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풍파의 서막
차유민은 지방의 한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뒤에는 국립박물관 학예사로 2년 일했다. 그러다 지도교수가 소장으로 있는 문화재연구소로 이직했다. 유민은 거기서 댐 수몰지구 유적발굴 조사에 참여했다. 다목적댐 건설로 강 유역 일부가 수몰됐는데, 연구소는 그 일대 문화유적 전반에 걸친 발굴조사 업무를 맡았다.
조사반은 6개 반으로 구성했다. 유민은 그중 민속조사반에 속했다. 조사반은 3년여에 걸쳐 수몰지구에서 유적과 유물 발굴조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다량의 유물이 출토됐다.
강 유역에선 구석기시대를 거쳐 신석기와 청동기 문화가 형성됐음을 확인했다. 그동안 고고학상에 밝혀지지 않았던 한민족의 기원과 이동에 관한 근거도 확보했다. 고구려와 백제 문화의 영향과 분포, 고려 불교문화의 특색과 조선시대 ‘중원문화’ 특징에 대한 자료도 수집했다. 문화재 발굴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쾌거였다. 조사반원들은 감격에 겨워 저마다 눈물을 훔쳤다.
유민은 최종 보고서가 발표되던 날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뿌듯함을 느꼈다. 자신의 전공을 살려 여태껏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유적과 유물을 직접 보고, 만지고, 분석했다는 사실에 감정이 북받쳤다. 그 역시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아, 내가 드디어 이걸 해냈구나!’ 조사반은 해산하기 전 전체 회식 자리를 가졌다. 수몰지구 인근에 있는 오래된 능이백숙 집이었다. 식당 주인은 들에서 놓아먹이던 토종닭 다섯 마리를 잡아 손질했다. 그리고 산속에서 직접 따온 능이와 각종 버섯, 채소, 양념 따위와 함께 가마솥에 넣고 장작을 땠다. 가마솥에서 스멀스멀 연기가 피어올랐다. 구수한 백숙 냄새가 산자락에 진동했다.
조사반원 8명은 두 테이블에 나눠 앉았다. 이윽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백숙이 큼지막한 사기그릇에 담겨 들어 왔다. 살집이 두툼한 닭고기, 그 위에 능이가 소담하게 쌓였다. 뽀얀 국물은 보기만 해도 침이 꼴깍 넘어갈 정도로 먹음직스러웠다. 여기저기서 탄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유민도 군침이 돌았다.
접시마다 음식이 담겼고, 그사이 소주와 맥주가 박스째 들어왔다. 한 사람이 술잔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유민의 대학 은사이자, 연구소장이며, 역사학자였고, 조사반장인 ‘마강진’이었다. 유민은 그를 ‘교수님’이라고 불렀다. 마 교수는 가득 채운 잔을 들고 말했다.
“멀고도 긴 여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마침내 해냈습니다. 성공했습니다.”
반원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손뼉을 쳤다. 유민도 손뼉을 치며 스승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여러분! 여러분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결코 이 험난한 여정을 끝내지 못했을 겁니다. 대단히 고맙습니다. 오늘은 근심 걱정 다 내려놓고 신나고 즐겁게 먹고 마십시다. 우리는 이제 그래도 됩니다. 지나간 시간과 지금의 시간과 다가올 시간을, 위하여!”
“위하여!” 반원들의 목소리는 우렁찼다.
술이 한 순배 돌았을 즈음, 유민은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캄캄한 밤하늘에 박힌 별이 빛났다. 식당 뒤편 산속에선 소쩍새와 부엉이와 올빼미가 저마다 존재를 알리는 소리를 냈다. 귀뚜라미도 덩달아 장단을 맞췄다. 술이 들어가 벌게진 얼굴이 서늘한 밤공기에 누그러지는 듯했다. 유민은 마당 한 귀퉁이에 마련한 간이 화장실로 향했다. 볼일을 마치고 나오려는데, 식당 주인이 무언가를 들고 곳간채로 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 밤에 저기서 뭘 하려는 걸까?’ 유민은 주인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궁금한 건 못 참는 성미라 기어이 알아볼 요량이었다. 주인은 한참이 지난 뒤에야 안에서 나왔다. 곳간채 안은 백열등 하나 달아놓지 않았다. 그래서 더 어둡고 컴컴했다.
“사장님, 그 안에서 여태 뭐 하셨대요?”
“으악!”
사장은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하마터면 뒤로 자빠질 뻔했다.
“아휴 놀래라. 갑자기 그러면 어쩝니까. 간 떨어질 뻔했네.” 사장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퉁퉁거렸다. 그 모습에 유민은 괜스레 미안해졌다.
“죄송합니다. 일부러 놀라게 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그래도 그렇지. 점잖은 양반이 오밤중에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유민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하지만 미안한 건 미안한 것이고, 물어볼 건 물어봐야 했다.
“사장님, 근데 아까 들고 들어간 물건은 뭐에요? 그리고 깜깜한 데서 한참 동안 뭘 하신 거예요?”
사장은 짐짓 놀랐다. 그리곤 등을 홱 돌려 부엌 쪽으로 걸어갔다. 유민은 사장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가며 계속 물었다. 집요하도록.
“거 귀찮게 자꾸 왜 그런대요? 남이야 안에서 똥을 싸든, 밥을 먹든, 자빠져 자든. 뭐가 그리 궁금합니까. 손님으로 왔으면 맛나게 잡숫고 가면 될 일이지!”
“그러니까요. 대수롭지 않은 건데 말씀 못 하실 건 뭐래요.” 유민도 물러서지 않았다. 반드시 사장의 답변을 들어야 직성이 풀릴 듯했다.
“이 보소, 젊은 양반. 난 그저 우리 집안일을 했을 뿐이요. 지극히 사적인! 됐소?”
“그럼 아까 뭘 들고 들어가던데, 그건 뭐예요?”
“거참. 성가시게 구네. 정화수 담은 사발이요.”
“정화수 사발이요? 그걸 왜 이 밤에 들고 거기 들어간 겁니까?”
“아, 그거참! 고만 좀 하소. 나도 더는 참기 힘들구먼!”
밖에서 나는 실랑이를 들었는지 안에서 누가 나왔다. 마 교수였다. 그가 유민을 불렀다.
“차 선생, 안 들어오고 거기서 뭐 해?”
“아, 네. 곧 들어갑니다.”
사장은 이때다 싶어 자리를 피했고, 유민은 별수 없이 터벅터벅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야밤에 정화수를 떠 헛간에 들어간 사장의 행동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유민은 주인이 들어간 부엌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러곤 고개를 갸웃거리고 방문을 열었다. 안에선 얼큰하게 취한 일행들이 두세 명씩 어울려 왁자지껄 떠들었다. 여러 소리가 뒤섞여 막 들어온 유민은 정신이 산란했다. 빈자리를 비집고 앉았는데, 그 옆으로 마 교수가 소주잔을 들고 와 앉았다. 유민은 그가 건네는 술잔을 공손히 받았다.
“밖에서 사장님이랑 무슨 시비가 붙은 거 같던데? 무슨 일 있었나?”
“아, 아닙니다. 제가 처음 본 분이랑 무슨 감정이 있겠어요.”
“그래? 자네 표정이 꽤 심각해 보이던데?”
“교수님 눈썰미는 여전하시네요. 여기 사장님께서 별스러운 행동을 하셔서요. 물어보니까 버럭 화만 내시더라고요.”
“별스러운 행동? 그 양반이 뭘 어떻게 했길래?”
유민은 마 교수에게 주인과 있었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유민의 이야기를 들은 그의 낯빛이 달라졌다. 특히 ‘정화수’라는 말이 나왔을 땐 안색이 살짝 어두워졌다. 밤이 깊을수록, 취기 오른 방안의 수다는 열기를 더했다. 두 사람만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