬던 사항들을 재차 전달해 줬다.
“자가면역뇌염이나 길랭바레증후군이라는 병에 걸린 건데, 너의 면역체계가 너의 신경계를 공격하고 있는 거래. 그래도 지금 좋아지고 있다고 하니까 다 괜찮을 거야. 내일이면 일반 병실로 가고, 어머니도 만날 수 있어.”
위안이 됐을지 모를 말들로 아내의 불안함을 잠재웠을 즈음, 담당의가 중환자실로 입장했다. 예상치 못한 방문에 잠시 당황했지만, 이미 우리 간에 존재했던 긴장감은 어제부로 완화됐기에 그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는 내게 반가운 소식들을 몇 가지 전달해 줬다. 눈동자 움직임도 제법 자유로워졌으며, 다리 마비 증세도 좋아졌다고 했다. 아내에게 부탁해서 내게 직접 시범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눈동자에 불빛을 비춰서 움직임을 증명해 보였고, 내가 가장 걱정했던 다리 움직임에 대한 걱정도 잠재워줬다. 담당의가 다리를 접었다 펴달라고 부탁하니까 아내가 곧잘 두 무릎을 굽혀서 두 발을 어렵게 끌어올리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중증 장애라는 불안감을 순식간에 불식시켜 줬다. 이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담당의 덕분에 나도 마음을 놓기 시작했다.
면회와 면담을 함께 끝낸 나는 아내에게 병실을 옮길 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당부했다. 아내는 힘겹게 알겠다고 답했고, 내가 중환자실을 나서면서 손을 흔들면서 인사했더니 아내도 묶여있는 왼손을 간신히 흔들며 화답하려고 했다. 여전히 침대에 결박된 것은 안타까웠지만, 아내가 아팠던 이후로 처음으로 내게 자발적인 인사를 했다는 것은 무척 반가워서 나오는 길에 주위에 다른 중환자들이 버젓이 듣고 있다는 것을 잊고 소리치게 했다.
“이제 다 좋아졌네!”
호들갑이고 설레발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의식이 어느 정도 돌아왔기에 놔두고 나오기 미안했던 아내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서 필요 이상으로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내의 손 인사를 보면서 이제는 어렵게라도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더욱더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다.
나는 중환자실에서 나와서 간호사에게 내일 일반 병실로 옮길 준비가 다 되어 있는지 물어봤고, 별 탈 없이 신청되어 있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내일 몇 시에 옮기게 될지는 알 수 없었다. 내일 퇴원 내지는 병실 이동하는 환자가 나오면서 공실이 생겨야 알 수 있으며, 일반적으로 이른 오후에나 공실이 나온다는 것이 병원 측의 설명이었다. 조금 더 친절한 설명과 안내를 기대했지만, 아쉬운 쪽은 그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가 다르게 회복하는 아내의 모습을 확인하니 매일 지나갔던 병원의 느려터진 회전문은 덜 답답했고, 며칠간 마른하늘에 구름 몇 조각만 있었던 날씨는 오늘따라 청명해 보였다. 세상은 그대로 있었는데, 내가 팔레트에 사용하는 물감의 색상들이 밝아지고 있었다. 나의 어깨를 짓누르던 바벨과 원판의 무게는 그대로인데 깔릴 것 같은 의심과 두려움이 잦아들어 앉았다 일어날 힘과 자신감은 더해지고 있었다.
내일 일반 병실로의 이동이 정해져서 그런지 엄마와 딸과 함께했던 저녁 식사는 비교적 평화로웠다. 딸에게 중환자실 탈출이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는 모르지만, 지난주 대비 엄마의 한숨은 확실히 한결 가벼워졌다. 모두가 아내의 재활과 회복까지 많은 시간이 남았다는 것을 직감했지만, 거꾸로 재활만 잘하면 된다는 것에 크게 감사하고 있었다. 물론, 재활이 뜻대로 될지 공격을 받은 아내의 신경계와 신체에 생채기가 남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지만, 가능성이 주어졌다는 것에 희망을 품고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이 딸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가볍게 딸을 재우고, 집 안 정리를 하기 위해서 각을 잡고 있었다. 이제는 혼자서 하는 하루의 마무리 정도는 제법 익숙해져서 부담되지 않았다. 그저 크게 한숨 한 번 쉬고 하면 되는 정도였다. 평소에 할 일을 미뤄놓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탓에 휴식 욕구가 올라오더라도 꾹 눌러놓고 주어진 임무를 완수한 이후에 회포를 한꺼번에 푸는 것을 선호했다. 본격적으로 일하기 전에 해우소를 들르고 싶은 욕구가 생겼지만, 언제나 그랬듯 정리하는 동안에 참았다가 할 일을 다 끝내고 나서 더욱 가벼운 마음으로 욕구를 해소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참을 채비하고 있던 찰나였다. 불현듯 나의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
아내가 갑작스러운 회복세에 들어서면서 비로소 사색할 여유가 생겼다. 처음으로 언젠가 죽음도 내가 완수해야 하는 인생의 미션들 중 하나라는 것을 실감했다. 내 인생의 미래와 타임라인에 대해서 항상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만 했지, 그 타임라인의 끝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는데, 이게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가를 깨닫게 됐다. 항상 잠자리에 들기 위해서 눈을 감으면 그다음 날 아침에 자연스럽게 눈을 떴다. 하지만, 그렇게 당연하게도 매일 새롭게 맞이하던 새로운 아침이 어린아이가 사탕을 뺏기듯 아무렇지 않게 잃을 수 있는 매우 취약한 유리구슬과도 같다고 생각하면 허무하기 그지없었다. 내일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고, 우리가 그 예외 중에서 하나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아내는 하룻밤 만에 그저 컨디션이 좋지 않은 사람에서 자기 몸조차 통제할 수 없는 사람으로 변모했다. 그나마 운이 좋아서 바닥을 치고 회복하고 있다는 진단을 받았는데 이러한 회복세는 유사 병의 후기들과 비교해 보면 증세의 깊이는 몰라도 다행스럽고 고맙게도 가족들을 애태우는 시간은 훨씬 짧았다. 당연히 아내보다 위중한 사람도 많을 테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아내의 고통이 가장 중요했다. 아내는 지금 중환자실에 누워서 과연 어떤 내일을 그리고 있을까.
미래를 위해서 원기옥을 모으는 것은 많은 것들을 당연한 전제로 깔고 있다. 우리가 세우는 계획들은 내일을 예측할 수 있다는 오만함과 원하는 일들이 차질 없이 진행될 것이라는 안일함을 기반으로 삼고 있다. 물론, 계획이 완벽하게 수행될 거라고 기대하면서 세울 필요는 없지만, 수립한 계획은 언제든지 보기 좋게 틀어질 수 있다는 것은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나 역시 아름다운 미래가 있을 거라 믿으며 하고 싶은 것들을 상황이 개선되거나 완벽에 보다 가까워졌을 때 하기 위해서 미루는 편이었다. 집 정리하기 전에 마려워진 소변을 참은 것도 그런 미래 지향적인 성향에서 발현됐을 테다. 아내가 없는 집을 정리하다가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는가 생각하게 됐다.
그렇다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방향성을 잡고 나아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나침반이 부재한 배는 당연히 표류하기 마련이다. 다만, 인도를 발견하기 위해 닻을 올렸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예상과는 다르게 서인도 제도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던 것처럼, 계획한 방향 대로 나아간다면 목표한 바를 정확하게 이룩하진 못하더라도 근처에는 갈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계획을 완벽히 세우고 배를 띄우기보다는 차라리 거센 바람과 해류에 시의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나 자신의 역량을 배양하고 믿어보기로 했다. 완벽한 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는 더 이상 미루지 않기로 했다. 아내가 원래대로 돌아올 수만 있다면 마음만 두고 있었던 일들을 적극적으로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세 명이라 당연하게 여겼던 가족의 형태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위협을 처음 받으면서, 우리 가족의 행복을 추구할 기회는 최대한 만끽해야겠다는 다짐하게 됐다. 항상 마음먹어왔던 온 가족 수영, 스키에 대한 도전도 되새기게 되었고, 예전보다도 조금 더 바깥 활동을 활발하게 하기로 나 혼자서 결심했다. 그리고, 예전부터 아내와 함께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성시경 님의 콘서트도 꼭 가서 직접 귀호강을 해볼 테다. 다음 기회는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