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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교진 Jul 05. 2021

처음으로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

하루를 살 힘을 얻기

지난주에 처음으로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 


1997년 겨울, 내 인생이 확 달라진 날, 사랑하는 어머니가 식물인간이 된 그날부터 나는 고통스러운 마음과 감사한 경험을 글로 써왔다. 계산하거나 머뭇거리지 않고 솔직하게 쓴 표현은 예기치 않은 치유와 용기를 주었고 마음을 건강하게 지킬 수 있었다. 


올해 유독 예전과 같은 글을 쓰지 못했다. 직장과 가정, 교회 모두 내겐 무거운 난관이었다. 


특히 우리 집에 최근 2년간 쌓인 일은 솔직하게 쓸 수가 없다. 마음을 의지할 수 있고 나를 주관적으로 판단하지 않는 서너 분의 지인에게만 세심하게 털어놓았다. 얘기 나누는 순간에는 마음이 좀 가벼워졌지만, 다시 무기력감과 숨 막힘, 두통 그리고 점점 가슴이 답답해졌다. 소리를 지르고 싶고, 머리를 벽에 찧고 싶은 충동을 참고, 심지어 15층 높이의 베란다 밖을 보다가 다리를 걸치고 싶은 충동도 느꼈다. 


지난주에 오랫동안 마음을 털어놓은 <해와달> 쪽지의 최용덕 간사님을 뵈러 갔다. 너무 괴로워서 통곡하고 싶은 심정으로 뵙고 싶다고 문자를 보냈는데, 내려오라고 해주셨다. 제2동탄인 우리 집에서 갈릴리마을까지는 1시간 40분이면 달려갈 수 있었다. 간사님이 가꾸신 농촌체험장의 폐교를 리모델링한 사무실에서 한참을 대화했다. 부근에서 기른 채소들을 반찬으로 한 시골 된장국으로 저녁을 맛있게 먹으며 기운을 차렸다. 간사님이 정신과 진료를 꼭 받으라며 헌금까지 주셨는데 적은 돈이 아니었다. 병원 진료를 받으라는 조언은 종종 받았지만, 병원비까지 주시는 최 간사님만의 그 특별한 온기에 가슴이 뭉클했다. 


집에 돌아와 생각했다. 예전에 읽은, 우울증을 극복한 이야기를 쓰신 MBC 기자 김정원 씨의 책에서는 정신과를 택할 때 주변 사람들이 눈치챌 수 없는 곳, TV에 출연하지 않는 의사께 받았다고 했다. 007 작전처럼 자신을 알아볼 사람이 있을까 피해 가며 쑥 들어가 받은 정신과 진료에서 중간 단계의 초기 우울증을 진단받았다는 그분의 책에서 나는 더 심하면 심했지 증세가 약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책을 읽을 때보다 올해 심각했다. 


어느 병원에 가야 할까, 고심하다가 2010년 <볼리비아에서 온 편지>라는 책을 편집할 때 추천사를 받은 선생님께 가보기로 했다. 저자 이기제 선교사님은 볼리비아에서 언더우드와 같은 존재인데 그분이 과거에 지도한 청년부의 제자가 정신과 선생님이었다. 사실 작년에 내 페북 글을 보시고 먼저 만나고 싶다고 메시지를 주시기도 했고, 저녁 식사를 같이한 적이 있다. 그래서 대략 내가 괴로워하는 문제를 알고 계셨다. 


사실 병원에 전화 예약한 그날, 숨이 잘 안 쉬어지는 가슴 통증이 왔다. 그날 낮에 있었던 일은 내 정신력의 한계를 넘어서 버렸다. 온라인 수업을 마친 두 아이에게 몇 가지 중요한 말을 일러두고 집을 나서는데 버스 정류장까지 걷는 뙤약볕에 어지러움이 몰려왔다. 숨을 천천히 쉬며 버스로 서울을 갔다.


병원은 조용했다. 크리스천이면서 정신과의원의 문을 여는 건 용기가 필요하지만 사실 별거 아니었다. 조용해서 좋았고, 심적인 고충을 편히 털어놓는 시간은 짧았지만, 일단은 약 처방으로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이 절실했다. 선생님은 '단순하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니' 일주일치 약을 처방해 주시면서 약이 안 맞는 것 같으면 언제라도 병원으로 오라 하셨다. 정신과 약은 따로 약국을 가지 않아도 된다. 병원에서 바로 조제해 주었다. 낮 시간에 가슴이 답답할 때 먹는 알약과 자기 전에 먹는 약, 두 가지였다. 그리고 진료비가 예상치보다 부담없고 저렴했다. 진작에 올 것을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약봉투에는 정신과의원이 표기돼 있지 않다. 누군가 약 봉투를 보고 판단할 것을 사전에 예방한 배려로 보인다. 


병원을 나와 편하게 차 한잔 할 대상을 물색하다가 경복궁역 부근의 스벅에서 만날 수 있다는 옥 박사님과 약속을 잡았다. 카페에서 알약을 하나 삼켰다. 조금 시간이 흐르니 숨쉬기가 편해졌고 기분도 좋아졌다. 그리고 마음이 순해지는 걸 느꼈다(?). 내가 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다른 사람을 책잡기 싫어졌다. 기억 속의 수많은 나쁜 인간들과 수치의 기억들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현재의 내 상태가 힘들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많아졌다. 


스벅에서 만난 옥 박사님은 따뜻한 미소로 내 얘기를 친절하게 공감하며 경청해주셨다. 


나중에 같이 거제도 여행을 하자는 얘기도 나누면서, 집에서의 나와 현재의 내 마음 조도가 달라졌다. 환해진 그 마음 조도는 점차 어두워지고 불안이 몰려왔지만, 자기 전에 약을 먹고 다른 날들보다는 편하게 수면을 취할 수 있었다. 늘 새벽 2~3시까지 잠 못 들다가 오전 내내 정신을 차릴 수 없는 괴로움을 아이들 앞에서 보일까 불안해했는데, 아침에 조금 나아진 머리로 깨었다. 


어젯밤까지 처방받은 약 중에 낮에 긴급할 때 먹는 약은 첫날 외에는 먹지 않았고, 잠자기 전의 약은 하루 빼고는 매일 먹었다. 아직은 의욕과 소망이 생길 수 없는 상태로 견뎌야 하지만, 내 문제는 기도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특별한 변화만이 탈출구가 되기 때문이다. 고민했던 제주도 살이도 물 건너갔다. 지금은 지켜야 할 아이들 걱정이 가장 크다. 


자주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나는 거의 매일 아침 드는 생각이었다), 진료를 받아보는 게 좋다. 약이 도움이 된다. 나는 아침마다 말씀 묵상을 하지만, 정신과 진료를 받는 것이 겸손한 태도라고 여긴다. 오늘 이 글을 쓰고 집 앞 운동장을 5바퀴 이상 뛸 것이다. 글을 쓰기 전에는 없던 의욕이었다. 나를 기록하고 의욕을 얻는 것이 그동안 내가 살아온 방식이었다. 단지 지금 무엇이 나를 아프게 하고 있는지는 표현하기 어렵다. 


덧, 이 와중에 한동대 사회복지학(이지선 교수) 종강 수업의 특강을 다녀왔다. 강의실에 학구열 높은 15명의 학생이, 줌으로 15명의 학생이 듣는 수업으로 지선 교수는 줌 강의를 추천했지만, 나는 포항까지 내려가 강의했다. 그날의 일은 다음 편에 쓰겠다. 짧게 언급할 내용이 아니다. 내 인생 그래프에서 최악의 바닥을 내려올 때마다 상상할 수 없는 감동으로 하루를 살 힘이 생겼다. 오래 지체하지 않고 한동대 다녀온 얘길 쓸 수 있기를 바란다.


2021.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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