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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럼비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낀다.

올레7길(하), 법환에서 강정까지

by 정순동 Dec 07. 2022


끊어졌던 올레길은 돔베낭길을 우회하고 다시 제 길을 찾는다. 올레는 돔베낭골 공영 주차장에서 리조트, 펜션, 호텔이 이어지는 길을 따라 태평로로 올라가서 서귀포여고 정문을 지나 다시 해변으로 내려간다.

서귀포여고 담장에 전국학교 비정규직 노동조합 총파업을 알리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서귀포여고 담장에 전국학교 비정규직 노동조합 총파업을 알리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속골과 수모루는 아열대 수목원

속골로 들어선다. 속골은 사시사철 물이 솟아 바닷가까지 흐르는 하천이다. 돔베낭골, 범섬, 울창한 숲, 그리고 부서지는 파도와 골짜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올레꾼들의 피로를 씻어준다.

속골은 제주의 일반 하천과 달리 사시사철 물이 솟아 흐르는 하천이다.속골은 제주의 일반 하천과 달리 사시사철 물이 솟아 흐르는 하천이다.

각박한 세상에 코 끝을 찡하게 하는 우체통. 속골 다리 앞에 대륜동 주민들이 설치한 '스토리 우체통'이 올레꾼을 붙잡는다. 빨간 우체통은 1년 후에 보내는 편지함이고, 녹색 우체통은 보내지 못하는 편지를 넣어란다.


친구 사이의 우정을 나누는 편지, 지고지순의 사랑을 담은 편지, 혼탁한 사회에서 마음을 비우고 대의를 세우는 편지, 속골의 아름다움을 추억으로 간직한 편지,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편지는 빨간 우체통에 넣으란다.

늦게 가는 우체통늦게 가는 우체통

녹색 우체통이 압권이다. 보내지 못한 편지함이다. 말하지 못해 안타까웠던, 지금도 가슴에 남아 있는 그 사람, 지금은 볼 수 없는 사람에게 쓴 보내지 못 한 편지를 넣어라고 일러준다.


늦게 가는 우체통을 지나 수모루 소공원(속골 휴게소) 가는 길은 아열대 식물원이다. 선인장과 늘씬한 키의 야자수가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수모루 소공원(속골 휴게소)은 아열대 식물원과 같은 풍경이다.수모루 소공원(속골 휴게소)은 아열대 식물원과 같은 풍경이다.

범섬. 선인장 사이로 보이는 범섬이 물에 반쯤 잠겨 누워 있는 와인병처럼 보인다. 해안에서 남쪽으로 1.3km 정도 떨어진 곳에 배영 하듯 누워 있는 범섬(천연기념물 제421호)은 암석이 규칙적으로 갈라진 주상절리가 수직으로 발달해 있다. 오랜 세월 파도에 의한 침식작용으로 생긴 절벽과 동굴이 절경이다.

선인장 사이로 보이는 범섬(천연기념물 제421호)에는 주상절리가 발달해 있다.선인장 사이로 보이는 범섬(천연기념물 제421호)에는 주상절리가 발달해 있다.


르누아르의 그림과 같은 수봉로

염소가 다니던 길 수봉로. 올레꾼들이 아끼는 자연 친화적인 길이다. 세 번째 올레코스를 개척하면서 길을 찾는데 애를 먹던 차에 올레지기 김수봉 님이 이곳으로 염소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삽과 곡괭이만으로 길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길 이름이 수봉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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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가 다니던 길 수봉로염소가 다니던 길 수봉로

초입부터 만만찮은 길이 시작된다. 곶자왈 버금가는 돌무더기와 덩굴식물이 엉킨 숲과 자갈 해변이 이어진다.


이 수봉길은 봄에는 유채와 갯무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연노랑과 연자주물결을 이룬다. 역방향 올레길아름답다. 순방향으로 걸을 때는 꼭 뒤를 돌아보자. 수봉로의 끝자락, 대형 벙커 하우스 카페까지 르누아르의 풍경화와 같은 꽃밭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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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봉로의 봄 풍경수봉로의 봄 풍경

공물깍. 평소에는 물이 솟지 않다가도 천둥 벼락이 치면 물이 솟아난다고 한다. 물이 나고 나지 않음이 하늘에 의해 좌우된다 하여 '공물'이라 불렀다고 한다.


물이 차고 맑아서 옛날에는 식수로도 사용했지만, 주로 세탁을 하거나 목욕하는 물로 이용된다. '깍'은 끝부분 의미하는 제주어이다. '공물깍'은 공물의 끝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공물깍공물깍

망다리. 달을 바라보는 정취가 일품인 법환 해안 언덕 망(望) 달(月)이다. 목호 세력을 감시하는 망대를 세웠던 곳이라 '망다리'로 불린다는 설도 있다.

망다리망다리


목호의 난과 법환마을​

법환포구. 포구의 풍경이 베네치아 같다. 포구 앞 포차 '놀멍 걸으멍 쉬엉'이 정겹다. 올레꾼 손님은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19 때문인 것 같다. 포구 앞에 남자들만 사용하는 용천수 노천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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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환포구(위), 용천수 노천탕(아래)법환포구(위), 용천수 노천탕(아래)

법환마을은 서귀포시에 위치한 국내 최남단 해안 마을이다. 맑고 시원한 용천수가 곳곳에서 솟아나고 바람과 바다와 함께 빚어내는 풍광이 아름다운 동네다.

해녀상해녀상

앞바다의 범섬 및 주변 무인도는 희귀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해조류와 대규모 산호 군락으로 유명하다. 이곳은 해녀들의 조업장이다. 현재 제주에서 해녀가 가장 많은 어촌으로 해녀들의 삶과 전통 생활문화가 생생하게 보존되고 있다.

해녀의 집해녀의 집

법환마을은 막숙이라고도 한다. 막숙의 유래에 대해 살펴보자.


목호의 난. 고려 말, 제주도는 원(元)의 목장이었다. 고려 충렬왕(忠烈王) 3년(1277년), 원은 삼별초가 점령했던 탐라에 목장을 설치하여 황실의 말을 방목하였다. 탐라를 고려에 반환한 충렬왕 21년(1295년) 후에도 탐라에는 원 조정의 목장이 예전과 같이 존속되었다. 이 목장에서 말을 치는 몽골족 목자들을 목호(牧胡)라고 불렀다.


이들은 많을 때는 1,400명에서 1,700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약 1백 년 동안을 탐라 여인과 결혼해 가정을 꾸리기도 하면서 제주도 주민들과 섞여 살았다. 탐라 주민들은 이들로부터 말 기르는 기술을 전수받기도 했다.


고려 공민왕 23년(1374)에 이들이 일으킨 반란을 '목호의 난'이라 한다. 이 난이 일어난 배경을 살펴보자.


공민왕의 즉위와 더불어 반원정책이 시행되면서 제주에서 목호와 고려 관리의 대립이 심해진다. ​

이 무렵 중국은 명이 원을 북쪽으로 몰아내고 중원을 차지하고 고려와 수교를 맺는다. 명(明)은 북쪽으로 쫓겨간 원을 토벌할 계획을 세우고 제주마 2천 필을 고려에 요구한다.

탐라 목호의 지도자였던 석질리필사 · 초고독불화 · 관음보 등은 "세조(世祖) 황제(쿠빌라이 칸)께서 방목하신 말을 적국인 명에 보낼 수 없다"라고 반발하며 350 필만 내어준다. 명의 사신은 고려 조정에 강력히 항의한다. 고려 조정은 마침내 탐라를 정벌할 것을 결정한다.


최영을 총사령관으로 한 토벌군은 명월포(明月浦) 해안에 상륙해 목호와 전투를 치렀다. 몇 번에 걸쳐 고려군을 격퇴한 적이 있는 목호는 기세등등했지만 연이어 패배한다. 수세에 몰린 목호들은 연래와 홍로를 거쳐 퇴각을 거듭하다가 오음 벌판(지금의 강정마을)에 진을 치고 최후의 결전을 한다. 오음 전투에서 대패하고 일부는 법환마을 앞바다에 있는 범섬으로 달아난다.


막숙. 범섬으로 달아난 목호를 진압하기 위해 최영 장군의 대규모 정예군이 군 막사를 치고 법환포구에 주둔하였던 사실에 유래하여 막숙이란 지명이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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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염줄이. 바다 밑에서 솟아오른 바위, 일냉이여가 파도와 함께 일렁인다. 범섬을 향해 바다로 길게 뻗은 '여'가 있다. 목호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이곳에서 범섬까지 뗏목을 이었다고 하여 '배(船)+연(連)+줄+이'가 '배염줄이'로 되었다고 한다.

배염줄이배염줄이

계속해서 오다리, 흰돌밑, 두마니물을 지나간다. 아름다운 지명이다.


흰돌밑. 물아래에 바다여가 있다. 좀 떨어진 곳에 있는 큰 바위가 다소 희게 보인다. 물새가 똥을 싸서 돌이 희게 보인다 하여 '흰돌'이다. 물새가 앉은 것 같기도 하고, 돌인 것 같기도 하고 애매하게 보인다.

흰돌밑흰돌밑

두마니물. 어원을 두면이물에서 찾는다. 머리 두(頭), 낯 면(面), 화할 이(怡)로 추정하고 있다. 법환과 강정의 바다 경계이므로 사소한 이해관계로 다툼이 생겼을 때, 서로 만나 인사를 나누고 의견을 조율하던 장소이기도 하다. 그래서 두면이물이 아니었던가 여겨진다.

두마니물에서 본 강정항두마니물에서 본 강정항

두마니물에는 소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매년 봄 유채꽃이 필 때면 '서귀포 국제 유채꽃 걷기 대회'가 열리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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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마니물 공원의 봄 풍경두마니물 공원의 봄 풍경

두마니물을 지나면 올레는 다시 힘든 자갈길이다. 오솔길과 자갈길을 번갈아 오르내린다. 자갈밭에 올레꾼의 눈길을 붙잡는 화산석이 있다. 이것이 자연이 만든 설치 예술품이라면,

자연이 만든 설치 예술품(?)자연이 만든 설치 예술품(?)

이건 길손들이 만든 훌륭한 설치 예술품이다.

바다를 보고, 파도 소리를 듣고, 바람을 느끼고, 어떻게 변화시킬지를 생각하며 올레꾼이 공동으로 만든 작품이다.

올레꾼이 함께 만든 설치 예술품(?)이다.올레꾼이 함께 만든 설치 예술품(?)이다.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섬, 서건도​


서건도(썩은 섬). 바다가 갈라지는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섬이다. 하루에 두 번 썰물 때가 되면 걸어서 섬에 들어갈 수 있다.


'조이통물'에서 발원한 개울물이 서건도 앞 바닷가로 흘러드는데 수량이 많다. 이 조간대 지역을 '너븐물'이라 한다.

너븐물 조간대에 서건도 건너는 길이 생겼다.너븐물 조간대에 서건도 건너는 길이 생겼다.

해양수산부에서 '서건도 바다 갈라짐 시간표'를 게시해 놓았다. 때마침 썰물 때라 해수면 위로 길이 생겼다. 서건도로 건너간다.

서건도 바다 갈라짐 시간표서건도 바다 갈라짐 시간표

서건도는 면적이 13,367㎡이며, 육지와의 거리는 300m이고, 강정동 해안에 위치한 수중화산이다. 섬 자체만으로도 귀중한 가치를 가진다. 해안에서 섬까지 걸어가는 동안 조개와 낙지 등을 잡는 재미로 체험관광객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다.

그림 같은 섬, 서건도그림 같은 섬, 서건도

또 서건도는 기원전 1세기 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 파편과 동물뼈, 주거 흔적 등이 발견돼 고고학계의 관심을 다.

앞바다에는 간혹 돌고래 떼가 나타나기도 한다. 짧지만 오밀조밀한 산책로, 해질녁의 환상적인 분위기, 쪽빛 바다, 검은 코끼리 바위, 모세의 기적이라는 별칭까지 한데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은 섬이다

서건도 코끼리 바위서건도 코끼리 바위


이어 올레7코스의 중간 기착지인 올레요 이레 7 쉼터를 만난다. 잠시 쉬었다 간다. 강정마을을 들어서는 모퉁이에서 '모세의 기적'이 일어난 너븐물과 서건도를 뒤돌아본다.

강정항으로 가다가 돌아 본 너븐물과 서건도강정항으로 가다가 돌아 본 너븐물과 서건도


강정마을의 아픔을 생각하며​

멀리 강정 미 해군기지가 보인다. 억새밭 너머로 보이는 한라산은 흰 구름에 싸여 있다. 억새가 잘 자라지 못해 가을을 느끼기에 부족하다. 강정 평화마을로 들어서니 산국이 길손을 맞이한다.

강정 평화마을로 들어서니 산국이 길손을 맞이한다.강정 평화마을로 들어서니 산국이 길손을 맞이한다.

강정천. 제주의 다른 하천과는 달리 사철 맑은 물이 흐르는 강정천은 은어 서식지로 유명하다. 하류의 서쪽 해안은 기암절벽과 노송이 절경을 이루고 있어서 강태공의 낚시터로, 여름철의 피서지로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다. 또한 해양생태계 보전지역인 이곳의 해군기지 건설로 인한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민관의 첨예한 대립은 계속되고 있다.

도순천 하류, 강정마을 한가운데를 거쳐 바다로 나아가는 강정천.도순천 하류, 강정마을 한가운데를 거쳐 바다로 나아가는 강정천.

구럼비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낀다. 세월은 흘러가도 범섬은 안다. 강정바다도 안다. 전쟁과 무기로는 평화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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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럼비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낀다.구럼비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낀다.
가장 지키고 싶은 건 있는 그대로의 마을이야. 민속보존회에서 하고 싶은 것도 후손들에게 우리가 살고 만들어 온 그대로를 전해 주는 것이고, 구럼비도 남겨 주고 싶어. 구럼비는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신기'가 있다고 알려져 있어. 그 바위틈에서 나오는 물을 떠다 먹곤 했는데, 아픈 사람이 먹으면 낫는다는 전설이 있어. 나도 첫째가 아팠을 때 구럼비에서 기도드린 적이 있어.        

 - 영자 삼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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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마을의 갈등은 현재 진행형이다.강정마을의 갈등은 현재 진행형이다.

해질녘 구름 속에서 살짝 모습을 드러내는 한라산은 그 옛날 삼별초 항쟁도, 목호의 난도, 4.3 학살도, 지금 진행되는 강정의 아픔도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 시대도 다르고 상대도 달랐지만, 모두 외세에 의한 유린으로 비롯되었다는 것을 산천도 알고 이 땅에 사는 민초들도 안다. 다만 말을 하지 않을 뿐이다. 이젠 말을 하자. 남의 일이라 애써 외면하지 말자. 언젠가 나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다.

강정에서 본 한라산강정에서 본 한라산

찢긴 깃발을 뒤로하고, 감귤이 노랗게 익어가고 어린이집도 아름다운 해안도 겉으로 보기에는 일상적인 마을로 들어선다.


해가 저물어간다. 길은 해안가를 따라 월평포구로 향한다. 해안의 노을은 강정의 아픔을 생각하면 미안할 정도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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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노을강정의 노을

올레는 공사 때문에 포구 못 미쳐서 해안을 버리고 들판으로 우회한다.

날은 금세 어두워진다.

들판이라 민가도 가로등도 없다.

휴대폰 플래시에 의존하여 겨우 길을 찾는다.

마음이 급해진다.

걸음걸이가 빨라진다.  

멀리 불빛이 보이고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민가가 가까워졌는가 했는데, 

노선버스가 다니는 이어도로를 건너니 또다시 어두운 들판이다.


10여 분 더 걷고서야 교회 십자가 불빛이 보인다. 십자가가 이렇게 반갑긴 처음이다. 월평 아왜낭목 정류장에서 오늘의 일정을 마친다. (2022. 11. 10)


운동 시간 : 4시간 59분(총 시간 7시간 2분)

걸은 거리 : 19.98km(공식 거리 : 17.6km)

걸음 수 : 33,221보

평균 속도 : 4.0km/h

소모 열량 : 1,982k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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