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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 위의 앨리스 Feb 09. 2024

도비생활 4개월만에 약을 줄였다

"선생님 이게 여독인지 뭔지 모르겠는데 계속 피곤하고 졸려요."


"드디어 약을 줄일 때가 되었네요."


정신과 진료 어언 3년,

아침약에서, 그리고 가장 독한 약에서 해방되었다.


공황장애와 우울증으로 정신과를 다니게 되면서 꽤 오래 다니게 되리라는 건 예상했지만 이정도로 오래 약을 먹게될지는 몰랐다. 회사를 다닐 때 증상이 좋아지는 건 쉽지않았다. 필연적으로 스트레스와 이벤트가 있기 때문이다. 회사를 그만두면서 일상이 평온해지면 빨리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는지 선생님은 약을 줄이자는 말씀을 하지 않았다. 내심 기대하면서 병원에 갔지만 별 성과없이 온 날 밤에 누우면 난 대체 뭐가 문제일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여행에 다녀오고나서 푹 쉬었음에도 불구하고 잠이 계속 쏟아지고 몸이 피곤했다. 첨엔 여독이구나 생각해서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여독이 한 달이나 갈리는 만무해서 어디 아픈가

했다. 선생님 말씀은 증세가 좋아지면서 약이 너무 세서 생기는 증상같다고 하셨다. 표정도 항상 긴장돼 있었는데 많이 사라졌다고 하셨다.


 어떤 게 나를 좋아지게 했을까. 여행기간 중에 어땠냐고 물어보시기에 나는 이번엔 게으르고 그때그때 원하는 걸 하면서 다녔다고 했다. 나는 계획형 인간이고 직장인 특성상 짧은 기간에 많은 걸 봐야한다는 강박에 엄청 빡빡하게 계획을 짜고 꼭 그걸 거의 다 하고 와야 직성이 풀렸다. 하지만 이번여행은 숙소랑 비행기표 외엔 계획없이 갔다.

먹고싶으면 먹고,  목적지 없이 그냥 걷기도 하다가 우연히 좋은 상점 보면 들어가서 쇼핑도 하고 피곤한 날엔 그냥 하루종일 호텔서 누워서 쉬기도 했다. 그냥 그 외에 특별한 건 없었다. 호텔 바에서 눈오는 창밖을 보며 맥주한잔 하던 시간이 정말 좋았다는 것 정도?


 기분이 너무 좋아 의사선생님께 기념낮술 허락을 받고 돌아왔다. 하고싶은 걸 그때그때 했을 뿐인데 병이 호전되다니 진짜 꿀인생 아닌가. 이게 잘못하면 이상하게 들리리란 건 알고있다. 하지만 그렇게 막 살아도 크게 잘못되지는 않았다는 말을 하고싶었다. 누워서 TV를 보며 생각한다. 그냥 살자. 대단한 일은 대단한 사람들에게 맡기고 건강만 하자. 오늘도 도비는 게으르게. 느긋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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