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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크슈타인 Nov 14. 2024

놀이터 그네 앞, 해후


1997년 5월 1일


이 날은 LG다저스 팀에 입단하여 사상 최초로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박찬호 선수가 5이닝 2안타 1 실점으로 호투를 펼쳐 선발 첫승을 거둬 온 국민이 열광한 날이었다.

한편으론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 씨의 비리와 국정개입 의혹에 대해 대검 중수부가 극비리에 조사 중이라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가 92년 대선자금의 핵심은 김영삼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3천억 원과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으로부터 받은 6백억 원 불법 대선자금 의혹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면서 여야의 공방이  한층 가열되고 있었고, 집권당의 이회창 당대표는 김영삼 대통령과 서서히 각을 세우고 있는 와중이었다.


세상은 여전히 시끄러웠지만, 망각과 고립의 시간 속에 있다가 가까스로 군대의 울타리에서 탈출에 성공한 난 그 사실을 기뻐할 겨를도 없이 오매불망 기다리던 기은이의 사소한 태도 변화로 인해 마음이 아래로 아래로 꺼져 들어만 가고 있었다.


하루 온종일이 지나서야 다시 마주하게 된 녀석.

그녀는 우리가 예전에 늘 그랬듯이, 뒷모습이 보이는 방향으로 그네에 앉아 발을 튕기며 살짝 흔들거리고 있었다.  


“기은아!”


우린 두 손을 맞잡고 나란히 그네에 앉아 별말 없이 살짝 발을 튕기며 약간의 흔들림을 느끼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붙잡아 포개는 손을 그녀가 굳이 피하지는 않았다고 해야 할까.

이건 내가 2년 동안 상상해 왔던 해후의 순간은 분명 아니었다.


멀리서부터 반가움의 눈물이 그렁그렁, 전투화를 신은채 그 무거운 발로 날다람쥐처럼 가볍게 뛰어가 기은이 앞에 서서 외치고 싶었었다.


“충성! 병장 정재용, 전역을 명 받고 그대 앞에 왔습니다!!”


하고는 와락 그녀를 껴안고 쌓고 또 쌓아두었던 그리움을 무장해제시켜 그녀 앞에 모두 풀어놓을 참이었다. 적어도 그런 그림이었다. 내가 그려왔던 재회의 장면은..


조금은 어색한 듯, 조금은 답답한 듯, 잠시간의 침묵은 이내 깨졌다.

“드디어 제대했구나. 이 날이 오긴 오네, 정말 축하해!”

기은이는 특유의 그 똘망똘망한 눈으로 날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다.


내 심장은 오늘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왜 연락이 안 됐던 건지, 내가 제대하는 날인줄 뻔히 알면서 어떻게 그리 애타게 할 수 있는 건지 궁금하고 서운한 맘에 당장 따져 묻고 싶었지만, 나의 이성은 그런 충동을 가까스로 붙잡고 진정하라고 타이르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자리야, 게다가 넌 이제 제대했다구. 찜찜한 일이 있었더라도 천천히 들어보고 지금은 좋은 이야기만 하자. 앞으로 잘 지내면 돼.’ 라고.


“오늘.. 무슨 일 있었니? 오빠 제대하는 날인줄 모르진 않았을 텐데..”

“안 좋은 일이야? 집에 무슨 일 있던 거야?”


하.. 천천히 들으면 돼, 기은이가 먼저 이야기할 때까지 모르는 척 쿨하게 가자. 하고 다짐했던 맘은 그대로인데,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왜 연락이 안 된 건지, 이 밤에서야 연락을 준건지를 이미 묻고 있었다.  한심하다. 그나마 목소리의 톤은 최대한 차분하게, 기분은 하나도 안 나쁘고 그냥 궁금해서 스치듯 물어보는 듯한 태도를 유지했다면 혼자만의 착각일까.


“과보 편집 마감일도 코 앞이고, 한참 불타올랐던 비리 교수 퇴진운동은 결국 실패로 끝날 것 같은데, 선배들이랑 같이 재단 이사장 면담을 해보자고 해서 약속도 없이 쳐들어갔거든. 어차피 총장님은 허수아비니까.  뭐 예상했지만 당연히 이사장 얼굴은 보지도 못하고 돌아왔지.”


오빠 제대하는 건 다른 선배들도 알긴 아는데, 이 와중에 그게 오늘인지는 다들 생각을 못하고 있더라구. 그 분위기에서 혼자 핑계 대고 빠져나오기가 그랬어. 그러다가 정리하고 헤어지는 분위기가 돼서 바로 연락하려 했는데, 하필 아빠가 급하게 회사로 심부름을 시키는 바람에 거기 다녀오느라..”  


난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었다.  객관적으로 들으면 납득할 만한 이유였다.


‘사정이 겹겹이 생기고 꼬이면 무슨 일인들 일어나지 못하겠니. 내가 알지 못하는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해야지.  혼자서 상상하고 서운해하지 말고 나중에 직접 본인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해. 화는 그때 가서 내도 늦지 않아.’


내가 늘 기은이에게 하던 말이었다. 대체로 모든 일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중립적으로, 혹은 양비론적으로 바라보는 나의 태도에 기은이는 답답해하기도 했고, 혼자만 착한 사람 되려고 그러지 말라는 투정도 몇 번 했더랬다. 그런 입장이기에 난 더더욱 화를 내면 안 되었다.


그녀의 얘기는 충분히 이해할 만한 사정이었다.  같이 있던 선배들이 살짝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그들도 내가 군대 간 초기에나 날짜 챙기며 물어보고 안부 전했던 것이지, 2년이 지나서까지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그래서, 바로 그래서 내 가슴은 더 답답해지고 슬그머니 짜증도 함께 올라왔다.  그리고 그런 내 자신이 속 좁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잠시 잠깐 삐삐로 메시지 한번 못 날리나?

 그게 말이 되나? 내가 얼마나 궁금해하고 걱정할지는 생각 안 했나?’  


나의 뇌리에는 기은이의 대답을 이해하려는 이성이 20%, 그 나머지 80% 정도는 이런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런 내 심사를 눈치챈 것인지, 기은이가 말을 이었다.


“난 이제 3학년이잖아. 오늘 일도 일이지만 졸업 후를 생각하고 있는데 머리가 복잡해.

어학연수 6개월을 다녀오긴 했었지만,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싶어. 그래서 1년 더 휴학을 할까 싶기도 한데, 집에서는 내가 바로 졸업하길 바라셔.


아빠는 내가 아빠 회사 일을 돕길 바라시고. 아니다, 돕는 게 아니라 배우길 바라시는 거지. 원래는 남동생이 회사일을 배우길 바라셨었지만, 그 녀석은 워낙 어렸을 때부터 예술 쪽으로 한다고 고집부렸던 터라, 아빠도 이미 몇 년 전에 포기하셨어.  

난.. 아직 뭐를 하고 싶다고 정확히 정한 게 없으니.. 아빠는 내가 회사 일을 빨리 배워서 이어받길 바라셔.. 오빤 이제 제대해서 2년을 더 다녀야 하는데..”


그렇다. 어느새 세월은 흘렀고, 우린 조금씩 더 나이를 먹었다.

기은의 얘기를 듣다 보니 내가 군대 가기 전, 함께 푸릇푸릇한 캠퍼스를 거닐며 낭만을 얘기하던 시절은 이제 거의 다 지나가 버린 것만 같았다.


그러고 보니 기은이의 처지가 다시 보였다. 기은의 아버지가 기업을 운영하시는 것은 얼핏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제 보니 집에서는 기은이가 회사를 물려받길 바라시는 것이었다.


대치동 은마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그녀, 우리가 학교 근방이 아닌 데서 만날 때는 주로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 근방이었던 것이 새삼 떠올랐다.  여태껏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도 의식하지도 않았던 요소들이 처음으로 내 뇌리에 떠올라 잠시 머물고 있었다.


그래, 심사가 복잡하겠지…


그렇다면 그런 현재의 마음과, 상황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문제였던 건가?

어느새 오늘 잠깐 한 번이라도 연락을 안 줬던 것에 대한 서운함은 꺼낼 일조차 안되어 버렸고, 내 머릿속은 복잡해져만 갔다.


“그렇구나.. 생각해 보니 우리가 서로의 집안일에 대한 얘기는 별로 나누지 않았었지. 머리가 복잡하겠구나.”

“그런데…”


“그게 이유니?  편지에 앞으로의 네 삶에 오빠를 무엇보다도 최우선적인 가치로 두지는 않겠다는 그런.. 표현을 한 것 말야.  나에 대한 마음은 변하지 않았는데, 최우선은 아닐 거라고 하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솔직히 서운한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고..

무엇보다도 잘 이해가 안 돼.  지금처럼 친하게는 지낼 건데 그런 토를 달면.. 내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거지?”


“앞으로는 급한 일이나 더 중요한 일이 있으면 약속도 깨고 그걸 먼저 할 수도 있어.. 뭐 그런 것에 대한 사전 예고인가?”


말을 할수록 살짝 내 말투가 안 좋아지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우리가 맞잡았던 두 손은 떨어져 있었다.


답답했다. 급한 일이 있으면 당연히 약속이 있었더라도 깰 수 있는 것이다. 얘기를 하고 다음에 약속을 다시 잡고 보면 될 일이니까. 우리가 예전에는 언제 안 그랬나?

내가 기분이 나쁘고 찜찜한 점은 바로 이거였다.  왜 굳이 이런 말을 할까.


‘앞으로도 계속 친하게 지내자고? 그럼 우린 앞으로 연인 관계는 아니라는 건가? 그건 하지 말자는 얘긴가? 앞으로 잠은 안 자겠다고 얘길 돌려 말하는 건가?’


머릿속에 드는 이런 생각들을 차마 말로 뱉어낼 수가 없었다.

자존심도 허락하지 않았지만, 혹시나 그 말을 뱉어내서 듣게 되는 기은이의 말이 ‘그렇다’고 할까 봐 겁도 났다. 내 말로 인해서 우리 관계가 안 좋은 쪽으로 명확해지고 더 빨리 끝나버릴까 봐.


솔직히 처음 만나 사귈 때에는 상대방 생각 밖에 안 나고 다른 일을 제쳐두다가 만난 시간이 길어질수록 차츰 그 불덩이 같은 마음이 잔잔해지기는 하는 것이고, 그런 변화를 어느 한쪽이 상대방에게 마음이 식었네 변했네 어쩌네 하면서 갈등이 생기고 싸움이 일어나는 것이다.

지금 우린 내가 아닌 기은이의 태도 변화가 감지가 되었는데, 내가 화가 나는 이유는 적어도 난 기은이의 변심에 귀책이 될 만한 일은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냥 마음이 변한 거라고…?  이렇게 허무하게 사랑이 변할 수 있는 건가?


군에 있던 시간만큼 사람이 단순해지고 멍청해지고 유치해진 것인지..

기껏 제대한 날에 연인을 만나서 이런 대화를 하고 있는 이 상황과 이 순간이 너무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이별을 통보하고 떠나버렸던 경희가 떠올랐다.

뒤이어 손 내밀어 잡아주지 못했던 민아가 떠올랐다.


“휴...”


더 이상 별다른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던 기은이에게 더 들을 말은 없을 것 같았다.

알코올이 무척 당겼지만 지금 이 분위기, 이 상황에서 어디 가서 한잔 하자고 말하기도 싫었고, 애틋한 키스는 물 건너간 것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인 것 같았다. 생각을 좀 정리하고 연락을 하면 되고, 어차피 복학하면 또 학교에서 만날 것인지라, 이만 작별을 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인형은 받았니?”


“.. 응”


“그래, 오늘은 시간이 늦었으니 이만 가볼게. 너도 피곤해 보인다.”


“안녕”


“안녕”


난 빠른 걸음으로 서둘렀고 단지를 거의 빠져나와서야 뒤를 돌아보았다. 시선은 기은의 집 앞 놀이터로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녀는 아직 그네에 앉아 있었다.


얼마간 쳐다보았을까, 다시 달려가 기은을 안아 일으켜 꼭 껴안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자고 말하고 싶었다. 그것뿐이었다.

.

.


내가 그 사람에 대해 많이 알고 있어야만 하는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걸 얼마 전에야 알게 되었고, 요새 사람들이 그 사람에 대해 많이 묻고 하면 더욱 많이 느껴지고 그래요.

그런 사람 = 그 사람 = 1004

- 너무너무 보고 싶은 1004 오빠에게 보내는
   첫 번째 편지 -


Dear 오빠야..

어.. 멋진 말로 시작하고 싶은데 역시 생각이 안 나네요. 사실 존댓말을 써야 할지 섞어 써야 할지 반말로 써야 할지도 한참 고민했어요.
오빠 편지는 23일 날 잘 받았어요. 그때만큼 반갑고 기뻤던 날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날은 부스스하게 마치 학구파처럼 차려입고 안경 딱 쓰고 번역 숙제한 것 가지고 열심히 학교로 갔는데 그날 과대표인 기현이가 일이 있어서 내가 대신 수강신청 확인서를 교학과에 가져다 주기로 했었거든요. 저벅저벅 가다 보니 우리 과 우편물함에 편지가 가득한 거예요.

가까이 가보니까 눈에 익은 글씨체가 보이더라고요. 그땐 정말 이게 혹시 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마구마구 들더라고요. 교학과부터 학회실까지 복도에서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아서 싱글벙글 웃으면서 왔다니까요.  너무 좋고 반갑고 떨려서 한동안 뜯어보지도 못하고 있었어요. -> 농담 아님!  사실은 이젠 편지가 왔으니까 하는 말이지만 연락 안 오는 줄 알았어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살다 보면 시간이 가리라 생각하면서도 ‘정말 안 오네, 죽음이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조용히 가만히 차분하게 살려고 했는데도 주위에서 쏟아지는 질문들이 정말 으악~~~ 오빠 생각 더 나게 하고 (원래 많이 하지만) 더 보고 싶게 하고 맛이 가게 만들더라고요.  형식 선배랑 수정 선배는 오빠한테 연락 안오냐구, 퇴소 언제냐고 계속 묻고.  경원 선배는 주소 아냐고 묻고.  심지어 형곤이는 삐삐도 수신되지 않는 산골에서 학회실로 전화해서 오빠 퇴소일이 언제냐고 묻더라구요.  오빠 인기 많은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이런 질문들을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어요.  헤.  내가 ‘남이사’ 라는 말을 자주 썼던 거 알죠? 오빠는 ‘내가 남이냐’면서 그 말 싫어했구요. 사람들이 오빠에 대해 물으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남. 아.닌.가.봐.”  

오빠가 좋은 사람이어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저를 많이 챙겨주고 그래요. 너무 고마운 사람들인 것 같아요.  내일은 신문 만들러 학교에 가요.  신문 나오면 보내줄게요. 참 O.T때 사진도 보내줄게요. 어쩔 땐 많이 잊어먹은 것 같아서 내가 정말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특히 머리 깎고 모자 쓴 모습은 잠깐 뿐이 못 봤기 때문에 잊어먹지 않으려고 머릿속에 쏙쏙 꼭꼭 집어넣어 놨어요.

사실 정말 정말 쓰고 싶은 말도 많은데 무엇부터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냥 많이 많이 보고 싶고 그래요.  오늘 학교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작년 크리스마스 날 노래방 갔을 때 오빠가 불렀던 들국화의 노래가 나오더라구요. 어제는 학교 앞 사거리에서 오빠 옛날 머리 스타일을 한 남자아이를 보았고요. 그저께는 우연히 잠실 쪽에 갔다가 오빠네 동네 가는 2백몇번 버스를 봤어요. 그리고 TOY에 갔었는데 내 고등학교 때 친구 혜선이랑 오빠랑 같이 갔던 날 앉았던 자리에 다시 앉게 되었어요.

작년과는 다르게 살아가려 하고 다르게 살고 있는데 여기저기에 오빠 생각나게 하는 작은 많은 것들이 남아 있더라고요. 오빠 들어간 날 혼자 기차 타고 올 때 들던 기분.  지금도 그 기분과 같은 느낌으로 살고 있어요.  오빠 너무너무 보고 싶고요, 꼭! 건강하셔야만 해요!

잘 지내요. 이만 줄입니다.

1995. 3. 25 새벽 2시 30분
- 1052 하는 오빠 생각하면서 꼬마악마 기은이가 적었어요.


Ps1 : 퇴소식 날짜 빨리! 꼭! 알려주세요.
Ps2 : 편지 받은 날 오빠 꿈꿨어요. 헤. 매일매일 잘 자고 좋은 꿈 꾸셔야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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