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en Check - 60'S CARDIN
적적한 거리에서 고개를 끄덕일만한 느낌을 받는 건 밴드곡이 가장 적합하지 않을까. 어느 대도시의 굴다리 밑을 지나고 있었다. 마치 이 곡의 앨범 커버와 흡사한. 회색, 파괴된, 칙칙한 도시 어딘가의 정경과 똑 닮은 곳이었다. 마침 천장까지 흐릿해서 구겨진 신문지 뭉치에 갇혀버린 느낌이랄까. 무수히 번진 사회의 잉크들이 거칠게 나를 쓸어대는.
여기저기 쓰라렸다. 정처는 있으나 불안정한 마음을 가다듬을 수 없었던 그때의 나에게, 이 곡은 선물처럼 다가왔다. 휙휙 자연스럽게 넘기려고 했으나 초반부의 디스코와 일렉트로닉 리듬이 당장의 손가락을 멈춰 세웠다.
또 하나의 숨은 보석을 채굴한 이 느낌. 언제 겪어도 짜릿한 기분이었다.
60년대 패션 디자이너의 가르뎅처럼. 당시 모더니즘의 미래지향적이고 세련된 스타일을 풀어낸 곡이라고 한다. 잘 모른다. 그때의 감성이 어떤 것인지는. 겪어보지 않았기에. 그러나 그 시대 특유의 이미지, 그리고 느낌만은 강렬하게 마주할 수 있었다. 오히려 직접 체감하지 않아서 더욱 풍성해질 수 있었다.
첫 가사부터 안전벨트를 채운다. 마치 놀이동산의 무언가가 코앞이라는 듯, 긴박감을 준다. 아, 예상한 대로 이륙 준비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날아오를 준비가 됐냐고 묻는다. 당연하지. 이 스타일리시한 리듬에 누가 준비를 안 했겠는가.
밤새도록 계속해서, 열기를 달라고 한다. 놀이동산의 불빛과 기구들은 꺼지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리고 뜨거운 것들이 눈에 담긴 만큼, 열정을 보여달라고 한다. 눈에 담은 것은 우리의 모습이 되어, 이미 불타오르고 있다. 전율이 인다.
그리고 우리뿐만 아니라, 지금 존재하는 모든 이들이 멋져 보이고 뜨겁게 빛난다. 마치 거대한 태양처럼 보일 것이라 믿는다. 그 모습은 타이트하고 부드럽게 춤추는, 어느 시대의 가르뎅을 닮았다. 좋다, 무척이나 좋아. 완벽해.
단순한 가사여서 더 좋다. 그리고 멋있게 빛나는 순간을 고양감 가득한 베이스 리프, 리듬 기타로 장식한 것까지. 자연스레 몸이 뜨거워진다. '춤추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이 아니라. '도저히 추지 않고서는 못 버티겠는데.'가 딱이다.
한껏 열을 낸 몸에 대비대는 풍경이 아직까지 스친다. 그리고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소용돌이치는 고통 위에 피운 모든 감정들은 결국 가라앉는다. 하지만 잠잠해진다고 해서 마음이 정돈되진 않는다. 하나하나 치우고 버리다 보면, 그 자체도 많은 체력을 요한다. 사실, 소용돌이는 내 발걸음이 끊어질 때까지 칠 텐데. 이 행위들이 무슨 소용이 있나. 아직 쓰러지지 않은 거대한 건축물에 허무가 비처럼 내린다.
쓸고 닦음에 뿌려진 모래알처럼 빛난 잔여물들이 허망하게 빛을 잃는다. 허탈하다. 나는 몰랐다. 너무나도 광활해 지워지지 않는 폐허라고 한들, 어떻게든 정돈하고 지금 서있을 한 줌의 자리를 만드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누군가의 패션처럼, 밤새 열정적으로 춤추라고 하더라. 정말 그래도 되는 걸까? 포스트 모더니즘을 지향하는 나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모더니즘의 정수가 묻어있는 곡이 나를 말리더라.
거대한 것은 치울 생각도 하지 못했다. 단지 깨지고 깨져서, 치울만한 크기가 되면 그제야 몸을 일으켰으니. 그러니까 항상 폐허이지 않았을까. 적적한 우울과 고독만이 내리는.
갑자기 잠시 뒤의 환희가 명확해진다. 건물을 치우려면, 침식이 아니라 철거가 당연한 수순이다. 이제껏 답답한 과정만을 지켜보고 있었으니.
깨부쉈다. 후회가 진득한 주춧돌부터. 군데군데 서있는 한숨 맺힌 기둥들을 무너뜨리고. 마지막으로 녹슨 감정이 흐르는 용마루까지. 아프면서도 신났다.
결국 내 풍경을 훼손하는 일이라서, 아프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손 쓸 수 없어 답답한 지경에 이르는 것보다. 능동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지금이 훨씬. 좋았다.
또 유성우처럼 건축물이 낙하할 것이다. 그 언제가 되었든, 당연한 일이니. 그런데 조금 어이없는 웃음과 소름이 끼친다. 다가올 때를 상상하니 왠지 흥이 돋는 것 같다.
체력에는 자신 있으니까. 더욱 열성적으로 깨부순 폐허 위에는, 한껏 신나서 쇄락된 회색의 모습이 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