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 존 모피트 / 류시화 - 시로 납치하다
일을 하다 보면 많은 것들을 느끼지만 시간이 갈수록 초심은 옅어지고 편견이 짙어져만 간다. 요즘 일을 하다 보면 시간이 지나인지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는 느낌이 자주 든다.
왜 그럴까?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에? 내 생각과 결과가 우연히 맞아떨어질 때? 이런 생각들은 내 편견을 단단하게 만들고 그 단단해졌던 편견이 깨질 때마다 난 종종 흔들렸다.
내가 흔들리고 있을 때 많은 위로의 말들이 내게 다가 오지만 쉽게 내 속으로 비집고 들어오긴 쉽지 않았다. 그럴 때 많은 글과 문장도 아닌 담백한 시 하나가 나에게 다른 의미의 위안을 주었다.
오늘 소개할 시는 <존 모피트 - 어떤 것을 알려면>이다.
<류시화 - 시로 납치하다>에서 읽었다.
시 소개 글 쓴 이래로 처음으로 시인의 사진을 찾을 수 없었다. 그 정도로 대중들에게 많이 노출이 안되었다. 책에 있는 내용을 조금 빌려 쓰자면 존 모피트는 '신비의 백만장자'라는 별명과 함께 죽기 직전까지도 익명으로서 기부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불우한 환경 속에서 어렵게 살았던 모피트는 자신이 어렵게 살았던 기억으로 인한 상처들 보단 그 어려운 삶 중에서 받은 친절을 절대 잊지 못한다고 했다. 여러 기부를 하는 와중에 익명성이 깨지면 그 기부를 끊어버렸다고 한다.
어떤 것을 알려면
어떤 것을 볼 때
정말로 그것을 알고자 한다면
오랫동안 바라봐야 한다.
초록을 바라보면서
'숲의 봄을 보았다'라고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자신이 보고 있는 그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땅 위를 기어가는 검은 줄기와
꽁지깃 같은 양치식물의 잎이 되어야 하고,
그 잎들 사이의 작은 고요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시간을 충분히 갖고
그 잎들에서 흘러나오는
평화와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이 시를 소개하는 이유는 우린 앞으로 알아야만 하는 것들이 많아진다. 시간이 지나 놓고 싶은 것들이 많아지고 놓고 싶지만 놓지 못하는 것들도 많아진다. 끝없는 수용의 연속에서 나를 지키기 위한 필터는 있어야 나를 지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 섞인 마음이다.
경험에 의해 이 시를 선택하게 되었는데 초심은 사라지고 잘못을 무작정 주변에서만 찾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분명 그전엔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아직 모를 다음을 기대하면서 지금의 순간에 충실했던 나였는데 불과 2개월 ~ 3개월 있었다고 같잖은 편견 따위에 휘둘리며 나를 몰아세우고 주변 탓을 하고 있다는 게 너무 부끄러웠다. '사람이기에 그럴 수 있다'라고 하면서도 그 조차도 내겐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시를 읽고 '알다'라는 것에 대한 정의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단순하게 보면 '오랫동안 천천히 봐야 한다.'라고 생각할 수 있고 한 발짝만 더 나아갈 여유가 있다면 한 두 가지만 정해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이 정말 맞을까라는 의문과 함께 조금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본다면 그 순간만이라도 충분히 많은 생각을 얻어갈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많은 목표와 꿈을 위해 투자한 시간이 적어도 비판받지 말아야 하며 방향이 잘못돼서도 안된다. 물론 의도와는 조금 다르게 바뀔 수도 있고 심지어 틀릴 수도 있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일단 출발하되 속도는 느려도 바른 길로 가도록 끊임없이 물음을 던져 자신과의 대화를 하고 가는 길에 조언을 물으며 방향만 맞는다면 그 속도가 엄청 느리다 한들 원하는 목적지까지 반드시 갈 수 있다.
나를 흔들리게 하는 것은 뭔지 찾아보자. 조금 아프고 많이 귀찮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을 본다면 그래도 그전보단 덜 흔들리고 안 아프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