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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 년 전 인류가 불안을 이겨내는 법

두려움에 대한 명상

by 냉이꽃


지금은 중년이 된 제자들을 생각하며 이 글을 쓴다.

똘망똘망하고 말간 아이들은 큰 기쁨이었다. 다만 거칠게 쏟아낸 나의 말들이 부끄럽고 미안할 뿐이었다. 그때는 미술에 뭐나 있는 것처럼 떠들어댔다. 의미를 찾고 의미를 부여해야 나의 삶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았으니까. 사실은 나도 불안한 청춘에 불과했다. 학교를 떠난 뒤 미술은 까맣게 잊고 살았다.


아이들도 나도 보이는 것 너머의 것도 보고, 보이지 않던 것도 보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 뭘 알아서는 아니다. 단지 때 묻은 중년의 마음을 내려놓고 작품 이야기, 사람사는 이야기를 조용조용 나누고 싶었다.





3만 년 전 인류처럼 불안했던 밤


지난 12월 3일, 늦은 밤에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몸이 저절로 덜덜 떨렸다. 80년 계엄을 겪은 세대라 온몸 세포가 그날을 기억하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어느 방송 진행자가 딱 3음절의 쌍욕을 했다. 희한한 일이었다. 순간 긴장이 풀리면서 눈물이 찔끔 났다. 그 욕은 위로였다. 얼마나 고맙던지. 구석기 동굴벽화를 보면서 생뚱맞게 그때가 생각났다.



ciap-4-dan-courtice---semitour-perigord.jpg 제2 라스코 동굴벽화 ⓒ lascaux-dordogne.com


호모 사피엔스의 불안과 두려움


3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 크로마뇽인들은 어땠을까?

맨몸으로 부딪치는 자연은 거대하고 종잡을 수 없고 위협적이며 냉혹하다. 자연이 아름답고 경이롭게 느껴진다면 그건 나의 안전이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들짐승의 위협과 추위와 배고픔에 맞서야 했고, 비슷하게 생긴 종족과도 죽기 살기로 싸워야 했다. 그들은 네안데르탈인을 잔인하게 멸종시켰다.


그들은 매일, 매 순간 목숨 걸고 생존했다. 죽이지 않으면 죽어야 하고, 이기지 못하면 사라지고 마는 존재. 스스로 돕지 않으면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절대 고독. 그들에게도 극도의 불안을 이겨낼 숨구멍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04_00_01.jpg 17000년 전 크로마뇽인이 벽화를 남긴 라스코 동굴 입구 ⓒ archeologie.culture.gouv.fr



구석기 동굴벽화


프랑스 쇼베 동굴에는 손바닥 자국이 대량으로 남아있다. 약 36000년 전 크로마뇽인이 남긴 유적이다.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 벽화도 36000년 전 크로마뇽인이 남긴 것이며, 1879년에 발견되었다. 프랑스 라스코 동굴벽화는 빙하기 끝무렵, 기온이 올라가던 17000년 전에 그려졌다. 크로마뇽인의 문화가 정점에 달하는 시기라 한다. 1940년에 마을 소년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 외에도 벽화동굴은 수없이 많다. 아프리카, 인도 등등.


그곳은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비밀스럽고 깊은 동굴이었다. 한 사람 겨우 들어가는 통로를 지나면 그들만의 거대한 무대가 펼쳐진다. 그들은 동굴 벽과 천장을 그림으로 채웠다. 목숨 걸고 사냥했던 짐승들, 살아 움직이듯 꿈틀거리며 떼 지어 다니는 검은 소, 사자, 코뿔소, 매머드, 사슴, 말. 입이 딱 벌어질 만큼 뛰어난 묘사력이었다. 나는 사진만 봐도 황홀했다. 일렁이는 횃불 사이로 이 장관을 바라보는 그들은 어땠을까?


여하튼 구석기 동굴벽화의 발견은 논쟁을 불러왔다. 이것이 인류 최초의 미술이라면 미술은 대체 뭐냐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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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 핀투라스 동굴 벽화 ⓒ 유네스코 /쇼베 동굴의 손자국 ⓒ grottechauvet2ardeche



굳이 동굴 벽화를 그린 이유


첫째, 유희설이다. '놀이처럼 찍은 손바닥 자국을 봐라, 미술은 유희에서 출발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마치 운명 공동체임을 맹세하듯 손바닥 자국을 찍은 것을 보면 유희라고 보기가 힘들다. 그들의 심장 박동이 느껴질 정도로 실존적이고 절박한 뭔가가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현대인의 셀카놀이와는 다른 뭔가가.


둘째, 주술설이다. '동굴벽화는 일종의 주술 행위다. 사냥은 그들의 생존이 걸린 문제잖아? 동굴은 사냥의 성공을 기원하며 의식을 치르던 신성한 공간이고 그들은 주술사야. 아니면 그렇게 깊은 동굴에 왜 들어갔겠어? 들소 한 마리를 그리면 한 마리의 들소 사냥에 성공할 수 있다고 믿은 거야'는 설득력 있는 주장이 있다.


호모 사피엔스는 우연히 찍힌 손바닥 자국을 보며 그림의 주술적 기능을 발견했을 거라 짐작한다. 내 손은 여기 있는데 손바닥이 하나 더 생긴거다. 관련하여 1844년, 미국의 인류학자가 인디언 수우족 마을에 갔던 일화가 유명하다. 들소를 스케치하고 있으니까 원주민 왈, 왜 우리 소를 훔쳐가냐 했다는 거다. 원시 인류에게 들소 그림은 들소 자체였다.



두려움만큼 인간을 떨게 하는 건 없다


셋째, 나는 여기에 하나를 덧붙이고 싶다. 불안이다. 막연한 불안만큼 인간을 떨게 하는 건 없다. 시골 밤길에서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꺼 보라. 한 발자국 내딛기도 어렵다. 온갖 두려움이 몰려온다.


계엄의 공포를 한 마디의 쌍욕이 풀어주었듯이, 크로마뇽인들의 두려움에는 동굴벽화가 숨구멍이 되었다. 두려움과 트라우마가 나를 미치게 하기 전에 뭔가를 해야 하는거다. 그림은 그들에게 위로와 희망이 되었다. 집단이 모여 복제와 주술의 정보를 공유하고, 이것이 쌓여 협력의 진화를 불러왔다. 동굴의 대서사시는 축제가 되고 기쁨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불안은 감소되고 공동체의 생명력은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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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코 동굴벽화 ⓒ bradshawfoundation


파도를 막을 수는 없지만 파도타기는 배울 수 있다


크로마뇽인은 빙하기를 뚫고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끝날 것 같지 않은 빙하기, 정처없는 행군, 공포와 불안, 깜깜함, 절망, 극한의 조건 앞에서 그들은 뭘 할 수 있었을까?


누구도 가르쳐준 적이 없는 삶을 최초로 살아냈던 그들. 나는 그들이 할 수 있는 무엇이든 실행했다는 게 중요하다 생각한다. 그리고 집단 지성을 믿었다는 것, 손바닥 자국을 발견하면 그 정보를 나누고 집단을 통해 진화해 나갔다는 것, 그 과정에서 불안은 줄어들고 뇌용량은 커졌다는 것, 놀라운 생존력이었다.


작년에 실직을 한 후배가 있었다. 그 친구에게는 인생 최대의 위기였다. 직장 동료와 오너에 대한 배신감과 서운함, 억울함,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몇 달 내내 괴로워했다. "내가 왜? 왜 나만? 대체 왜? 어쩌라고?" 하는 분노와 불안으로 공황장애도 왔다.


그런데 이 친구는 자기 감정을 억누르고 속으로 삭이지 않았다. 그건 가장 쉽고 게으른 방법이다. 아마 나라면 그랬을거다. 그러나 그는 첫째, 고릴라처럼 털을 고르고 등을 긁어줄 수 있는 친구를 찾았다. 고립은 가장 나쁜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자기감정을 속이지 않고 솔직하게 드러냈다. 그건 자기 객관화를 위한 용기였고 자기 성찰의 과정이었다. 셋째, 자기 이야기를 들어준 만큼 상대가 하는 말을 경청하고 뭐든 배우려 했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내가 뭘 잘못했고, 뭘 고쳐야 하는가' 였다. 그는 그렇게 자신을 뜯어고쳤다. 정말 치열했다. 넷째, 공부를 하고 실력을 쌓았다.


그는 1년의 시간을 통해 '요이 땅' 준비를 했다고 보였다. 결코 쉬운 과정은 아니었지만 명상으로 다져진 마음의 근력이 이를 가능하게 한 것 같다. 후배의 라스코 동굴은 명상과 동료였다. 궁금하다. 너희는 중년의 불안을 어떻게 이겨내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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