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라는 핑계로.
계절이 바뀌면 몇 장의 엽서를 쓴다.
사람들과 부지런히 연락을 주고받지 못하는 게으른 천성인지, 말재간이 없기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답지 않게 수줍음이 많은 것일까. 전화나 메시지 한 통이 참으로 어렵다. 어디서 대화를 멈추어야 할지 적절한 타이밍을 모르고, 적절한 아쉬움을 남기고 다음을 기약할지 모르겠다. 혹여 단순히 안부만 묻고 싶은 서투른 마음이 상대방을 기분 상하게 하거나, 불편하게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도 있다.
여러 이유가 얽혀서 휴대폰으로 연락을 취하기보다 짧게 안부를 전하는 엽서를 쓰는데, 그마저도 부치지 못한 것이 한가득이다. 서랍마다 보내지 못한 엽서를 볼 때마다 보낼까, 간직할까, 처분할까 고민한다. 개 중에는 정말 먼 곳에서 엽서를 사 왔던 기억이 있어 귀퉁이 끝에 보내는 날짜를 적고, 늦게 보내서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인다.
가을이라서,라는 말은 핑계 대기가 좋다.
'바람이 선선해져서, 풀벌레 소리가 들려와서, 늦은 가을장마 빗방울 사이로 네 얼굴이 보여서, 구름이 걷히는 하늘에 너를 그리기가 딱 좋아서.'
눈으로 보이고, 귀로 들리는 것을 작은 기계로 담아서 고스란히 보내주기 좋아진 세상이라지만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이 벅찬 감정은 어떻게 전해줄 수 있을까. 예를 들면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저녁쯤 작은 풀숲 뒤에서 애처롭게 들리는 풀벌레의 울음 속에서 느껴지는 작고 소중한 존재에 대한 깊은 찬사라던지, 코끝에 스치는 건조한 바람에 담긴 늦여름의 바다 내음이라던지, 구름이 일렁이며 멋진 그림을 보여주는 찰나의 순간에서 느껴지는 초라함.
사진이나 영상에선 결코 담을 수 없는 그때의 내 마음이 보는 것, 귀에 들리는 것, 코 끝에 느껴지는 것들을 당신에게 서툰 글자로 보내주고 싶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끝끝내 작은 엽서를 꺼내드는 건 언어를 골라 쓰기 위함이다. 아무런 말이나 내뱉지 않고, 어떤 말을 쓸지 최대한 깊이 고민하고 그중에서 고르고 골라서 가장 귀한 언어들만 선물로 전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당신에게 보여주는 내 최고의 존중이기 때문이다.
가을이라는 핑계로 다시 펜을 잡으며, 이번에야 말로 꼭 부치겠노라고 다짐해 본다. 엽서를 받은 당신이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있는 것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을 보내주고 싶은 사랑을 단 한 줄이라도 발견해 준다면 이 가을의 시작이 내겐 기쁨으로 충만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