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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노아 Noah Jang Nov 27. 2023

그놈이 확실해?

기자들은 벌써 경찰서 에 모여 있었다. 살인 사건이지만 사회부 기자보다 연예부 기자가 더 많았다. 이반이 탄 차가 입구로 들어서자 기자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플래시를 터트렸다. 연수는 잠복할 때 이용하는 국방색 담요로 이반을 덮어주었다. 차에 달라붙은 기자들은 영화 속 좀비 떼처럼 미친 듯이 차창을 두드리고 소리를 질러댔다.

"굳이 결혼식장에서 라고 난리를 쳐서..."

원호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누가 지휘한 거예요?"

운전대를 잡은 경진이 물었다.

"누구긴, 서장이지."

재용이 말했다.

"와우, 역시! 우리 서장님, 어그로 센스 죽인다!"

경진이 경적을 빵빵 울리며 말했다.

차는 사람들에 갇혀 꼼짝도 하지 못했다. 이반의 팬들도 하나둘 경찰서로 몰려들었다. 호루라기를 불고 확성기로 자제를 당부해도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수십 명의 경찰이 뛰어나와 기자들을 겨우 밖으로 밀어내고 인간 띠를 만들어 입구를 막았다.

"뒷문 앞에 차 세워."

원호가 경진에게 지시했다.

차에서 내린 형사들은 이반을 둘러싸고 뒷문으로 들어갔다.


경찰서 안도 소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로비에 설치된 대형 TV에서 특보가 흘러나오고 여기저기 전화벨이 쉴 새 없이 울렸다. 이반은 형사들이 이끄는 대로 허깨비처럼 힘없이 걸었다. 여청과 여경 둘이 이반을 보려고 형사과 복도에서 얼쩡대다가 원호의 성난 눈빛을 보고 줄행랑을 놓았다. 김정현 형사과장이 진술녹화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서장님 호출이다. 원호는 나랑 가고..."

정현이 이반의 넋 나간 얼굴을 보고는

"이 친구 따뜻한 차 한잔 내줘."

이반의 팔을 다독이며 말했다.


창가에 선 박인곤 서장은 땅콩을 까먹으며 여유로운 표정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호텔 앞에 진 치고 있던 군중이 경찰서 앞으로 이동해 난장판을 벌였다. 인곤은 '이반 오빠 무죄', '조작 경찰 유죄'라는 피켓을 흔들고 있는 여고생들을 보고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휴대폰이 울렸다. 한 회장의 비서 조동훈이었다. 인곤이 예. 예. 두 번 깍듯이 대답했다. 그리고 통화는 끝났다. 정현과 원호가 들어오자 인곤은 공연히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정현이 인곤의 상의에 묻은 땅콩 껍질을 털어 주었다.

"윗분들 별말 없으세요?"

원호가 물었다.

"걔가 뭐라도 되나?"

인곤이 비웃음을 띠고 말했다.

"한재구 회장 사위될 사람이잖아요."

"사위는 개뿔, 한 회장이야 노 났다 하지. 이참에 꼴 보기 싫은 딴따라 놈을 딸자식한테서 떼어 놓게 됐으니."

"딴따라가 뭡니까? 배우한테."

정현이 타박했다.

"어느 분야든 90퍼센트는 딴따라야. 10퍼센트만 진짜고."

"저는요?"

"김 과장 너는 0.1퍼센트."

"어련하시겠어요."

정현이 피식 웃었다.

"그놈이 확실해?"

인곤이 원호에게 물었다.

"그렇다고 봐야죠. 지문 나왔고 목격자 있고 체포에도 순순히 응했고."

"피해자가 마약 전과가 있다고?"

"마약 판매로 3년 6개월 징역 살고 작년 12월 출소했습니다."

"이반도 얽힌 거 아냐? 약물 검사 해."

"일이 너무 커지지 않을까요?"

원호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이빠이 터뜨려야지. 평생 못 낚을 대어가 미끼를 물었는데. 이번 기회에 약쟁이 딴따라들도 싹 쓸어버리면 속이 시원하겠어. 우리 애들은 실적 쌓고 나는 매스컴 타고. 자, 잘생긴 배우님 얼굴 좀 볼까."

인곤이 기분 좋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술녹화실은 경찰서의 다른 공간보다 천장이 낮고 조명이 어두웠다. 몇 달 전, 갑갑하고 질식할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라는 인곤의 지시대로 인테리어를 손 본 결과였다. 수사와 관련해 유의미한 효과는 없었지만 인곤은 흡족해했다. 이제껏 진술녹화실에 들어온 사람들 중 가장 장신인 이반에게는 답답한 공간일 수 있었다. 원호와 재용이 이반과 마주 보고 앉았다. 연수는 인곤다른 형사들과 함께 통제실에서 이중유리 너머로 이반을 지켜보았다.

"담배 좀..."

이반이 체포된 후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원호가 주머니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 이반 쪽으로 밀어주었다. 그리고 이반이 담배 한 개비를 다 피울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전부... 말하겠습니다.”

이반이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김찬일 대표와 변호사가 오는 중입니다. 변호사의 조력을 받겠습니까?"

재용이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고 물었다.

"변호사 필요 없습니다."

이반이 고개를 저었다.


재용이 노트북을 열고 경찰용 음성 받아쓰기 AI를 실행했다.

"이은희 씨와 어떤 관계인가요?”

재용이 물었다.

“보육원에서 함께 자랐습니다.”

"연인 관계였나요?"

"아뇨. 절대 아닙니다."

이반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럼 어떤 사이였나요?"

"가족 같은... 동생입니다. 은희 마음은 달랐지만요..."

"이은희 씨가 이성적으로 좋아했나요?"

"네. 제가 지민이와 약혼한 후... 괴로워했습니다."

"이은희 씨를 언제 마지막으로 보셨나요?"

"수요일 2시경입니다."

"사흘 전인 2023년 12월 6일 수요일."

"네."

"이은희 씨의 사체가 발견된 새벽 2시경인가요?"

"아닙니다! 7일 새벽이 아니라 그 전날인 낮 2시입니다!"

이반이 힘주어 말했다.

"낮에 만나서 무엇을 하셨나요?"

"기획사에서 대표님을 만나 광고 재계약 건을 논의하고 있었는데, 은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지하주차장에서 기다리겠다는 말만 하고 끊더군요. 평소와 달리 목소리가 냉랭했어요. 결혼식을 앞두고 있어서 무슨 말썽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됐습니다. 잘 달래서 보내야겠다 생각하고 주차장으로 내려가 은희 차에 탔습니다. 그런데 다짜고짜 달려들었어요. 제가 밀쳤더니 손톱으로 제 목덜미와 손등을 할퀴고는... 씩 웃었습니다. 소름이 끼쳤습니다. 손톱도 꽤 길었고 무엇보다 눈빛과 미소가... 낯선 사람 같았습니다."

“상처가 생겼나요?”

“네.”

이반이 오른쪽 목덜미와 왼쪽 손등에 있는 살색 드레싱 밴드를 떼어내고 상처를 보여주었다. 딱지가 앉기 시작한 두어 줄의 깊은 손톱자국이 보였다. 원호와 재용이 서로 마주 보며 눈빛을 교환했다.

"새벽에 이은희 씨 집에 가셨죠?"

원호가 물었다.

"네..."

"왜 가셨죠?"

"은희가 오라고 해서 갔습니다..."

이반이 손등의 상처를 문지르며 답했다.

"집으로 오라고 한 이유가 뭐였죠?"

"마지막으로 꼭 한번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럼 다시는 저와 지민이 앞에 나타나지 않겠다고..."

"어디에 주차하고 어느 길로 이동했습니까?"

"초등학교 담벼락 밑에 차를 세우고 아파트로 이어진 샛길로 걸어갔습니다.”

“그 샛길에 있는 CCTV가 고장 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요?”

“네. 은희에게 들었습니다. 그 길로 오라고..."

"검은 마스크에 모자를 쓰고 있었나요?"

"아마... 그랬을 겁니다."

"이은희 씨를 만났습니까?"

"아뇨! 가... 가 보니 욕실에..."

이반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문을 어떻게 열고 들어갔죠?"

“초인종을 눌렀지만 반응이 없었어요. 전화도 받지 않고요. 난감해하다가 손잡이를 돌려보니 잠겨 있지 않았습니다."

"이은희 씨를 만났나요?"

"아뇨! 아니라니까요!"

"그 상처, 새벽에 이은희 씨와 싸우다 생겼죠?"

원호가 차갑게 쏘아붙였다.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이반이 눈을 꼭 감고 머리를 마구 흔들었다.

"그럼 왜 바로 신고하지 않았죠?"

“겁이 났습니다! 제 말을 아무도 믿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누군가 날 함정에 빠뜨렸다고 생각했습니다!”

“함정이라면, 짐작 가는 사람이 있습니까?”

"은희... 은희가 민우와 짜고..."

"민우가 누구죠?"

"지민이 오빠요..."

"한지민 씨 오빠인 한민우 씨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한민우 씨가 왜 그랬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한민우 씨와 이은희 씨가 서로 아는 사인가요?"

"네..."

"어떻게 아는 사이죠?"

"어쩌면... 한 회장님이... "

"한재구 회장도 이은희 씨를 알고 있었나요?"

"모르겠습니다! 모르겠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이반이 울부짖으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벽 쪽으로 가서 머리를 쿵쿵 박았다.

재용이 그를 데려와 다시 의자에 앉혔다.

“변호사... 변호사를 불러줘요...”

이반이 흐느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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