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건네는 물음
그렇게 감각이 돌아오면,
그제야 작은 틈이 생깁니다.
바로 그 틈에서 조용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질문이 올라옵니다.
질문은 던지는 것이 아니라, 떠오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질문을 어떤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 여깁니다. 성과를 내기 위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잘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죠. 분명 그런 질문도 필요합니다. 현실에서 우리는 늘 더 나은 해법, 더 빠른 실행, 더 정확한 판단을 요구받으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질문이 오직 성과를 위한 도구, 정답을 찾기 위한 장치로만 여겨질 때입니다. 그 순간 질문은 더 이상 새로운 나를 만나는 문이 아닌, 빨리 정답을 말하라는 압박의 문이 됩니다. 그리고 그 정답을 찾지 못하면,
‘질문을 잘못했나?’, ‘내가 부족한가?’라는
자기 의심의 회로에 빠져들게 됩니다.
질문이 ‘정답’에 갇히는 순간,
그 안에 숨겨진 탐색과 성찰의 기회는 사라져 버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질문의 본질을 회복할 필요가 있습니다.
‘도구’가 아닌, 삶을 다시 바라보는 창으로 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잊고 살았던 감각이 돌아오면, 크고 작은 변화와 균열이 생기고,
그 틈에서 이런 질문이 올라올 수 있습니다.
‘나는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
‘왜 열심히 하는데도 이렇게 허전하지?’
이런 질문은 삶이 내게 말을 걸기 시작했기 때문에, 혹은 더 정확히 말하면 내 안에서 무언가를 재조정하려는 자기반성적 움직임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생기는 겁니다.
철학자 레베카 라인하르트는 『철학이 깊을수록 삶은 단순하다』에서 질문이란 삶의 복잡한 문제를 명료하게 만들고, 자신의 존재를 ‘다시 보기’ 위한 마음가짐이 철학의 출발점이라고 말합니다. 즉 질문은 ‘모른다’는 표시가 아닌,‘다시 알고자 한다’는 내면의 감각이 깨어났다는 신호입니다.
질문은 어디서부터 시작될까요?
질문은 꼭 거창한 문제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처음엔 아주 사소한 불편함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내가 자주 반복하는 말,
어느 날 회의실을 나오며 내뱉은 한숨,
혹은 일요일 저녁의 설명할 수 없는 무기력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심리학적으로도 질문은 익숙한 인식에 미세한 균열이 생길 때 발생한다고 합니다. 반복되는 피로와 답답함은 단지 우연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무시해 왔던 감각이 다시 깨어나며 내면의 움직임을 시작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한강 작가는 『빛과 실』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질문이 생긴다는 것은, 어딘가 금이 간 것이다.
그 금 사이로 빛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작은 금, 그 틈은 감각의 회복과 함께 더 선명해집니다.
그리고 그 틈을 통해, 지금껏 묻지 못했던 질문이
조용히 고개를 듭니다.
질문은 품는다는 것은, 잠시 머무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질문을 하면 곧장 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질문은 숙제 같고, 답하지 않으면 미완성처럼 느껴지죠.
하지만 질문의 가치는 꼭 답을 찾는 데 있지 않습니다.
제이 맥타이와 그랜트 위긴스는 『핵심 질문』에서 좋은 질문은 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깊이와 넓이를 확장시키는 도구라고 말합니다. 질문은 내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듭니다. 어쩌면 중요한 질문일수록 당장 답을 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어슬렁거리며 걷는 것과 닮았습니다.
당장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몰라도,
일단 걷고, 주변을 살피는 것처럼
질문도 곧바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잠시 머물러 보는 것입니다.
그 질문은 ‘정답을 구하는 숙제’가 아닌,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대화를 여는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질문을 허락해 보는 연습
어슬렁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속에 작은 질문 하나가 떠오릅니다.
강하게 주장하지 않고,
답을 재촉하지도 않지만,
조용히 고개를 드는 질문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질문들이 올라올 수 있습니다.
왜 그 말이 오늘따라 유난히 신경 쓰였을까?
요즘, 나는 어떤 순간에 미묘하게 한숨이 나올까?
이 길을 왜 자꾸만 피하게 될까?
언제부터 이 일이 버겁게 느껴졌을까?
방금 웃은 건, 정말 웃고 싶어서였을까?
오늘 하루 중 내가 가장 편안했던 순간은 언제였지?
이 질문들은 작고 사소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내가 지나친 감각과 감정들이 조용히 담겨 있습니다.
그 질문을 흘려보내지 말고,
잠시 그 곁에 머물러 보세요.
꼭 답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지금 이 순간 떠오른 질문을 조용히 허락해 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질문은 정리하거나 정답을 내려야 하는 것이 아닌
지켜보고 머무르는 태도입니다.
어쩌면 그 순간,
내가 알지 못했던 또 다른 나의 조각을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내면에서 떠오르는 질문들을 어떤 태도로 마주했나요?
앞으로는 내면과 외면에서 나오는 질문들과 어떤 방식으로 함께 머물고 싶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