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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재민 Jan 16. 2024

개나 사람이나 먹고살기 힘든 세상이다

동물 복지·살생 금지의 ‘빛과 그림자’

나는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산천어도 먹지 않는다. 이 사실을 미리 밝혀야 글에 오해가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비건’은 아니다. 소고기도 먹고, 돼지고기도 먹고, 회도 먹는다. 개와 산천어 얘기를 한 이유는 이들 동물의 식용을 놓고 벌어지는 논란 때문이다.      


개부터 보자. 최근 국회에서 ‘개 식용 금지법’이 통과됐다. 식용을 목적으로 개를 사육·도살하거나 유통·판매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특별법이다.      


이 법을 어기면 어찌 되냐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을 물어야 한다. 또 개를 사육하거나 증식·유통하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 진다. 동물 단체와 애견인들은 웃음꽃이 피었다. 동물 권익을 지키기 위한 법적 장치가 생겼기 때문이다.      


반대로 개고기를 파는 상인들은 노발대발이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 생존권이 달렸으니까. 한평생 개고기를 팔아 생계를 유지해온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할 수 있으랴. 이들이 생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적 장치 마련도 부족했다.      

출처: 뉴스1
개고기 유통·판매업자들은 “국회가 구체적인 대안 없이 법안부터 통과시킨 건 업계 생존권을 무시한 처사”라고 주장했다. 법안을 통과시키기 전에 업주들이 생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금 제공이나 일자리 연계 등 대책을 마련했어야 한다는 취지다. 전주 한 전통시장에서 20년째 건강원을 운영하고 있는 B씨(70대·여)는 특히 정치권에 대한 불만을 감추지 못했다. B씨는 “개고기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며 “하지만 정치인들이 개 생명은 존중하면서 왜 업주들의 생존권은 무시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2024년 1월 15일, 뉴스1 <“개 생명 존중하면서 업주 생존권은?”…개 식용 금지 하소연>     


산천어 상황도 개고기와 비슷하다. 해마다 강원도 화천의 얼음 낚시터에서는 산천어 축제가 열린다. 올해는 5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았다고 한다. 1급수에서만 서식하는 산천어를 낚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인파가 몰려들었다.      


얼음 구멍에 낚싯대를 넣고 입질을 기다리고, 아이들은 행사장에 마련한 놀이터에서 썰매를 타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축제를 통한 지역경제 파급효과는 엄청날 것이다. 하지만 동물 단체는 방문객들에게 ‘살생의 추억’을 안기고, 환경을 파괴하는 축제를 당장 중단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23일간의 산천어 축제를 위해 전국 양식장에서 60만마리가 인공 번식으로 태어난다. 밀집된 곳에 사육되고, 축제 전엔 일정 기간 굶기며, 운반시엔 과도한 스트레스로 고통을 가한단 지적이었다. 화천으로 온 60만마리의 산천어들은 도망치지 못하게 가둬진다. '맨손잡기'나 '얼음낚시' 등 즐길거리를 위해 활용된다. 2024년 1월 14일, 머니투데이 <산천어 60만마리 떼죽음…“한국 최악의 동물 살상 축제”>     
출처: 머니투데이

개나 산천어나 찬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먹자는 쪽인가, 먹지 말자는 쪽인가. 나는 서두에 개와 산천어를 먹지 않는다고 했다.      


이유는 시골에서 자란 나는 어릴 적 개를 잡는 모습을 자주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고기를 볼 때마다 그 시절 생각이 떠올라 차마 먹지 못한다. 냄새도 역해 내 취향과 맞지 않는다. 그렇다고 개고기를 먹는 사람을 경멸하거나 증오하거나 몰상식한 야만인이라고 치부하진 않는다. 개인의 취향이려니 여길 따름이다.   

   

그렇지 않으면 소 돼지는 물론이고, 흑염소도 먹으면 안 되고, 닭과 오리도, 토끼도, 양도 잡아 먹으면 안 되니까. 빙어 축제도, 주꾸미 축제도 열지 말아야 하니까. 아니, 낚시 자체를 금지해야 하지 않을까.      


동물 단체와 상인 단체 각자의 요구와 주장은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한다. 그렇다고 풀때기만 먹고 살기에는 이 세상에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너무나 많다. 그러니 이건 누가 ‘맞고 틀리고’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음은 ‘개통령’ 강형욱 씨가 한 강연에서 한 말이다. “어떤 경우에도 동물의 복지가 사람의 복지를 우선할 수 없다. 사람도 먹고살기 힘든 세상에 무슨 동물 복지냐 라고 하지만, 개는 사람이 키운다. 동물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은 사람을 존중할 줄 안다. 아동복지와 노인복지가 잘 되어 있는 나라들은 반려견도 잘 키운다.”     


동물 복지 증진을 위한 법제도 마련에는 찬성한다. 다만, 그로 인해 인간이 삶을 위협받는 일도 없어야 한다. 정부와 국회는 그런 일 하라고 있는 거다. 개나 산천어나, 사람이나, 참 먹고살기 힘든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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