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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윤 Jul 10. 2024

몸은 마음보다 정직하다

건강 리셋 (1) 주체적인 삶


몸이 신호를 보낼 때


내 안의 두려움과 자기 불신, 만성피로와 자주 가라앉는 마음, 모든 것이 오직 '마음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명상과 모닝페이지를 통해 마음을 다스리면서 얼굴에 생기가 돌고 표정도 밝아졌다. 의욕도 넘쳤다. 몸도 가뿐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몸은 금세 지쳐버렸다. 마음은 이미 저 앞에 있었지만 몸은 따라가지 못했다. 몸의 협조 없이 마음만으로는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잦은 야근, 부족한 수면시간, 과음, 스트레스 등으로 몸은 만신창이였다. 만성 편두통, 만성 위염과 위궤양, 만성 염증, 감기몸살을 달고 살았다. 퇴사할 무렵에는 얼굴에 이유 모를 두드러기까지 올라왔다.


회사에서는 '건강관리도 능력이다'라는 인식이 있다. 어쩌다 한 번 아프기라도 하면 겉으로는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지만 내 귀에는 '쯧쯧..'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나를 걱정하기보다 내가 아파서 일이 지연될까 봐 그게 걱정이었을 터. 그렇기에 아파도 꾸역꾸역 출근을 했다. '아파도 일단 회사에 나와서 쓰러져라.'라는 미련한 문화가 있던 시절이었다. 몸이 아프다는 신호를 보내면 내 몸을 원망했고, 몸이 보내는 신호를 서둘러 약으로 덮어버렸다.


물론 건강악화로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이 정도의 건강문제는 직장인에게는 기본 옵션이 아니던가? 나의 증상은 약과였다. 같은 팀 선배는 하혈을 하는 몸을 끌고 출근을 했다. 또 다른 동료는 과민성대장증후군으로 시도 때도 없이 몸져누우면서도 야근까지 하며 일을 했다.


하지만 몸은 포기하지 않고 나에게 강력한 신호를 보냈다.

"계속 이렇게 살 거냐고!"


(출처 : Unsplash)




몸은 마음보다 정직하다


8년 전의 나에게 고마운 건, 몸의 신호를 허투루 듣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처음부터 몸이 보내는 메시지에 귀 기울였던 건 아니다. 위궤양으로 위에 구멍이 뚫려 큰일 날 뻔했다고, 심각하게 경고하는 의사의 얼굴을 보면서도 웃어넘겼다. 하지만 무시할수록 고통의 강도는 더 강력해졌다.


"이래도? 이래도 나를 무시할래?"


특히 편두통은 제정신으로 견딜 수 있는 정도의 고통이 아니었다. '이러다 내 머리가 터져버리는 건 아닐까.' 머리가 아플 것 같은 조짐이 보이면 덜컥 겁이 나서 서둘러 약을 먹었다. 자다가 깨질 것 같은 두통으로 깬 날도 여러 번 있었다. 두통은 고통이라기보다는 공포로 다가왔다. 그냥 '지끈지끈'한 두통과는 차원이 달랐다. 누가 내 머리통을 뜨겁게 달궈진 무쇠솥에 넣고 굴리는 느낌이랄까.


그럼에도 머리가 아파서 회사를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또한 '머리가 아파서 회사를 못 다니겠다.'라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다만 내 삶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거지?'


몸은 마음보다 정직하다. 마음은 속일 수 있다. 감정도 숨길 수 있다. 하지만 몸은 알고 있다. 내가 괜찮지 않다는 것을.



홀연히 나타났다 사라진 박 선생


(출처 : Unsplash)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몸살기운이 있어서 회사 근처에 있는 내과에 들렀다. 힘없이 나의 증상을 이야기했고, 의사는 가만히 나를 쳐다보더니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회사를 꼭 다녀야 하나요?"

"네?"

"잘 고민해 봐요. 부모님과도 상의해 보시고요. 물론 일도 중요하죠. 하지만 인생에는 회사보다 더 중요하게 지켜야 하는 것도 있어요."


힘없이 초점을 잃었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녀의 한 마디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띵- 하고 무언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그래. 이런 삶을 지속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다른 삶도 있지 않을까? 나를 이토록 혹사하면서 무엇을 위해 이 삶을 지속하고 있는가?' 그 이후로 더욱 진지하게 퇴사에 대해 고민을 시작했다.


몸살기운이 또다시 찾아왔을 때, 내심 기대하는 마음으로 다시 내과에 갔다. '오늘은 나를 위해 무슨 이야기를 해주려나?' 하지만 그녀는 아무 말이 없었다. 마치 처음 보는 환자를 대하듯 무심하게 감기약만 처방해 주었다. 그날 나를 일깨워주었던 박 선생님은 다시 만날 수 없었다. 물론 의사의 한 마디로 퇴사를 결정하진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날 만난 박 선생님의 조언을 흘려듣지 않았다.


몸이 아픈 것이 퇴사의 직접적인 사유가 되진 않았지만, '직장인 이외의 다른 삶도 있지 않을까.' 생각의 전환이 있기까지 몸의 역할이 가장 컸다. 퇴사 후에도 몸은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때 당시에는 '내 몸이 망가져서' 힘들다고 생각했지만, 이제와 보니 '내 몸이 살아있었기에' 나에게 변화의 신호를 줄 수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건강리셋


01. 난생처음 배운 요리


퇴사를 하고 명상여행을 다녀온 뒤, '먹는 행위'에 대해 다시금 인식하게 되었다. 단 열흘이었지만 적게 먹고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았더니 몸이 가뿐하고 깨끗해진 느낌이 들었다. 이 상태라면 무슨 일을 해도 더 기쁘고 활기차게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음식에 대해 생각하다가, 문득 삶의 기본인 의식주 중 그 어느 것도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 온전한 한 인간으로서 '자립' 하고 싶었다. 가장 먼저 시작할 수 있는 '음식'부터 시작해 보기로 했다. '의식적으로 요리하고 먹는 방법'을 배움으로써 주체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


제일 먼저 배운 건 '마크로비오틱'이다.

마크로비오틱은 자연의 흐름에 따라서 먹는 곡채식이며, 신토불이, 일물전체, 음양조화의 원리를 고려한 섭생법이다. 풀어서 이야기하면, 내가 사는 지역에서 기후와 풍토에 맞게 유기농법으로 자란 제철식품을 먹는 것이며(신토불이), 먹을 수 없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껍질까지 전체를 먹는 것이고(일물전체), 우리 몸을 중용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식재료와 요리방법을 통해 음과 양의 조화를 생각하는(음양조화) 섭생법이다.


마크로비오틱을 배우기 전까지 집에서 직접 요리를 해본 적이 없었다. 식재료를 다듬는 것부터, 간단한 칼질을 하는 것도 서툴렀다. 그때 배운 요리법은 거의 까먹었다. 하지만 음식의 기본을 배웠다. 어떤 식재료와 양념을 선택해야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요리를 해야 하는지 지금까지도 나의 요리생활에 단단한 기반이 되어주고 있다.


마크로비오틱 식사. 2017.



결혼 후 2019년에는 사찰음식도 배웠다. 마크로비오틱은 나에게는 다소 고난도의 요리법이었고, 집에서 손쉽게 해 먹을 수 있는 요리를 배우고 싶었다. 사찰음식을 배우며 제철 식재료와 간단한 양념으로 집밥을 만들어 먹으며 나름의 건강한 식생활을 이어갔다.


사찰음식. 2019.



02. 몸의 해독


보통의 건강한 사람이라면 이 정도의 건강한 식생활 만으로도 건강에 아무 이상 없이 잘 지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30년 가까이 방치되었던 내 몸은 쉽사리 회복하지 못했다. 물론 잠을 충분히 자고, 명상을 하고, 스트레스를 덜 받으며 지냈기에 그 강도는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편두통에 시달렸고 다른 증상들도 그대로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2021년 새해가 시작되었다. 무기력함으로 가라앉는 몸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변화가 필요함을 느끼고 있었다.


2월 1일 저녁, 나는 아궁이 연기가 풀풀 나는 작은 온돌방에 앉아있었다. 지리산 단식원이었다. 숯과 레몬으로 몸을 해독하고 7일 간 포도만 먹으며 단식을 했다. 난생처음 '셀프 관장'도 해보았다. 일주일 후 몸무게는 4kg 정도 빠졌고 몸도 가벼웠다. 만성피로와 무기력증은 싹 사라졌다. 아침에 몸을 일으키기가 어려웠는데, 매일 아침 눈이 번쩍 떠졌다.


단식원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내 몸의 여러 가지 증상은 순환이 안되고 노폐물이 쌓여서 나타나는 것이라 했다. 혈액량도 부족하여 심장에도, 신장에도 무리가 간다고 했다. 체온도 평균보다 1도 정도 낮았다. (찬 음식, 스트레스 등은 몸에 냉기를 쌓이게 한다.) 결국 몸이 제대로 순환되도록 하고 노폐물 등을 해독해서 몸의 시스템을 정상으로 만들어야 한다. 게다가 내가 겪었던 위궤양은 위암 직전의 단계라고 했다. 위궤양 증상은 약으로 다스렸을지라도, 위궤양의 뿌리는 남아있을 수 있기에 꾸준하게 건강관리를 해야 함을 배우고 돌아왔다.


지리산 풍경. 2021.



03. 자연건강식의 시작


단식원에 다녀온 후로는 제철 식재료와 건강한 양념만을 사용하여 부지런히 집밥을 해 먹었다. 다행히 마크로비오틱과 사찰음식으로 미리 요리방법을 배워둔 덕분에, 건강한 식생활을 유지하기에 수월했다. 단식 후 사라진 무기력함은 다시 찾아오지 않았고, 몸을 해독한 이후로 삶도 한결 가벼워졌다. 그 무렵 '100일 글쓰기' 모임에도 참여할 기회가 생겨 글쓰기도 시작했다. 일상에 기분 좋은 에너지가 돌았다.


그렇게 나의 건강은 정상궤도에 오르는 듯했다. 하지만 코로나로 남편이 운영하던 사업이 기울기 시작했고, 2021년 7월, 폐업을 결정하고 그 과정에서 법적 다툼을 벌이게 되어 심적으로 큰 충격이 있었다.


그 무렵, 참을 수 없는 복부통증으로 병원에 실려갔고 정기검진 때만 해도 정상이었던 난소에 거대한 혹이 생긴 것을 알게 되었다. 남들은 아무거나 먹고살아도 건강하게 잘 사는 것 같은데, 나는 이토록 노력을 하는데도 왜 이런 시련을 겪어야 하는 걸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도 나를 비웃었다. "그렇게 건강하게 먹는데도 난소에 혹이 생기네요? 아무 소용없는 거 아니에요?"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노력해 왔기에 이만큼 건강하게 잘 지낼 수 있다고 믿었다. 며칠을 울고 좌절하다가 또 한 번의 변화가 필요함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단식원에서 썼던 노트를 다시 펼쳐보니 '건강한 몸과 마음'에 대하여 공부하고 싶다는 나의 의지가 적혀있었다. 이번 기회에 평소에 관심이 있었던 자연건강식을 실천해 보자고 결심했다. 나는 곧바로 난소혹 제거 수술을 하는 대신 식단과 생활습관을 리셋하기로 했다. 자연건강식, 자연치유 등 몸 공부를 파고들었다. 의학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예방치료 분야로 새롭게 학위를 시작하고 싶을 만큼 진지했다. 한의학, 기능의학, 자연의학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공부했다.


공부하면서 자연식물식(완전비건)을 시작했다. 정제곡물, 정제밀가루, 커피, 술, 단순당류, 가공식품, 인스턴트, 인공조미료 등을 먹지 않았다. '육식' 또한 난소혹 증상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해서 '완전 비건'을 실천했다. 육류, 생선류, 달걀, 유제품 등을 일절 먹지 않기로 했다. 농약도 최대한 피했고, 생활 속에서도 미세플라스틱, 환경호르몬도 신경 썼다. 당시에 1년 계약직으로 다니던 회사가 있었는데 매일 도시락을 싸서 다녔다. 편의점, 패스트푸드점, 일반 슈퍼에서도 살 수 있는 게 없었다. 친구들과 만날 때는 비건옵션이 가능한 식당에 갔다.


자연건강식. 2021



더 나아가 몇 차례의 간청소와 레몬관장도 시도했다.


몸무게는 10kg 가까이 빠졌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아침에 알람 없이도 일정한 시간에 눈이 번쩍 뜨이는 것'이었다. 단식을 한 후의 변화와 똑같았다. 또 화장실에 가면 '힘도 안 줬는데 쾌변'을 했다. 몸과 마음에 활력이 돌았다. 커피 없이도 식곤증에 시달리지 않았고, 맑고 명료한 몸과 마음으로 하루하루 기쁘게 살아갈 수 있었다. 몇 달 후에는 "내가 언제 마지막으로 편두통이 있었더라?"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전문의가 '평생 약을 먹으며 관리하면서 사는 수밖에 없다'라고 했었던 만성 편두통에서 해방된 것이다.


몸에 해가 될 수 있는 음식을 피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고, 1년 정도 비건을 실천한 것은 몸을 정화하고 해독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육류를 평생 먹지 않으면 결핍이 있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암이나 깊은 병에 걸려 치유식이 필요한 사람들은 육류를 먹지 않는 게 도움이 된다고 한다.) 몸이 물리적으로 해독된 것뿐만 아니라, 내가 먹는 것을 주도적으로 선택한다는 마음가짐 또한 몸이 회복되는데 긍정적인 영향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어느 날, 의문이 들었다.


'이게 지속가능한 방법일까?'


우선 가족과 친구들 모두 나의 식단변화를 불편해했다. 나 또한 불편해하는 그들을 신경 쓰느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지금이야 비건이나 건강한 식생활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지만, 3년 전만 해도 생소하고 '유난 떤다'는 인식이 강했다. 그럼에도 나의 식생활에 만족했기에 남들의 시선은 크게 개의치 않으려 노력했다.


더 큰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엄격한 식단을 유지하려면 외식도 어려웠다. 매번 집에서 밥을 해 먹느라 진이 빠졌다. 언젠가부터 '먹는 것'에 과도하게 몰입하는 나를 발견했다. 유기농 매장에 가서 장을 보고, 온라인에서 신선한 재료를 공수하고, 퇴근하고 돌아와서도 내내 부엌 앞에 서있었다. 결정적으로 그러한 노력에도 난소혹의 사이즈는 줄어들지 않았고, 심지어 생리주기가 뒤죽박죽이었다.


문득 '이게 맞는 방향일까? 너무 강박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건강'을 위해 지나치게 노력하는 '건강강박'에 시달리고 있는 건 아닌지 자문자답하는 시간을 거쳤다.


그리고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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