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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노아 Noah Jang Nov 26. 2023

예식이 끝나길 기다릴까요?

이반은 새신랑답지 않게 불안한 눈빛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객들이 축하 인사를 건넬 때는 민망할 정도로 형식적이고 무뚝뚝했다. 절친이자 축가를 부를 가수 임수한이 익살스럽게 랩을 하며 걸어와도 웃지 않았다. 평소 깍듯이 모셨던 연예계 대선배들과의 악수에도 건성이었다. 이반의 부모를 대신해 하객을 맞이하는 기획사 대표 김찬일은 화를 감추느라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했다. 예식 리허설 때도 이반의 정신 상태와 행동은 정상이 아니었다.

"너 오늘 약 했냐?"

찬일이 이반의 어깨를 다정한 척 감싸 안으며 속삭였다.

"미쳤어요?"

이반은 귀찮다는 듯 찬일을 밀쳐냈다.

 

결혼식이 열리는 신라 호텔 밖에서는 이반의 팬들이 몰려들어 웃거나 울거나 소리를 질렀다. 확성기에 대고 뭔가를 외치고 파티용 나팔을 불어대고 결혼 축하 피켓을 흔들고 전하지도 못할 결혼 선물을 손에들 꼭 쥐고 있었다. 하나같이 간절하고 애처로운 표정이었다. 연예, 사회, 경제부 기자들이 총출동했고 유투버들도 난리였다. 유명인의 차량이 진입할 때마다 누군가 안전 펜스를 넘어 달려들었고 경호팀과 몸싸움을 벌였다. 여기저기 쌍욕과 고성이 오갔다. 진눈깨비와 겨울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에 다들 우산을 쓰거나 우비를 입고 있어 더 혼잡했다. 호텔 내부의 분위기는 차분했다. 외부 경호팀에서 출입을 통제하고 있지만, 혹시 모를 불청객이나 불상사에 대비해 2층 다이너스티홀로 향하는 계단에만 여섯 명의 경호원이 배치되어 있었다.


매니저 김규열은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신부의 아버지 한재구 회장의 눈치를 살폈다. 휠체어에 앉은 한 회장은 혼자 하객을 맞이했다. 그의 뒤에는 수행비서 조동훈이 서 있었다. 한 회장은 밝은 얼굴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지만 신랑 쪽으로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예식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신부의 지인들로 보이는 사람들 말고는 한 회장의 일가친척이나 정재계 인사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찬일은 난감한 얼굴로 다이너스티홀을 들락날락했다. 신랑 측 하객석은 가득 찼지만, 신부 측 지정석은 거의 비어 있었다. 찬일은 태연한 표정의 한 회장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저 늙은이, 아무도 초대 안 한 거야?"

찬일이 규열에게 속삭였다.

"몰라요. 몰라."

규열은 거의 울듯이 답했다.

"어휴 씨발, 잔인한 영감탱이..."

찬일이 넥타이를 고쳐 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반은 멍하니 비상구 계단에 앉아 있었다. 습관처럼 주머니를 뒤적거렸지만 예복 주머니에는 담배가 없었다. 그는 휴대폰을 열어 검색 기간을 사흘 전으로 설정하고 '토막 살인'을 검색했다. 뉴스가 없었다. '이은희'를 검색했다. 수많은 얼굴과 프로필 속에 그가 찾는 이은희는 없었다.

"아니야! 아니야!"

그는 머리를 마구 흔들며 외쳤다.

휴대폰이 울렸다.

"규열아, 담배 갖고 와."

이반이 전화를 받아 말했다.
"형, 어디야? 안 오고 뭐 해?"

규열이 우는 소리를 했다.

"죽고 싶지 않으면 얼른 튀어 와!"

찬일이 나직하고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이반은 전화를 끊고 무겁게 몸을 일으켰다. 비상계단의 작은 창문 너머 소음이 들려왔다. 창문 밖을 내다본 그는 운집한 군중을 바라보며 웃음인지 울음인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식이 시작되었다. 예전에 이반과 뮤지컬 공연을 했던 팀이 축하 공연을 펼쳤다. 로비에는 진행 요원들과 경호 인력만 남아 있었다. 규열은 메이크업 아티스트 이효림과 함께 안절부절 이반을 기다렸다. 두 사람은 복도 끝에서 힘없이 걸어오는 이반을 향해 조르르 달려갔다. 규열은 이반의 머리와 차림새를 매만지고 효림은 얼굴의 기름기를 닦아내고 화장을 고쳐주었다. 그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경호팀의 제지를 무시하고 2층 로비로 들어섰다. 다들 결혼식에 어울리는 옷차림이 아니었다. 이반을 발견한 그들이 뛰듯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버진로드 옆에서 대기하던 한 회장과 조동훈 비서가 경호팀장의 보고를 받고 로비로 나왔다.

"문 닫아."

한 회장이 지시했다.

경호팀이 재빨리 홀의 문을 닫고 지켜 섰다.


이반은 돌기둥처럼 굳어 버렸다. 규열이 울먹거리며 찬일에게 전화를 걸었고 동훈은 포토월 앞에서 예식을 총괄하는 컨설턴트와 작은 목소리로 뭔가를 상의했다. 한 회장은 차가운 눈빛으로 이반과 형사들을 응시했다.

“강남경찰서 박원호 경감입니다.”

원호가 이반에게 악수를 청했다.

“네..."

이반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이게 무슨 짓이야! 결혼식장에서!"

찬일이 달려와 팔을 대자로 벌리고 이반 앞을 가로막았다.

“진정하세요."

경진이 찬일의 팔을 다독이며 말했다.

“당신들 미쳤어? 여기가 어디라고!"

찬일이 소리치며 도움을 청하는 눈빛으로 한 회장을 바라보았다.

한 회장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저희가 왜 왔는지는 본인이 잘 아시죠.”

연수가 차분한 목소리로 이반에게 말했다.

“네...”

이반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무슨 일이야! 이 자식아! 이게 다 무슨 일이냐고!"

찬일이 양손으로 이반의 얼굴을 붙들고 들여다보며 다그쳤다.

"형! 어떡해!"

규열이 울음을 터뜨렸다.

"야, 넌 알고 있구나! 도대체 뭔데! 이 자식들아!"
찬일이 규열의 멱살을 잡았다.

“예식이 끝나길 기다릴까요?”

연수가 이반에게 물었다.

“아뇨... 지금 가요... 지민이가 제 아내가 되기 전에...”

고개를 푹 숙인 이반의 눈물이 자신의 구두 위로 똑 떨어졌다.


신부 한지민이 홀 안에서 문을 쾅쾅 두드렸다. 한 회장의 지시를 받은 경호팀이 문을 아예 잠가버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민은 살인 용의자로 긴급체포되는 이반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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