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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크슈타인 Nov 04. 2024

이상한 조짐


2년이라는 시간은 짧지도 길지도 않았다.

그 사이에 세상엔 많은 변화가 있었고, 나도 많은 배움을 얻었다.  그리고 드디어 전역을 맞이할 날이 다가왔다.


1997년 5월.


제대하는 날 그 하루 전, 전역신고 전야를 난 당직근무로 보냈다.  어차피 말년병장에 내일이면 사회로 나가니까 마지막으로 일직사병 노릇하고 가라는 중대장의 농반진반 시비에 가뜩이나 말년에 쌓인 게 많았던 난 ‘네, 제가 설게요 까짓 거 뭐’ 하고 그 얄팍한 수에 덜커덕 말려들고 말았던 것이다. 아니, 알면서도 일부러 그런 것이다. 소심한

반항이랄까.


가뜩이나 서무, 경리, 군수 그러니까 작전계를 뺀 부대의 모든 행정업무를 도맡아 하고 있는 마당에 후임자를 붙여주지 않아서 병장 3호봉이 될 때까지 업무를 놓지 못하고 안 줘서 개고생 하고 있는데, 그 사정을 뻔히 알고 있는 중대장이란 사람이 얘기하는 게 빈정거리는 것 같아 내 귀엔 도시 좋게 들리지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신병 중에 후임자 후보가 전혀 없던 건 아니었지만, 단순 보병, 작업병이 아니라 부대의 중요한 군수계와 경리계를 겸해 맡고 있던 내 업무는 어느 정도 머리도 빠릿빠릿 돌아가고 눈치도 있어야 하는 보직이었다. 그야말로 사람이 급하다고 또 아무한테나 맡길 수도 없는 노릇.


게다가 하필 내가 입대해서 일병쯤 될 무렵부터는 군 시스템 전산화 사업이 추진되어 기존의 수기 기반의 업무에서 전산화하는 작업까지 병행되어 행정실의 무거운 도트 프린터에선 날마다 드드드득 드드드득, 프린팅 하는 소리가 가득 찼고 플로피 디스크를 꽂고 전산 매뉴얼에 따라 전산화하는 작업까지, 같은 일을 이중으로 해야만 했다.


경리계로서 부대원의 급여와 장교, 하사관 간부들의 각종 제 수당을 챙겨줘야 하고, 2,4종 군수계 업무는 매달 돌아오는 군지태-군수지원태세의 날을 잘 대비하려면 나름 엄청난 정신적 스트레스와 업무량이 뒤따르는 보직이었고, 만에 하나 실수라도 있어 재고가 안 맞거나 할라치면 한마디로 난리가 나는 것이었다.


참고로 물자보급 군수 업무와 관련하여 2종이란 장병들이 매월 사용하는 두루마리 휴지나 각티슈부터 각종 피복류(전투복, 생활복, 슬리퍼 등등)나 장구류(전투조끼, 수통 등), 집기, 수공구, 내무생활용 보급품(건조기, TV, 책상, 관물함) 등 다른 종에서 안 다루는 품목 전부라고 보면 되고,  4종은 건설자재 및 전기, 축성자재, 시멘트나 합판, 전깃줄, 배터리 등의 부속기재가 여기에 속한다. 다루는 품목 대부분 무겁거나, 위험하거나, 부피가 크거나 해서 한마디로 관리하기 골치 아픈 것이란 말이다.


사단 사령부를 출입하면서 각종 공문 수발을 하고, 더불어 부대원들의 우편물과 소포 등을 발송해주고 받아오는 것은 물론, 시내 오바로크점이나 은행 등도 들러야 하는 전령 업무는 덤.  그나마 전령은 자신들의 우편물을 보내주고 가져다주는 역할이라 일명 ‘사랑의 전령사’로 불리며 혹여나 너무 갈구면 자기들 우편물, 애인의 편지를 안 건네줄까 봐 고참들로부터는 적당히 배려를 받는 장점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짬밥 없던 이병, 일병 시절의 얘기고, 지금 말년 병장이 된 이 짬밥에 우편물까지 일일이 챙겨야 하는 건 엄청난 고역이란 것.  스트레스 쌓일 땐 부메랑 던지듯 내무반 여기저기로 편지를 던지며 누구 건지 맞추기 내기도 시키곤 했지만.. 휴. 날 이렇게 사악하게 만든 건 전적으로 후임을 안 뽑아준 중대장, 주임원사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행정업무를 한다고 사정도 모르는 작업병 동기들은 부대 내 훈련 때 내가 업무 때문에 가끔 빠지는 것을 두고 넌 편하겠다고 시기나 했었더랬다.

이런 마당에 전역 두세 달 전에야 간신히 후임이 들어와서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녀석 가르치느라 이런 극 말년까지 이중으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한테 당직을 서라고? 하..  그야말로 뚜껑 열리는 소리를 농담이랍시고 하는 눈치 없는 중대장이라니.


심지어 전역신고를 하고 한다는 덕담이 기껏

“고생했다. 어제 당직 섰으니 오전에 근무취침 좀 하고 가~”

라는 중대장의 농담을 등 뒤로 남기며 나와서 그야말로 누구나 하는 말이겠지만 침 한번 뱉고 두 번 다시는 부대 쪽으로 고개도 안 돌린다는 심정으로 부대원들의 환송을 받으며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그나마 눈치가 좀 있는 주임원사가 자신의 차로 의정부역까지 같이 와서 설렁탕을 사준다. 조금 고맙기는 했지만, 그동안 내가 자기 텃밭을 얼마나 갈았는지 생각하면 설렁탕이 아니라 베이징 덕을 쐈어도 시원찮을 판이었다.


그렇게 군대와 작별을 하고 서울로 진입.. 내게도 전역일이 오긴 오는구나!   새삼 소회가 밀려들었고, 드디어 서울에 입성한 난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곧바로 대치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최대한 약소하게 챙겨 나온 내무반의 짐을 넣은 배낭과 함께, 지하철에서 내려 근처 아트박스에서 산 사람 크기만 한 곰돌이 인형이 내 팔에 감겨 들려 있는 채로.

바로 기은에게 줄 선물이었다.  솔직히 부끄럽기는 했지만, 모름지기 군복을 입으면 사람이 뻔뻔하게 변한다고 하지 않던가. 모자를 눌러쓰고 보무도 당당히 걸음을 재촉했지만, 내 맘은 그와는 반대로 차갑게 가라앉아만 가고 있었다.


‘왜일까?’

‘대체 무슨 마음인 걸까, 내가 뭘 잘못했었던 걸까..’


마음속엔 내리 이런 생각만 가득 차 있을 뿐.


기은이가 변했다고 느낀 건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 하지만 그 변화가 뭐라고 하기엔, 대놓고 묻기엔 뭐랄까, 너무 애매하고 혼자 괜히 급발진하는 느낌을 줄 것 같달까.. 그런 애매한 상황, 불편한 마음에 더 짜증이 났다.


인도여행.


그래, 인도여행이 문제였다.


벌걸음을 옮기며 내 기억은 다시 그날로 돌아가고 있았다.


상병 말호봉 시절.. 어느 날 밤, 일과를 마치고 공중전화박스에서 들은 삐삐 사서함에 남은 기은의 음성은 울먹이고 있었다.

종강을 하고 방학 때 선배 누나들하고 인도여행을 가기로 했다는 것이었는데, 오빠는 군에서 고생하고 있는데 혼자만 해외여행을 가는 것에 대한 미안함, 같이 가지 못하는 아쉬움, 그런 것들이 잔뜩 묻어있는 그녀의 음성은 살짝 떨리며 울먹이고 있었다.


“오빠 고생하고 있는데 나만 이렇게 팔자 좋게 놀러 가서 미안..”

”나중에 제대하면 같이 여행 가자 “

“그동안 몸 건강히 있어야 해.. “


마음이 뭉클해지면서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디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니고, 몇 달을 여행 가는 것도 아닌데. 게다가 난 어차피 군에 있어서 며칠을 다녀오든 국내에 없더라도 실상은 아무런 차이가 없는데 말이다.

게다가 같이 가는 선배 누나들은 나하고도 친한 선배들이라 본인이 연락을 못해도 난 이런저런 여행 얘기를 다 들을 수도 있는 상황.


날 위하고 걱정하는 마음, 혼자만 놀러 가는 것에 대한 미안함 그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시린 겨울이었지만 내 가슴은 따뜻해지고 있었다.


그때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우리의 사랑이 더욱 견고하고 깊어져 가는 듯한 느낌에 사랑의 감정이 충만해졌더랬다.


인도에 가서도 기은이는 나에게 간간이 엽서를 보내왔고 그 작은 엽서에 작은 글씨로 빼곡히 찬 이야기들은 같이 못 간 대신 나에게도 자신이 보고 듣는 인도여행의 이야기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상함을 느낀 건 인도여행을 다녀와서 한두 달이 지난 뒤였다.  오랜 여행 후 귀국을 했으니 나에게 연락도 더 자주 하고, 면회도 곧 올 줄 알았던 기은이는 그때까지도 웬일로 소식이 뜸했다.


그러다 받은 편지.  


편지에는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들과 나에 대한 걱정이 여느 때처럼 담겨있었지만, 난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그건 글 만으로도 전해지는 무언가 본능적인 것이었다.


역시나 나의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오빠를 좋아하지만 앞으로는 자기 인생에서 나를 무엇보다도 앞선 최고의 우선순위, 절대적인 그 무엇으로는 보지 않겠다는 말이 편지의 말미에 적혀 있었다.


평소에도 사랑이니 어쩌니 하는 단어는 별로 입에 올리지 않았었기에 ‘좋아한다 ‘고 표현한 것이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문제는 그 뒤의 말.. 인간은 자신의 존재가, 자신의 생존이 최우선이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였지만, 굳이 그렇게 명시적으로 꺼낼 이야기도, 꺼낼 타이밍도 전혀 아니지 않은가. 내가 언제 나를 너의 삶에 무엇보다도 앞서는 절대가치로 두라고 강요했던가. 거기에 대해 아니야, 그러면 안돼. 언제나 오빠가 최고이고, 항상 오빠와의 일이 최우선이어야지. 하고 답장을 보낼 수도 없지 않은가.


왜일까, 왜 굳이 이런 얘기를 써놓은 걸까.

내가 부담을 준 게 있었나.

부담은커녕, 딱 한번 들었던 말은 그거였다.


내 연락.  내가 먼저 편지를 보내거나 자기의 편지에 답장을 보내는 게 너무 뜸해서 오빠 연락 기다리느라 힘들었다는 이야기.

혹시나 내가 다른 사람이 생겼는지 걱정했다는 이야기.


그 말을 들었을 땐 피식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는데, 그게.. 그런 나의 태도가 기은의 입장에선 부대에 있는 나 못지않은 불안감과 스트레스로 다가와 쌓였던 것은 아니었는지. 새삼 땅을 친다.


나로선 부대에 외따로 떨어져 기은에게 아무것도 해줄 게 없고, 곁에 있을 수도 없어.  편지를 자주 보내봤자 기은이에게 고무신 거꾸로 신지 말라고, 구차하게 붙잡아 두려고 그러는 것 같아, 그런 자격지심 같은 마음을 들킬 것 같아 자제한 것뿐이었는데...



그 큰 인형을 들고 집 앞에 갔지만 그녀는 없었고, 예전에 우연히 알아두었던 남동생의 삐삐 번호로 메시지를 남겨 집 앞에서 만나 인형만 건네주고 난, 그렇게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다 큰 남정네 둘이서, 한 사람은 사복 차림으로 다른 사람은 군복을 입은 채로 사람 크기만 한 곰돌이 인형을 주고받는 모습은 필경 무지 이상했으리라.


부아가 치밀었다.


다른 날도 아니고 자기가 그렇게 가더리던 나의 전역일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 큰 인형을 들고 왔건만, 어디를 간 건지 연락은 안 되고 얼굴도 보지 못한 채, 기껏 동생을 만나 인형만 건네주고 터덜터덜 돌아가는 내 꼴이라니.


갑자기 조금의 수치심과 함께 짜증이 밀려왔다.

나에게 그렇게 서운했나. 그러다가 마음이 변했나.



무기력하고 착 가라앉는 마음에 누군가를 만나고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집으로 돌아왔다.


할머니와 부모님께서는 날 반기시며 성대한 저녁을 차려주셨다.  그렇다. 가족은 나의 활동반경이 넓어지고 점점 더 멀어질수록, 그리고 마음이 안 좋을수록 언제나 따뜻하게 품어주고 늘 반갑게 맞아주는 둥지 같은 곳이었다.


드디어 지긋지긋했던 군복을 갈아입었다.

배불리 저녁을 먹고 샤워까지 마치고 방으로 들어와 누우니, 비로소 완전한 사회인으로 다시 복귀한 기분이 들었다.

난 그동안 차곡차곡 쌓여 조그만 박스에 담아 가지고 나왔던 편지통을 꺼냈다.

그리고 오늘 연락이 되지 않았던 그 녀석에 대한 원망을 담은 손으로 기은이가 보냈던 편지들을 꺼내 하나씩 다시 읽어 보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다고.  내가 그동안 까먹은 건지, 아니면 처음 편지를 받았을 때 건성건성 읽었던 건지..

고립된 부대 안의 공간과 자유로운 집안 내 방이란 공간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착각 같은 것일까.

내용이 생경하게 느껴지는 게 이 편지들이 마치 수십 년 전의 편지를 꺼내 읽는 기분이 들었다.  

 

" 내가 읽은 몇 안 되는 책 중에 몇 안 되는 슬픈 책.
  나와 '공감'이 있는 유일한 책을
  나와 공감이 있는 유일한 오빠에게 보내요.

       - 95년 겨울 입동날, 기은이가 "

 

입대 초기에 기은이가 보내줬던 책, 일본 소설이었다.  책 표지 안 첫 장에 써놓은 이쁜 말과 함께  고이 포개어 접혀진 종이  편지를 다시 살살 풀러 펼쳐 보았다.


" Dear 오빠야..

  오늘이 입동이래.  어쩐지 너무 썰렁하더라. 그지? 여기도 추운데 오빤 얼마나 추울지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진짜루.  오빠의 사춘기병이 빨랑 나았으면 좋겠다. 헤.  나같이 나쁜 X도 없을 거야.  오늘 오다가 서점에 들렀어.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사려고. 오빠 보내주려고.  한 군데 갔더니 없어서 쬐끔 걸어서 샀어. 꼭 읽어봤으면 해서.  희진이가 빌려줘서 읽어봤는데 너무 맘에 들더라구.  사실 일본 작가가 썼다는 건 생각도 안 했어.  난 예전이나 지금이나 일본작가 따위가 쓴 일본책 따위는 읽을 생각이 없었거든.  그건 이 책을 읽고 감동한 지금도 변함이 없고.  

앞뒤가 안 맞지만 이 책은 뭐랄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인 것 같아.  아니 그보단 내 얘기라고, 내 생각이라고 하는 게 나을까?  아니  내 방식이라고 하는 게 가장 적당할 것 같아.  어쨌든 '공감'이란걸 느꼈어. 앞이랑 뒤에 보면 안재찬과 박인홍의 쓸데없는 해설이 나오는데 그 부분 빼고 나머지는 다 맘에 들어.  너무 슬퍼서 잠깐 쉰 거 빼고는 정말 후다닥 읽어버렸어.

어떤 사람들은 쓰레기 같은 소설에 쓰레기 같은 인생이라고 말하겠지만 내게는... 좋았어.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야.  내가 60, 70년대 소위 히피족들을 동경하는 이유랑, 담배에는 관심 없지만 마약에는 관심 있는 이유랑... 뭐 그런 것들이 이 책 안에 다 들어있더라구.  난 말로 표현하지 못하겠어.. 그래.. 누가 몸이 안 좋은지, 왜 혈색이 안 좋은지, 밥은 먹었는지 물어보는 거 같이 사람들이 말하는 착하고 천사 같은 사람들이 하는 남 챙겨주는 것은 자꾸 까먹고 생각도 못하고 그러지만, 죽고 싶을 때 같이 죽고 망가지고 있는 사람 곁에서 같이 망가져 가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내 방식이거든.  

그래서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 같은 사람들을 보면 다 나 같아서 반갑고 슬프고 그래.  이 책이 오빠 맘에 들런지 모르겠다.  글쎄.. 내 생각엔 별로 안 좋아할 것 같은데.. 모르지.  난중에 오빤 어떻게 읽었는지 말해줄래?  궁금하잖아....

이야. 겨울이야. 오빠.


p184.  피가 가장자리에 묻은 유리 파편은 새벽 공기에 물들어 투명에 가깝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다.

나는 일어나서 나의 아파트를 향해 걸어가면서, 이 유리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스스로 저 완만한 흰 곡선을 비쳐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 자신에게 비친 그 우아한 곡선을 가른 사람들에게도 보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늘 끝이 밝아 오면서 탁해지고, 유리 파편은 곧 흐려졌다.  새소리가 들리자 이제 유리에는 아무것도 비치고 있지 않았다.  

                           1995. 11. 8.  기은이가  with  Love


마음이 따뜻해지면서도 한편으론 살짝 시려왔다.


또 다른 편지를 하나 꺼내 들었다.

오빠란 표현이 너무 좋았다.


사실 동기인 우리끼리 기은이가 나에게 '오빠'라고 부를 일은 없었지만, 다행히 생일이 내가 좀 더 빨랐고, 군 입대를 앞두면서는 군에 가서 나한테 편지를 쓸 때는 꼭 '오빠'라고 해달라고 여러 번 말했었던 터라, 착한 기은이는 곧잘 내 말을 들어주었다.


연인을 떠나보내서 슬프고 안쓰러운 마당에 무슨 말인들 못 들어줬을까마는, 나도 막상 얘기하려니 얼굴 보면서 갑자기 호칭을 오빠로 바꾸라고 하기는 조금 민망했고, 그래서 군에 간 후 편지 쓸 때부터 그래 달라고 했던 것이었다.


한국에만 있는 듯한 '오빠' 란 단어의 신비한 힘이랄까..


" Dear 재용오빠...

사실 이 책을 오빠 생일 때 보내려고 했는데. 이제서야 다 읽었거든. 난 네가 읽은 책만 선물하거든. 늦게나마 보내는 선물이야. 나름대로 재밌으니까. 오빠도 재밌게 읽기 바래. 무슨 책을 보낼까 고민하다가 예전에 희진이가 이 책을 재밌게 읽었다고 한 말이 기억나서. 사실 다른 사람들은 몰랐겠지만 몇몇 여자 동기들 사이에서 일본 소설이 유행했던 적이 있어.
난 이 사실이 아주 맘에 들어. 사실 일본 소설을 내가 그다지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어떤 청바지가 유행했다거나 어떤 머리모양이 유행한 것과는 다른 아주 멋진 일이라 생각해. 어쨌든.  그때 나도 조금 읽었었는데 썩 맘에 들진 않지만 다른 뭔가를 남기는 것 같아.  
일본소설을 읽으면 동석이, 희진이, 다영이, 성희, 호석이, 현주언니 가은 사람들이 생각나. 현숙 언니도. 나랑 아주 친했던 사람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항상 연상되는 사람들이야. 내가 일본소설을 이해하지 못하고 조금은 거리가 있었듯이 이 사람들과도 그랬던 것 같아.  생각해 보니 그 많은 사람 중에 남아있는 사람은 희진이 밖에 없네.  

어쨌든 다시 한번 오빠 생일 축하해!  오빠의 23살이 행복하길 바래.  이 책에 비슷한 표현이 있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이 안 나네.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구절 중 하나 적을게.  건강해!

'... 글이라는 불완전한 그릇에 담을 수 있는 것은 불완전한 기억이나 불완전한 상념 밖엔 없다는 것을...'    
 from  기은 ^^   1996. 1. 10.  "


위이~잉.. 위이~잉..   그때였다. 삐삐가 울린 것은.


얼른 집어 들어 액정을 보았다.  기은이었다.

그럼 그렇지.  오늘 무슨 급한 일이 있었을게다.  


기은이가 보고 싶은 마음에 늦은 저녁이지만 얼릉 좌석버스를 잡아타고 은마아파트로 달려갔다.

어스름한 저녁, 기은이는 우리가 늘 있었던 집 앞 놀이터의 그네에 앉아 있었다.   


"기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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