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 직후에는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임신을 준비해야겠다 생각했지만 그것 역시 내 뜻대로 되는 일은 아니었다. 생리가 정상적인 주기를 갖추는 데까지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필요했다. 소파술 후 40일 정도가 지나고 첫 생리를 시작했지만 이후로는 부정 출혈이 이어졌다. 최적의 때를 기다리며 차일피일 임신을 미루는 동안 나와 H는 이성적인 상태를 되찾아갔고 '우리가 아이를 낳아 키우기에 적합한 상태인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거실에 서서 집을 스윽 둘러보았다. 목을 빼고 볼 것도 없는 소박한 공간. 두 인간과 고양이 한 마리의 살림으로 가득 찬 집에는 아기 침대 하나 놓을 자리도 빠듯해 보였다. 엘리베이터가 없는데 유모차를 어떻게 이동하지, 의문이 들자 나와 H는 마음이 확고해졌다.
2020년 여름, 임대차 3법이 시행되었다. 2년 계약 이후 한 번에 한하여 추가 2년을 보장하는 계약갱신청구권과 임대료 증액 상한을 5% 이내로 제한하는 전월세 상한제, 30일 안에 계약 정보를 신고하도록 하는 전월세 신고제가 세부 내용이었다. 그리고 몇 년이 흘렀다. 2022년 3월에 당선된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에 임대차 3법 폐지가 포함되어 있었기에 폐지와 개정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이 분분하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변동은 없는 상황이다.
계획이 구체화된 후, 가장 먼저 임대인에게 살고 있는 집의 전세 퇴거 의사를 밝혔다. 2년 거주 후 임대차계약갱신권을 사용해 보증금의 5%를 더 얹어주었고, 그 후로 1년을 더 거주한 상태였다. 임대차계약갱신권을 사용한 이후라면, 임차인은 언제든 임대인에게 퇴거 의사를 전달할 수 있으며 만기일은 의사를 전달한 날짜로부터 3개월 이후가 된다. 퇴거 의사를 전달할 때에 H는 자신이 법 관련 종사자임을 밝히며(맞다. 무탈한 진행을 위한 계획적 행동), 조심스레 해당 법안의 인지 여부에 대해 물었다. 임대인은 말했다. '인지는 하고 있지만 새로운 세입자와 날짜를 맞추어 나가 줘요.' 애매한 대답이었다. '세입자를 들이는 일에는 우리도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이나 세입자와 무관하게 만기에 보증금을 빼줄 수 있는지 반환 여부를 알아야 한다'는 질문에는 '맞춰 빼준다고 말하기는 어렵고 통상적으로 협의해야 하는 문제'라고 대답했다. 이전보다 더 애매한 대답이었다. PD수첩에 출연한 임대인을 상대했던 과거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전형적인 갭투자 사기꾼은 아니었으나, 인간 대 인간 사이의 신뢰만으로 손 놓고 있기도 곤란한 상황이었다. 호재가 있는 매물이기에 임차권등기명령을 걸고 경매에 넘기면 손해 볼 일은 없었으나 마음과 시간을 써야 했다. 생각만으로도 골치가 아팠다.
우리는 우선 법무법인을 통하여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물론 임대인은 길길이 날뛰었다. 만일에 대비하여 증거 목적으로 보낸 것이니 괘념치 않으셔도 된다는 H의 말에 임대인의 목소리는 한 옥타브쯤 더 올라갔다. 불명확한 의사에 대한 대처일 뿐인데 적반하장으로 구는 것이 당황스러웠지만 감정적으로 상대하지 않기로 했다. 임대인은 불같이 화를 내던 것과는 다르게 적극적으로 부동산에 매물을 내놓고 약속을 잡았다. 우리 역시 최대한 협조하여 깨끗하게 집을 정리하고 매물을 보여주었다.
두 달간, 서른 번 정도의 방문 연락이 왔다. 약 스무 명이 집을 보고 갔고, 열 명가량은 약속 시간이 다 되어 방문을 취소했다. 오겠다는 시간에 맞춰 도착한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임대인에게는 수시로 연락이 왔다. '10분 후에 집 볼 수 있나요' '취소됐대요. 볼 일 보세요.' '30분 후에 집 볼 수 있나요' '아까 보고 간 사람이래요' 처음엔 납득할 수 없었다. 임대인이 우리를 엿 먹이려고 이러나. 그렇다면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임대인의 몸통 어디 하나를 고장 내지 않고는 참을 수 없겠다. 하지만 이 세계는 원래 이렇고, 임대인과 중개인도 이런 상황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한 후에는 무덤덤해졌다. 나중에는 청소를 하면서도 '나 좋으라고 하는 거지 뭐' 생각하며 방문 일정과 무관하게 내 할 일을 했다.
임차인 우위 시장인지라 좋지 않은 상황인 건 사실이었다. 미국 인플레이션의 영향으로 금리가 끝없이 치솟았다. 3%대였던 금리가 5%대로 갱신되었다는 글이 우후죽순 올라오고 매매가와 전세가가 추락했다. 사람들은 2023년 상반기가 되면 금리가 7% 이상으로 올라갈 것이라 예상했고 팔리지 않는 매매는 전세로, 빠지지 않는 전세는 다시 월세로 전환되었다. 갑자기 치솟은 금리에 대출 이자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상황은 지지부진했다. 아, 신이 우리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때인가. 나와 H는 매일 밤 침대에 누워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생에 대해 토론했다.
새로운 임차인이 나타난 건 만기를 5주 앞둔 날이었다. 안 되겠다 싶은 임대인이 보증금을 10%가량 내리고 가전제품 옵션을 여러 가지 추가하자 집이 나갔다. 그렇게 해결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두 번째 지옥이 시작되었다. 계약자가 집을 보고 간 이후로 2주간 감감무소식이라 임대인에게 연락을 했더니 '계약자가 당신들 날짜에 맞춰 들어오려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가만히 기다리지 뭘 그리 사람을 보채느냐'는 답이 돌아왔다. 이후로도 약속된 날짜에서 일주일을 미루고 하루를 더 미루었다. 그리곤 말했다. '계약자가 대출이 안 나와, 내일부터 다시 집을 보여줘야 하니 참고하세요.' 이제 퇴거 예정일이 3주 앞으로 다가왔다.
두 달이 넘도록 우리를 '당신들'이라 부르며 하대하던 임대인의 저급함을 불쌍히 여기며, 흔들림 없이 예의를 갖추었던 우리의 인내심이 바닥났다. 내가 분노에 매몰되어 오장육부 육두문자가 등장하는 메시지를 보내려 하면 H가 핸드폰을 빼앗아 저 멀리 도망갔다. H가 무쇠냄비를 들고 코 앞에 사는 임대인의 집을 향해 달릴 준비를 하면 내가 정신차리라며 궁딩이를 때렸다. 분노의 타이밍이 어긋나는 인간들이라 참으로 다행이었다. 우리는 '법대로 진행하는 것이 옳다' 주장했고 임대인은 '당신들이 통상적으로 진행하질 않아 자신이 희생 중'이라 주장했다. '이전처럼 매일같이 집을 보여줄 수는 없다. 일요일에 한하여 오라.' 말하자 '당신들은 계약 해지 통보를 한 것이니, 집을 보여주는 의무를 지켜야 한다.' 말했다. 하지만 임대차3법에 대해서는 인지하고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와 H는 이 '지금 살아있지만 어제 죽었다'와 같은 말에 무어라 대꾸해야 할지 잠시 고뇌했다.
우리는 정신을 차린 후, H를 힘들게 하는 어느 직장인을 떠올렸다. 자신이 옳다 여기면 상대가 뭐라 하든 자신의 의견을 천 번 만 번 반복하여 설명하는 사람이었다. H는 그의 습관을 임대인에게 적용하기로 했고, 우리는 조목조목 같은 말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1. 임차인에게는 집을 보여줄 법적 의무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모든 요일, 모든 시간 협조한 두 달간의 증거'는 전부 메시지로 남아있다. 임대인은 만기가 3주 남은 시점에서 '계약이 파기되었으니 다시 아무 때나 집을 보여주라'고 임차인에게 강제할 수 없다.
2. 임대인은 새로운 임차인 여부와 상관없이 만기에 보증금을 반환해야 한다. 하지만 임대인은 만기 보증금 반환 여부에 대답하지 않고 '새로운 임차인과 날짜를 맞추라' 주장하며 임대인이 좋아하는 '통상적' 이사날짜 확정시기에도 날짜를 확정하려는 의사가 없으니 보증금 반환 의사가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3. 갭투자를 하여 현금이 없으면 은행에 대출을 알아보고, 보증금 반환 날짜를 확정한 이후에 연락하라. 날짜를 확정하면 집을 보여주는 일에 추가 협조할 의사가 있다.
우리는 앵무새가 되었다. 세 가지의 대답으로 모든 답변을 대신했다. 임대인은 망각증이라도 걸린 사람처럼 '오늘 집 보여줘요' '내일 집 보여줘요' 같은 메시지를 보내왔지만 그런 메시지에는 일체의 답장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법적 효력이 있는 날짜에 맞추어 임대차등기명령과 소송을 시작하기로 계획했고 그렇게 마음을 먹자 모든 것이 편안해졌다. 좋게 좋게 해결하려는 선한 마음이 좋지 않은 결과를 낳는 순간도, 가끔은 있다. 집을 들락이는 사람 없는 평화로운 나날이 흘렀다. 그리고 임대차등기명령을 진행하기 일주일 전, 임대인에게 연락이 왔다. '보증금을 반환해 줄 테니 퇴거 날짜를 알려달라'는 연락이었다.
이후의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두 달 전 미리 봐놓은 매물이 있어 빠르게 집을 계약했다. 심지어 집값이 급락 중인 시기라 우리가 집을 보고 온 시점보다 1억 이상 떨어진 가격으로 계약할 수 있었다. 이사 당일 임대인은 예상대로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나타나 하자를 운운했으나, 어느 것이 우리가 입주하기 전부터 있었던 하자인지 알지 못해 갑질에 실패했다. '어쨌든 보증금을 못주겠다고 뻐기는 동안 집값이 1억 이상 내려갔으니, 한편으로는 고마운 사람들이야.' 나와 H는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웃었다.
빌라에서 두 번의 고통스러운 퇴거를 경험한 후우리는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아이를 키우기에 더 좋은 곳으로 옮기자는 계획하에 이루어진 일이기도 하지만 '빌라를 퇴거하며 겪게 되는 과정이 너무 싫어서'라는 이유도 한몫을 했다. 애초에 그런 것이 이사의 이유가 된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납득이 되질 않지만, 갭투자와 빌라왕에 대한 소식이 수 년째 뉴스에 오르내리는 상황에서 이런 마음이 납득이 안 될 건 또 뭔가 싶다. '고난의 전세 퇴거'라는 주제로 글 다섯 편쯤은 거뜬히 쓰겠다는 생각을 하는 서글픈 오후. 네모 반듯한 건물들을 배경으로 눈이 내린다.고요한 세상이다.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