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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색무취 Aug 13. 2024

2-1. Plan B

병원에 아내를 입원시켰다는 안도감이 생겼는지 오늘 출근길이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굳이 다르다고 한다면 오늘 밤에 아내가 집에 돌아올 수 있을지 없을지 몰라 주말 계획을 짜기가 힘들다는 것 정도. 그리고 아침에 아내 대신 장모님께서 딸의 아침을 챙겨주고 있다는 것 정도.

출근해서 아내에게 비트윈을 날려본다.


“괜찮음?”

“... 

….

….

아니 9”


정체 모를 9가 있었고 무려 세 줄이나 넘긴 걸 보니 상태가 좋아진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응급실장의 말만 믿고 있었던 건지 아니면 믿고 싶었던 건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믿고 있었다. 이게 내가 아내와 한동안 나누는 마지막 비트윈이 될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가 겪는 일은 언제가 마지막일지 예상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스포츠 경기에서, 특히 토너먼트 경기에서 더욱 열심히 응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토너먼트 경기에서 탈락한다는 것은 마지막이라는 것이기에 선수들은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고 관중과 팬들은 최선을 다해서 응원하는 것이다. 선수들은 여기에서 힘을 비축해 둘 여유 따위 없고, 팬들은 어떻게든 한 경기를 더 보기 위해 있는 힘껏 응원한다. 이게 마지막 문자가 될 줄 알았다면 좀 더 상세하게 물어봤을 텐데. 좀 더 다정하게 물어봤을 텐데. 아니면 전화라도 해봤을 텐데. 하지만 이미 버스는 지나갔다.


우리 회사는 단 4명으로 구성된 소규모 조직이다. 실무진은 나와 약 3년 반 전에 나를 이 회사로 초대해 준 J형, 대표님, 그리고 경영관리 전반을 담당하는 대리님까지 해서 총 4명이다. 남들에게 말할 때는 소수 정예라고 한다. 오전에는 같이 J형에게 어제 있었던 일들을 무용담처럼 늘어놓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정말 고맙게도 필요하면 언제든지 병원에 다녀와도 된다고 배려를 해줬고, 나는 입원했으니 별일 없을 거라며 분에 넘치는 여유를 부렸다. 괜히 어제 엄청나게 피곤했다며 괜스레 투정도 부려보기도 하고, 점심에 얼큰한 게 먹고 싶으니, 순대국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했다.


나는 고층 빌딩에 있는 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고층 빌딩 아래에 꽤 넓은 쇼핑몰이 자리 잡고 있다. 총 3개 층의 쇼핑몰에는 각종 옷 가게, 식당, 커피숍들이 대부분이며 키즈카페까지 있다 보니 새하얀 조명이 밝은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 장사하는 곳이니 당연하다. 미처 설득당하지 않은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 내재된 걱정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그래도 배는 고프니 밥을 먹어야 했다.


밥이 안 넘어가거나 하지 않았다. 제로 콜라까지 시켜서 순대국밥과 함께 꿀꺽꿀꺽 삼켰다. 밥이 잘만 넘어갔다. 하지만, 밥을 거의 다 먹어갈 때쯤,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내가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고 하니 J형은 얼른 가보라고 얘기했다. 이때까지도 나는 심각성을 느끼지 못한 채로 오히려 여유를 부리며 별일 없을 거라는 눈빛을 보내면서 전화를 받았다.


“보호자님~ 오셔서 결정 내리실 게 있어요. 언제쯤 오실 수 있을까요?”


나는 이때라도 눈치를 챘어야 했다. 처음으로 누가 나를 ‘보호자’라고 칭했다. 나는 이제 공식적으로 보호자가 된 몸인데, 그것도 모르고 여유롭고 호기롭게 30~45분 후에 갈 수 있다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얼른 가봐야 하지 않냐며 식탁 반대편에 앉아 있던 J형이 걱정스레 물어봤지만, 간호사의 목소리와 단어 선택에서 조급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던 나는 오히려 식사를 마치고 천천히 가면 될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남은 순대국밥을 마저 먹었다. 도대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 모르겠으나, 급한 일이었다면 얼른 오라고 하지 않았을까. 심지어 나는 형에게 내가 마주하게 될 상황을 전혀 모른 채 형한테는 자신 있게 금방 다녀오겠다고 하며 회사를 나섰다.


3월 중순이라 아직은 바람이 쌀쌀해서 정장 위에 재킷을 입고 있었다. 밖에 돌아다니기에 적당한 옷차림이었지만 택시를 타니 약간 답답한 정도의 두터움이었다. 다행히 회사와 병원은 거리가 멀지 않아 덥다고 느끼기 전에 도착했다. 어젯밤에 와이프를 입원시킬 때 왔던 병원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응급실에 들어갈 때 느꼈던 어두컴컴함과는 다르게, 환자와 보호자들이 한데 뒤섞여있는 로비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고 북적북적한 느낌이 가득했다. 활기 넘치는 중국어까지 더해지니 활발한 느낌마저 들었다. 나는 아내가 입원해 있는 병실이 위치한 층으로 올라갔다. 어제 아내와 헤어졌던 간호사 데스크로 갔고, 전화 주셔서 왔다며 아내는 괜찮냐고 물어봤다. 하지만 그 누구도 괜찮다고 하지 않았고, 내가 아내의 보호자라는 걸 알게 된 담당의는 가볍지만, 조급한 뜀박질을 하며 내게 달려왔다.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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