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한 방을 위해 살 예정입니다.

by 잔주

나이를 조금씩 먹어갈수록 책을 들고 있던 친구들이 차키를 들기 시작하고, 오렌지 쥬스를 들고 있던 손에 소맥잔이 들려져 있다. 그렇게 상상만했던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고, 만났을 때의 씀씀이는 학생 시절과는 천지차이가 되어버렸다. 잔고만 들어가면 다행인데, 그와 동시에 나가는 것도 많아지고 책임질 것도 많아져간다.


나는 대학 졸업 후 직장을 1년 남짓 다니다가 이건 나의 인생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어 무작정 퇴사를 해버린 적이 있다. 그러기 시작한 지 반년, 통장은 메말라가고 주변 사람들의 걱정이 시작되었다.

부모님께 용돈을 드릴 나이가 되어가는데 돈은 못 벌고, 학창시절 후배들을 만나면 한턱을 내야 할 것 같은데 잔고는 부족했다. 이렇게 불행해져 가는 건가라는 느낌이 대다수 사람들의 감정일 것이다. 나 또한 그렇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고, 그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머리가 아파서 사고를 멈춰버렸다.

어떻게든 살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고, 아무리 힘들다해도 솔직히 말하면 굶어죽을 것 같지도 않았다. 정 부족해지면 아르바이트라도 하면 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더라도 적어도 식비 정도는 충당될 거이었다.


더해서 저 멀리 인생의 중간 자락에 서있는 나를 보았을 때 지금의 과정을 겪는 것을 생각하니 나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빚져가면서 집을 사고 양육비를 버느라 자기의 인생을 살지 못하는 상상하니 더욱 그랬다. 만약 이런 내가 계속 맘에 들지 않는 직장을 다니게 된다면, 중간에 지쳐서 흔히 말하는 돈 벌어오는 기계가 되어버리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에 아무런 희망도 재미도 없이 그냥 조금씩 돈을 벌고 쫓기며 살기 싫었고, 나를 위해 살고 싶었지 회사를 위해 살고 싶지도 않았다.


난 그저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하는 한 방을 위해 살고 싶다. 불안해서 지금 당장의 월급과 약간의 안정에 빠져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인생 자체를 놓고 봤을 때 그 월급과 안정이 더 불안했다. 어렸을 때 혹은 불과 몇 년 전만해도 내 미래를 그려보았을 때 이렇게 초라하지는 않았다. 차 하나 쯤은 있을 줄 알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여유롭게 잘 놀러다닐 줄만 알았다. 이제 더이상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미안할 일을 만들고 싶지 않다.


한 방을 위해 차곡차곡 경험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은 사양하고 싶다. 그냥 지금 철을 내려놓고 즐기는 순간이 경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순간에 들어오고 난 후부터는 전이랑 다른 시야를 갖게 된 것을 느꼈다. 높은 허들처럼 걸리적거리는 다른 사람들의 말들 따위는 펄쩍 뛰어넘으며 내 인생의 한 방을 위해 달려가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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