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이 말해 주는 것
제가 연재글에 빼먹고, 글에만 올려놓아
목차 맨 마지막에...죄송합니다.
산티아고 순례길 4일 차.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자갈길을 걷는 날이었습니다.
등산화의 밑창이 아니었다면 발바닥은 아마 성치 못했을 겁니다.
몇 시간쯤 걸었을까요. 예전에 교토 출장길에서 다쳐 병원에 실려갔던 발목이 미세하게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발바닥은 화끈거렸고, 물집 방지 패치를 붙였습니다. 고질적인 허리 통증은 결국 진통제로 달래야 했습니다.
어떻게든 완주하려 했던 저와 달리 푸엔테 라 레이나(Puenta la Reina)의 알베르게에서 만난
대구에서 온 여성분은 조용히 포기 선언을 하셨습니다.
“저 포기하고 한국에 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
무릎 통증으로 테이핑을 했는데, 그 부위에 물집이 생긴 거라고 했습니다. 급한 대로 제가 가지고 있던 연고를 드리며,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하루 이틀 쉬었다가 다시 걸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습니다.
그분은 마흔이 넘은 나이에 직장을 그만두고 무작정 길 위에 올랐다고 했습니다. 코로나로 막혔던 국경이 열리자 유럽 자유여행을 준비했고, 이끌리듯 산티아고를 선택했다고 하셨습니다. 아무런 준비도, 뚜렷한 이유도 없이요.
포기를 선언하면서도 그녀는 참 유쾌했습니다. 함께 머무는 알베르게에서 브라질 신혼부부와 손짓 발짓 섞어가며 어설픈 영어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데, 내가 괜한 오지랖을 부렸던 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조금만 더 걷다 보면 몸도 익숙해질 거라고, 버티면 괜찮을 거라고 내 기준의 ‘의지와 회복의 논리’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 날 아침, 그녀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한국 돌아가서 영어부터 다시 배우고, 준비 잘해서 산티아고에 다시 올 거예요.”
서로의 길을 응원하며 인사를 나누고,
나는 다음 목적지인 에스텔라(Estella)를 향해 길을 나섰습니다. 그날은 발목과 허리 통증이 다시 올라왔습니다. 불안함도 함께 따라왔습니다. 걱정이 많아질수록 발걸음은 조급해졌습니다. 몸의 감각은 점점 더 예민해졌지만, 내 방식대로 그저 묵묵히 버티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그럴 때가 있습니다.
몸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데,
나는 그 말을 자꾸 무시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면서도 못 들은 척하게 되는 때 말입니다.
걷는 게 유독 힘들었던 어느 날, 순례 중 만났던 두 사람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늘 유쾌했던 프랑스 할아버지 세바스티앙과 노래를 잘 불렀던 스코틀랜드 청년 드미트리. 그들이 나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원, 괜찮아?”
“아니, 힘들어!”
“그럼 휘파람을 불어. 그걸로 충분해.”
그 순간, 마음 한쪽에서 이런 생각이 스쳐갔습니다.
‘뭐야? 여기서 나만 이렇게 진지한 거야?’
삶이란
꼭 이겨내야 하는 일이 아니라
휘파람 하나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걸
그들의 표정이 말해주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