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라는 공간에 처음 글을 쓴 것은 2009년 2월이다. 필름 카메라를 잃어버리고 디지털카메라로 갈아타면서 생긴 변화였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에 글을 쓰기 이전까지는 글쓰기를 잊고 살았다. 결혼하기 전, 출판사에서 보도자료를 작성하고 잡지사에서 취재기사를 쓰며 지냈지만, 아이를 낳고 퇴직한 이후로는 글쓰기를 멈추었다. 대신 아이들에게 글을 쓰게 하며 지냈다.
필름 카메라가 있을 때에는 사진을 인화했다. 인화한 사진은 대부분 여행지나 박물관, 문학관, 미술관 같은 곳에서 아이들이 활동하는 장면을 찍은 것들이었다. 사진은 아이들에게 글을 쓰게 하기 좋은 재료였다. A4 용지에 사진을 붙이고 그 아래 사진 설명을 쓰게 하면 아이들은 군말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아이들의 이야기는 '행복한 나날'이라는 제목을 붙인 파일집에 차곡차곡 쌓였다.
그런데 막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필름 카메라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어떤 카메라를 살까 고민하다 컴퓨터에 연결해 사진을 A4 용지에 바로 출력할 수 있는 디지털카메라를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카메라와 컴퓨터의 연동은 기존에 해오던 작업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었다. 사진 인화를 사진관에 맡기는 대신 프린터기에 A4 용지를 꽂아 사진을 출력하게 했다. 그 일은 한글 문서의 편집기술을 독학하게 하기도 했는데 그 원동력은 사진을 넣을 자리와 아이들이 글을 쓸 자리를 보기좋게 만들고 싶은 욕구 덕분이었다.
아이들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연필로 글을 쓰는 대신 자판을 두드리게 된 것이다. 사진과 자판 글씨가 적절하게 섞인 A4 용지는 언뜻 보면 흡사 책처럼 보였다. 인쇄기술이 따로 없었다. 이름하여 '우리집 책 만들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한글 문서에 써내려가는 동안 나는 블로그를 개설해 짤막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다가온 일상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블로그에 글을 써나가던 어느 날, 동생에게서 제부가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브런치 작가'. 생소한 단어였다. 알아보니 브런치는 블로그와는 전혀 다른 공간이었다. 누구나 개설할 수 있는 블로그와는 달리 심사를 통과한 이들만이 글을 발행할 수 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마침 긴 글을 써보고 싶은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오던 차였는데 옳다구나 싶었다. 브런치가 요구하는 자기소개서와 기획서, 그리고 글 한 편(브런치 첫 글이 되었다)을 써서 제출했다. 그때 썼던 자기소개는 다음과 같다.
"막내가 대학생이 되면서 드디어 육아의 책임에서 벗어난 쉰여섯의 주부. 출산과 더불어 출판계에서 발을 뺏다가 나이 오십에 다시 출판계에 발을 들인 뚝심의 아줌마. 인생 계획에 없던 결혼과 육아라는 세상을 만나면서 적잖이 부침을 겪기도 했지만 그 부침 덕분에 다가오는 것에 집중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얻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미생의 어른입니다. 간간이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지만 단편적인 기록에 그치고 있어 좀 더 구체적이고 완성된 글을 쓰고자 브런치 작가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글을 보내고 얼마 후,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라는 축하 통보를 받았다.
그렇게 계획에 없는 브런치 작가가 되고 브런치라는 공간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사진 위주로 글을 올리는 블로그와는 달리 브런치라는 공간에서는 글이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되도록이면 넋두리가 아닌 글, 감정을 쏟아내기만 하는 글이 아닌 정갈한 글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글을 쓰기는 쉽지 않았다. 힘을 빼야 한다는 생각만 드는 나날이었다.
그러다 브런치 이웃작가님의 글[오마이뉴스 인기기사 1위로 시작한 월요일 (brunch.co.kr)]에서 오마이뉴스 기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 글에서 다음 구절이 눈에 띄었다.
"오마이뉴스 기자단에 가입하고 '사는 이야기'에 글을 올리면, 원고료를 준다."
원고료를 주다니. 눈이 커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시 원고 교정으로 돈을 벌고 있던 내게, 남의 글이 아니라 내가 쓴 글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은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곧바로 오마이뉴스에 들어가 '사는 이야기'를 클릭했다. 그러고는 어떤 식으로 기사가 쓰이나 궁금해 이런저런 기사들을 클릭해 읽었다. 그러다 전미경 작가가 쓴 입성기[내가 기사를 쓰다니... '합격' 통보 받은 것만큼 기뻤다 - 오마이뉴스 (ohmynews.com)]를 만났다. 그 글을 읽고서야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단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오마이뉴스의 '사는 이야기'는 일반 시민의 글을 싣는 공간이었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기치 아래 모든 시민의 일상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신문사라니, 놀라웠다.
기사 채택 여부는 글을 송고받은 편집부에서 결정했다. 기사로 채택된 글은 4개의 등급으로 나뉘어 독자를 만났다. 잉걸, 버금, 으뜸, 오름. 가장 높은 등급은 오름이었다. 그다음은 으뜸, 그다음이 버금이다. 제일 낮은 등급은 잉걸인데 단어가 생소해 사전을 찾아보니 '불이 이글이글하게 핀 숯덩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등급은 제일 낮지만 이름은 제일 예쁘다. 기사로 채택되지 못한 글은 온라인 지면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생나무 리스트'에 남아 독자를 만나거나 기사를 송고한 저자에 의해 삭제되는 운명을 맞았다.
방법을 알고 나니 '나도 한 번 해볼까?' 싶은 호기심이 일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단에 가입하고 '사는 이야기'에 글을 올렸다. 첫 글은 '생나무'로 판정을 받아 지면에 오르지 못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생각했다. 아무래도 시의성과 정보성이 전혀 없는 게 문제인 듯했다. 그래서 두 번째 원고에는 시의성과 정보성을 가미해 편집부에 송고했다. 그것이 금요일 오전의 일이었다. 그런데 그날 오후, 기사가 메인에 채택되었다는 알림이 왔다. 놀라서 기사를 클릭했다. 제목이 달라져서 '뭐지?' 싶었는데 정말 내 글이었다. 송고했던 제목은 부제목으로 밀려나고 대신 낯선 제목이 큰 글씨로 쓰여 있었다. '고물가 시대에 뭐 해먹고 사냐고요?'. 제목은 낯설었지만 내용은 그대로였다. 편집부에서 시의성에 맞게 제목만 고친 모양이었다. 제목 붙이기가 늘 고민인데 흥미로웠다.
사실, 메인에 걸린 글은 2021년에 브런치에 썼던 글[에어 프라이기가 내게로 왔다 (brunch.co.kr)]을 재활용한 것이다. 하지만 뼈대에 해당하는 두 문단만 가져다 썼을 뿐 나머지는 전혀 다른 문장으로 채웠다. 지금 시점에 맞게 도입부를 바꾸고, 기사 형식에 맞도록 한국소비자원의 외식비 통계 자료를 인용해 집밥에 대한 이야기를 새로이 쓴 것이다. 오마이뉴스에서는 이 글을 '버금'으로 선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