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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색무취 Oct 10. 2024

12-2. 반전

아내의 상태를 확인하고 나니 주말에 Y엄마에게 들었던 일화가 또 생각났다. 중환자실에 계속 있으면서 괴로워하던 아버님을 억지로라도 일반실로 옮겼더니 다행히 중환자실에 있을 때보다 빠르게 회복을 했다는 이야기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내가 말을 안 듣는 신체 안에 갇혀 있는 것을 인지하고 있을 경우의 괴로움과 더불어 실험체가 된 듯한 환한 불빛을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지 주말 내내 걱정됐었다. 간호사에게 슬쩍 운을 띄워봤다.


“이 정도면 일반실로 옮길 수 있을까요?”

“글쎄요. 그래도 오늘 아침 회진 때 좋아졌다고 하시던데요?”


아침에 담당의가 아내를 살펴보고 갔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디가 좋아졌는지 알아봐야 했다. 아내에게 이런저런 질문과 당부를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들이 뚜렷하지 않았다. 그래도 돌아올 수 있다는 강력한 희망을 볼 수 있었다. 간호사는 내게 안심하라는 듯 뽑아온 사진들을 아내가 볼 수 있도록 줄에 매달아 두겠다고 했는데, 장기 투숙객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인 것처럼 들려서 약간의 불길함이 엄습해 왔다. 그래도 아내에게 조금만 더 버티면 될 것 같다는 공수표를 다시 던지면서 면회를 마쳤다.


오늘도 설레발을 방지하기 위해 장모님과 이모한테는 내가 느꼈던 점들을 철저하게 배제한 채로 팩트만 전달하면서 중환자실에서 옮기는 것을 은근슬쩍 언급해 봤다. 일단 담당의와 얘기해 보자는 의견 정도만 서로 교환한 채 언제나 그랬듯 푸드코트에서 간단한 식사로 점심을 때웠다. 그래도 주말을 보내면서 각자 휴식도 취하고, 비관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그런지 나름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고 담당의와의 면담을 위해 다시 심장뇌혈관 외래 진료실로 향했다.


오늘도 담당의가 우리 앞에 있던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성심성의껏 답변하고 있던 것인지, 역시나 예상했던 것보다 진료 대기 순서가 줄어드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나는 앉아서 기다리는 동안 담당의가 하는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아내를 일반 병실로 옮기는 것에 대한 언급이라도 하기로 스스로 다짐했다. 혹시나 담당의의 머릿속에 병실 이동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다면, 적어도 염두에 둘 수 있게끔 하고 싶었다. 일반실에서의 간병에 대해서는 아직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지만, 어디까지나 아내의 정신적인 고통을 최소화해 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돼서 장모님과 함께 진료실로 입실했다. 나와 장모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내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최대한 예의를 갖춰서 허리 굽혀 정중하게 인사했다. 담당의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지난주보다는 환한 표정으로 화답해 줬고, 장모님을 하나뿐인 간이 의자에 앉혔다. 추가적인 보호자 의자가 없어서 나는 담당의와 어중간한 각도를 이루게 되는 1인 소파에 자리했다. 담당의에게 일반실로의 이동을 제안해야 한다는 긴장감과 최대한 예의를 지키는 외형을 갖추기 위해 소파에 등을 대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매우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며 하얀 1인 소파 끝에 겨우 걸터앉았다. 이제 자신 없더라도 준비해 왔던 말들을 전문가 앞에서 우겨봐야 하는 타이밍이 됐다. 하지만, 내 입이 떨어지기도 전에 담당의의 입에서 내가 하려던 질문에 대한 답을 듣게 되었다.


“이제 환자분이 아주 좋아졌어요. 일반실로 옮겨도 될 것 같아요.”


막상 질문하지 않고도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들으니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전에 생각지 않았던 의구심이 마구 들기 시작했다. 아직 제대로 된 의사 표현도 안 되는데 옮겨도 되는 걸까?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아직 호스로 유동식을 겨우 먹고 있는데 너무 섣불리 움직이는 건 아닐까? 그래도 전문가가 그렇다고 하고 어차피 원했던 결과이기도 하니 담당의를 믿고 따르기로 했다. 담당의는 아내의 눈동자, 고개 등을 비롯한 신체의 전반적인 움직임이 좋아졌으니 매우 높은 확률로 ‘바닥’을 확인한 것 같다고 조심스럽지만 자신 있게 얘기하면서 이제는 재활도 조금씩 시작하면 되겠다는 희소식도 전해줬다.


일반 병실로의 이동 소식을 들은 나와 장모님은 다시 한번 최대한 예의를 표하며 앉은자리에서 골반을 최대한 뒤로 빼면서 배꼽인사를 했다. 저절로 감사하다는 말이 입에서 연신 쏟아져 나왔다. 지난주까지는 그렇게도 어두워 보였던 진료실이 유난히도 밝게 변했다. 분명 그사이에 페인트를 새로 칠했을 리가 없는데, 벽이 새하얀 색을 띠고 있었다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 겉으로 봤을 때 환자가 변한 게 별로 없는데도 전문가가 좋아질 일만 남았다는 식의 메시지를 하나 던져주고 나자,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원래 담당의가 말하는 내용들이 첫 번째 장부터 인쇄에 실패하고 종이가 찌그러져 입구까지 막히면서 뒤의 인쇄도 줄줄이 막히는 느낌을 받았다면, 오늘의 메시지는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의 하늘처럼 너무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전보다 나빠질 일은 없을 것이라는 희망과 자신감도 덩달아 생기기 시작했다.


연신 고개 숙여 감사 인사했던 장모님과 나는 아내가 언제 일반 병실로 옮길 수 있는지 물어봤고, 담당의는 당장 내일이라도 옮길 수 있고, 보호자가 정하기 나름이라며 공을 우리에게 넘겼다. 비용과 관련된 문제도 결부되어 있다 보니 의사가 대신해서 결정할 수 없는 문제였다. 중환자실에서는 아내가 소음에 매우 취약해진 상태라고 했었기에, 되도록 1인실로 옮기고 싶었다. 1인실 비용은 예상한 수준을 훨씬 뛰어넘었지만, 지금 당장은 환자의 안정과 회복에 중점을 두고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기에 마음속으로 1인실 신청을 마음먹었다. 조금만 고민해 보고 연락해 주겠다는 말과 함께 우리는 한층 환해진 진료실을 나왔다.


우리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모에게 낭보를 전해줬고, 가벼운 마음으로 차로 향했다. 그간 심란한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직장까지 태워주겠다는 제안을 한사코 거절했었지만,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한 나는 데려다주겠다는 이모의 반복된 제안을 오늘은 덥석 물어버렸다. 지난주에는 모두가 핵심을 조심스럽고 절묘하게 피해 가면서 변죽을 울리는 정도의 말만 했다면, 오늘은 우리 셋 다 어제까지의 일들이 무용담이라도 되는 양 각종 말들을 아무렇게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제는 바닥을 확인한 것 같아 다행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며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고 있었는데, 불현듯 현실적인 문제가 생각났다. 아내는 언제 어디로 옮겨야 하는 것일까. 결국 이는 판단의 영역이고 우리의 현실적인 문제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문제였다. 장모님은 아내가 일반 병실로 옮기게 되면 본인이 보호자로 들어가겠다고 자청했었고, 실무진이 나를 포함해서 두 명뿐인 회사를 비우기 부담됐던 나는 그 제안을 못 이기는 척 받아들였었다. 1인실 입실 설득을 끝낸 이후에 남은 미결 사항은 단 하나였다. 아내를 언제 옮길 것인가.


지난주에 내 멋대로 딸과 나의 돌봄을 우리 엄마에게 부탁하는 대신에 아내의 간호를 장모님에게 부탁하기로 했었던 나는 장모님에게 아내를 언제 일반실로 옮길지 물어봤다. 의외로 장모님은 하루만 더 있다가 일반실로 옮기자고 답했다. 나는 내심 장모님이 내일이라도 아내와 함께 일반실로 옮기길 원했지만, 언제까지 아내와 같이 있어야 할지 모르는 장모님의 입장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장모님은 마음의 준비뿐만 아니라 끝이 정해져 있지 않은 장기전을 대비하기 위해 집 정리와 필요한 물건들을 준비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아내가 얼른 회복만 되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던 우리는 장모님의 뜻에 따라 모레 아내를 중환자실에서 일반실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각종 계약서에는 갑을관계라는 개념이 통용되었다. 계약 당사자 간에 상하 관계가 있다는 암묵적인 인정이며 일반적으로 보다 우월한 자산을 제공하는 쪽이 ‘갑’이라는 지위로 계약 상대방보다 먼저 계약서에 명시된다. 부동산 임대차계약서에는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쪽이 ‘갑’, 부동산을 빌리는 쪽이 ‘을’로 표기되었고, 갑, 을 표기를 없앤 지금도 보통 임대인을 임차인보다 먼저 기재한다. 용역계약서에도 금전을 제공하는 쪽이 ‘갑’, 용역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쪽이 ‘을’로 써서 작성되곤 했었고, 대출계약서에는 돈을 빌려주는 쪽이  ‘갑’, 돈을 빌리는 쪽이 ‘을’로 기재되곤 했다. 이처럼 더 절박한 쪽은 하찮은 상하 관계보다 중요한 필요가 있기 때문에 아랫사람의 개념인 ‘을’의 지위를 기꺼이 수용했다.


‘을’들은 계약 체결 전까지는 분명한 필요가 존재하기 때문에 일부의 불편함을 감수하지만, 계약상 약속된 서비스나 재화가 제공되고 나면 상황은 완전히 역전된다. 서비스를 제공받은 구매자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고 나서 대금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는 경우도, 돈을 빌린 이후에 이자를 내지 않거나 원금을 상환하지 않으면서 드러눕는 경우가 그런 상황 역전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즉, 교환 후에는 ‘을’은 ‘슈퍼(super)을’이 되고 ‘갑’은 ‘푸어(poor)갑’이 되어버린다. 화장실 가기 전과 다녀온 후의 마음이 완전히 다르다고 하더니 이럴 때 쓸 수 있는 말이다.


어쩌면 차에 앉아 있던 우리가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동안 간절히 원했던 회복을 확인하고 나니 비겁하게도 마음이 놓였던 모양이다. 원하던 것을 조금이라도 얻고 나니 정작 중요한 과제는 잠시 후순위로 미뤘다. 나는 아직도 아내의 투병 기간에서 이 순간을 가장 후회한다. 장모님이 수요일이 아닌 화요일에 들어가게끔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아내의 간병을 오직 장모님이 하기로 했다는 경직된 사고와 집에 있는 딸에 대한 걱정 때문에 화요일 하루라도 내가 간병하는 것을 포기했고, 나의 결정 때문에 간신히 의식이 돌아온 아내는 고통 속에서 중환자실에 하루 더 머물러야 했다. 이토록 원했던 아내의 중환자실 탈출이 확정되고 나니, 아내의 안녕을 내 마음의 편안함보다 우선시하지 않은 것은 아직도 나 자신을 이해하기 어렵다.


회사에 복귀하자마자 J형과 대표님한테 좋은 소식을 알렸다. 그들도 나와 함께 진심으로 기뻐해 줬고, 제3자를 통해 이제는 괜찮을 것 같다는 얘기를 들으니 보다 더 안정감을 도모할 수 있었다. 회사 동료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나서 내가 연락하고 있었던 지인들에게 아내가 일반 병실로 옮길 거라는 사실을 일일이 알려줬다. 되도록 빠지는 사람이 없도록 똑같은 메시지를 복사해서 카카오톡으로 전달했다. 내가 부탁하거나 물어볼 게 있다고 연락하면서 억지로 나의 슬픔을 나누게 된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알리는 것 또한 나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내가 필요하다고 급하게 부탁만 하고 정신없다는 핑계로 소식을 전하지 않는 것은 걱정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지도 모르는 지인들에게 무책임한 처사라고 여겼기에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빠지는 사람이 없게 하려고 노력했다. 지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한마음으로 기뻐해 주는 것을 보면서 우리 가족을 아끼고 걱정해 주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야구에서 0-10으로 지고 있다가 기적적인 역전은 아니더라도, 처음으로 점수를 내면서 1-10으로 추격하기 시작한 정도의 성취감을 가질 수 있었다. 아직 그 어떤 것도 성취하지 않았지만, 10점 차의 점수 차이보다는 9점 차이가 훨씬 나았다. 집에 가서도 낮에 전화로 브리핑했던 내용들을 다시 한번 엄마에게 설명해 줬고, 딸한테도 아내가 좋아진 것 같다고 전해줬다. 아내의 일반 병실 이동 소식을 들은 엄마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는 듯한 표정을 보이며 다시금 우리 저녁밥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다만, 엄마도 마음의 경계를 완전히 풀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엄마도 나 못지않게 설레발과 자기표현을 극도로 피하는 성향인데 나는 엄마의 이런 점을 빼다 박았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계속 같은 희소식을 반복해서 전달하다 보니 점점 현실이 되는 것 같았다. 물론, 나는 설레발을 경계하며 항상 여지를 남겨두고 우리 가족의 소식을 전파하고 있었다. 비록 의사가 일반 병실로 옮길 정도의 컨디션이 됐다고 하지만, 일이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항상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말이라는 게 몇 사람을 거치면 변질되고 어떨 때는 거짓이 참이 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단초를 제공하는 사람이 내가 되지 않기 위해서 무던히 노력했다.


그런데도 딸에게만큼은 희망적인 이야기만 늘어놓게 됐다. 병원에 다녀와서 아내를 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담당의의 말까지 들은 내게 아내가 ‘괜찮을’ 수학적 확률을 단편적으로 물어봤다면, 50% 이상의 확률을 매길 수 있었다. 물론, 이 수치는 아무에게도 공개한 적이 없었고, 열흘가량 아내의 상태를 하루에 한 번씩 점찍듯 관찰한 나만의 감에서 발현된 숫자였다. 느낌을 기반으로 딸에게 조금만 기다리면 일반 병실로 옮긴 엄마와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등의 근거 없는 미래 지향적인 말들을 해대기 시작했다. 그 말들에 책임질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분명 바닥을 확인한 것 같으니 먼저 안심이 됐다. M병원에서부터 G병원까지 모든 의사들이 당부했던 것이 자가호흡 기능을 상실하면 인공호흡기를 장착하고 더 안 좋은 경우에는 기도 삽관 내지는 기도 절개까지 해야 한다고 했었는데 그것만큼은 운 좋게 피한 것 같아서 참으로 다행스럽게 여겨졌다. 담당의의 말에 의하면 지금부터는 재활과로 전과하면서 신경과와 협진하는 형태가 될 거라고 했으니, 이제는 재활하면서 서울대학교병원의 이순태 교수가 말했던 중증 장애만 피하면 되는 것일까. 이렇게 쉽게 생각해도 되는 것일까. 또다시 알 수 없는 재활의 세계로 뛰어들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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