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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슬노트 Nov 03. 2024

서울개 Ep.5

미용실에 가다

나른한 주말이다.

주말에는 주인들이 늦게 일어난다.

나 역시 주인침대에서 주인 옆에 누워 늘어지게 여유를 부려본다.

밤새 참아온 배설물들이 나오겠다고 아우성을 치지만 주인을 보니 아직 때가 아니다. 다시 꾸욱 참아본다.


주말 아침에는 온 가족이 함께 산책에 나선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나 역시 흥이 한껏 오르고, 남자여자주인은 쉴 새 없이 얘기를 나눈다.

아이와 나는 달리기 시합을 하며, 뒤치락엎치락 바람을 가른다.


"지이이잉...."

이상한 소리가 나는 기계를 든 검은손이 나를 향해 오고 있다. 안돼.. 안돼.. 나는 본능적으로 저것이 위험한 물건임을 짐작하고 도망쳤다. 하지만 얼마 못 가 나는 잡히고 말았다.

"꼬미 좀 잡아줘."

내 발에 이상한 물체가 닿았다..

아... 안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털이 두두둑 떨어진다.

이제 내 눈밑도 이상한 물체가 닿는다. 내 코와 입주면의 털들이 잘려나가는 것을 나는 그저 바라보고만 있다.

갑자가 항문 주변의 털들이 잘려나간다.

아악!!!!!!

갑자기 아랫도리가 시원하다.

이 어색한 느낌.. 안돼.

나는 부끄러워서 도저히 발을 뗄 수가 없다.

아.. 이 비참함을 무엇에 비할 수 있으리오..

나는 차마 내 아랫도리의 썰렁함을 그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가 없어 결국 주저앉아버렸다.

"아빠!! 이게 뭐야.  이렇게 다 깎으면 어떡해.."

아이가 말한다.

"털은 금방 자라."

검은손의 남자주인이 말한다.

"에구... 우리 꼬미 부끄러워서 어째.."

여자주인이 나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얘기한다.

나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눈으로 남자주인을 원망하며 바라보았다.


남자의 말대로 털은 생각보다 금방 자랐다.

하지만 한번 짓밟힌 나의 자존심은 쉽게 자라나지 못했다.


"아빠, 꼬미 미용실에 데리고 가자."


며칠 후 남자주인은 나를 차에 태우고 어딘가로 데리고 간다.

두려웠지만 난 마음을 단단히 먹고 순순히 따른다.

이것이 개의 운명이다.


작은 가게에 들어갔다.

병원 같지만 병원은 아니다. 어쨌든 나는 새로운 여자의 손에 맡겨졌다. 여자는 나를 보며 온갖 달콤한 말로 나를 유혹하며 간식을 내민다. 그것이 나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신호였음을 나는 나중에야 깨달았다.

여자는 가위로 내 털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더 이상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녀의 손에 나를 맡겼다. 나와 함께 했던 소중한 내 털들이여 안녕.

여자는 나를 섬세한 손길로 씻겨주었고, 따뜻하게 말려주었다.


그리고 남자주인이 왔다.

"고생하셨습니다. 와! 우리 꼬미 인물이 훤하네."

"얼마나 얌전한지, 제가 너무 편하게 미용했어요."


집으로 가는 엘리베이터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낯설지만 뭔가 샤프하고 세련되어 보이는 내 모습.

싫지 않다.

"와~!! 꼬미 정말  예뻐졌네."

" 이제야 진짜 서울개 같네."

가족들이 만족스러워하니 나도 내 모습이 더 좋게 느껴진다.


거울에 비친 나.

도도하고 세침해 보이 얼굴의 각도, 날씬한 다리의 각선미, 고급스러움이 묻어나는 꼬리의 풍성함.

이제야 나는 서울개로서의 자존심이 회복되었다.

나는 진짜 서울개.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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