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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콕 중 통역사 Oct 21. 2021

혼자 먹기 만렙

02. 나의 입덧 일지

내 배 안에 자초해서 만들어 낸 지방 덩어리 외에 다른 무언가가 싹트고 있는지 전혀 모르던 당시, 난 대학원 생이었다. 하루는 수업이 끝나고 집 근처 버스 정류장에 내렸는데, 정류장 앞 마트에서 길가 쪽으로 쌓아둔 여러 과일에 눈이 갔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많은 맛있는 과일 중 금귤에 눈이 꽂혔다.


난 금귤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뿐 아니라 주변에 "어떤 과일을 제일 좋아해?"라고 물었을 때, "응 나는 금귤을 좋아해"라고 답하는 사람은 만나본 적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굳이 따져 보자면, 크기가 커서 먹고 나면 포만감을 주는 과일도 아니며, 과즙이 줄줄 흘러 갈증을 해소시켜 주는 과일도 아니며, 달달해서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는 과일도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그날따라 탱탱해 보이는 금귤은 내 부교감 신경을 자극했는지, 침이 꼴깍꼴깍 나오는 것이었다.  

집에 가는 길이 바빠 그냥 지나치기는 했지만, 내가 왜 금귤 따위가 먹고 싶은 걸까 하는 얕은 의문점을 가졌던 게 기억난다.


며칠이 지나자, 이번에는 베트남 쌀국수가 당겼다. 베트남 쌀국수 음식점은 지하철 B역에 가까이 위치했기 때문에 난 원래처럼 A역에 내려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는 더 빠르고 편한 방법을 버리고, B역에 내렸다.

그런데 당시 큰 고비는 내가 속칭 혼자 먹기의 쪼렙이라 식당에서 홀로 밥을 먹지 못했다는 것이다.

베트남 쌀국수 음식점 앞에 다 와서는, 마치 맛있는 음식이 차려있는 식탁 근처를 낑낑거리며 맴도는 강아지 새끼인 양 힐끗거리다가 집에 오기를 두세 번 반복했다.


그러고도 시간이 흘러 흘러, 새내기 대학원생으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던 나는, 30일 텀으로 생떼를 부리며 자기의 존재와 위치를 알려오던 자궁이 꽤 오랫동안 조용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그렇게 얼른 약국에서 산 테스트 키트로 임신을 막 확인했을 때는, 샴페인을 딸 때 들리는 퐁! 하는 소리가 눈물점에서 울리며 눈물이 폭포같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사실 그 눈물은 기쁨의 눈물도, 슬픔의 눈물도 아니었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주체할 수 없는 두려움의 눈물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어쩌면 그 눈물은 앞으로 다가올 육아의 암흑기를 경고해주는 신호가 아니었을까.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 내 배안에서 자유형도 하고 배영도 하고 가끔은 분명 접영까지 뽐낸 그 시기의 내 딸아이는 그렇게 "포"[Pho: 베트남어로 '쌀국수'라는 뜻]로 불리게 되었다.


임신을 확인하기 전까지 난, 옹녀가 마늘과 쑥을 먹기 전 함께 뛰놀던 곰 친구의 자손인 양, 미련하게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임신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대학생 시절로 소환된 느낌이었다. 대학생이긴 하나, 예쁜 캠퍼스에서 남자 친구와 팔짱을 끼고 살랑살랑 걷는 여대생도 아니고, 시험을 앞두고 며칠 안 감은 머리를 한채 도서관에 틀어박힌 여대생도 아니었다. 난, 술자리 게임을 지지리도 못해 어쩔 수 없이 연거푸 소주를 마셔대고, 그 소주가 써서 엄청난 양의 안주를 함께 흡입한 죄로 결국엔 냄새나는 변기에 머리를 숙이고 끄억끄억 토해내는 그런 여대생으로 돌아가 있었다.


정말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시기이다.

입덧은 종류가 많은데, 내가 당첨된 입덧은 먹덧이었다. 보통의 입덧은 음식을 먹을 때 힘든 양상을 보이지만, 먹덧은 속이 비어있을 때 미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난 정확히 말하면 속이 비었다기보다는, 음식을 씹고 있을 때 및 음식을 삼키고 있을 때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시간이 곤욕이었다. 입에서 음식물을 씹고 그걸 식도를 통해 건네줄 때만 내 위장에 자리를 튼 괴물을 잠재울 수 있었다.


길을 가다가 그 괴물이 위장을 쥐어짤 때면, 주변에 보이는 가까운 아무 음식점에 들어가 뭐든 제일 빨리 나올 것 같은 메뉴를 골랐다. 혼자 먹기의 쪼렙일 때는, 아무도 나를 신경 쓰고 있지 않았지만 모두가 나를 보는 느낌이었는데, 먹덧이 친구가 돼주자 음식점에 뛰어 들어가 먹덧 때문에 엉엉 울면서 밥을 먹는 탓에 모두가 나를 실제로 보고 있었는데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 시기를 겪어서 난 이제 혼자 고깃집에서 고기도 구워 먹을 줄 아는 혼자 먹기 만렙의 인간이 되었다.


자녀를 가진 부모라면 공감하는 말이 있다. 내 자녀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는 것.

그리고 분명 하찮은 혼자 먹기 쪼렙의 인간보다는,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어느 때나 먹는 즐거움을 실현시킬 수 있는 혼자 먹기 만렙의 인간이 더 나은 사람일 것이다.

그렇게 따지니, 내 딸아이는 태어나기도 전에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등업 시켜준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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