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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juGrapher Jun 05. 2017

기억의 숲길

사려니숲 에코힐링 2017

이 맘 때 즈음이었는데 한동안 잊고 있다가 운전을 하다가 길가에 있는 제9회 사려니술 에코힐링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을 봤습니다. 작년에도 5월 말에서 6월 초 사이에 약 2주 동안 행사를 했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6/6까지 9회 행사를 진행한다고 합니다. 사려니숲길은 평소에도 그냥 짧든 길든 걸어갈 수 있는 곳이지만, 에코힐링 행사가 중요한 이유는 평소에 접근이 불가능 또한 제한된 구역을 행사 기간 동안 한시적으로 출입이 허락된다는 점입니다. 최근 7~8년 동안 안식년으로 출입을 금하는 물찻오름에도 오를 수 있고 (더 이상 굼부리 안으로 내려갈 수는 없음), 물찻오름에서 성판악으로 이어지는 숲길도 걸을 수 있고, 월든삼거리에서 남으로 내려가서 한남시험림 구간과 사려니오름도 마음껏 오를 수 있습니다. 더욱이 올해는 목장길이라는 새로운 코스도 추가됐다고 합니다. 지난 주말에는 대구를 다녀오느라 걷지 못했는데, 일주일을 기다려서 6/3(토)에 비자림로에서 출발해서 월든삼거리를 경유해서 한남 출구까지 약 16km를 걸었습니다. 한 3시간 30분 정도 걸었습니다.


기다리던 행사였지만 막상 출발하는 것이 조금 걱정됐습니다. 장시간 걷다 보면 지난 출장에서 삐끗했던 왼쪽 발목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출발 전날인 금요일 저녁에도 조금 불편했던 차였습니다. 둘째는 오래 걷는 중에 배탈이 나면 어쩌지라는 걱정입니다. 평소 생활 패턴에 근거해서 출발할 때는 괜찮았는데 한참 걷는 중에 탈이 생길 우려가 있습니다. 인적이 드문 곳이라면 자연에서 해결할 수도 있겠지만, 에코힐링 행사로 사람들이 많이 몰린다면 이건 개망신당하기 십상입니다. 셋째는 최근 바닥난 저의 체력 상태입니다. 제주에서 축구동호회가 흐지부지된 후로는 제대로 된 운동을 해본지가 언제였는지 가물 합니다. 일부러 1~2달 전부터 걷는 양을 조금씩 늘리고 있지만 (포켓몬의 영향도 있음) 그래도 5~6km 정도인데, 이번에 제가 계획했던 구간은 15km가 넘습니다. 경험상 10~12km 정도면 적당히 운동이 되면서 즐길 수 있는 거리입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긴 15km가 넘는 구간이 다리에 무리를 주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마이너하게는 과연 토요일 아침에 제때 일어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있었고, 이번 주말에 가봐야 하는 곳들 (렛츠런팜의 양귀비꽃밭이나 바람왓의 메밀밭 등)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기회비용 등...


어쨌든 토요일 아침 8시경에 눈이 떴습니다. 여전히 고민하면서 1시간을 흘러 보내고 그냥 걷자라는 생각으로 물 한 병과 에너지바 하나를 챙겨서 집을 나섰습니다. 한라생태숲에 정차해두고 셔틀을 타고 비자림로 입구에 10:10에 도착해서 걸었습니다. 작년에는 조금 어둑한 시간에 남조로 입구에서 걸었는데, 올해는 많이 늦게 출발했습니다.

비자림로 입구에서 들어가면 바로 만나는 개울

작년까지는 에코힐링 행사장이 이 개울을 지나서 있는 너른 공터에서 진행했는데 올해는 반대편 남조로 입구 쪽에서 행사를 진행한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비자림 입구에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저 사람들을 보면서 중간에 배탈 나면 진짜 개망신이겠구나라는 걱정이 앞섭니다.

제주도에 내려온 2008년도에 물찻오름에 들어간 후로 (당시에는 물찻오름까지 차를 타고 들어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양봉 차량이나 몇몇 관리차량을 제외하고는 통행 제한) 사려니숲길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별로 찾을 기회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비자림로 ~ 물찻오름 ~ 성판악' 그리고 '남조로 ~ 월든삼거리 ~ 한남 출구 (사려니오름)'는 작년 행사에 족적은 남겼기 때문에 아직 남은 '물찻오름 ~ 월든삼거리' 1km 구간을 채우고 싶은 욕심이 생겨서 비자림로에서 출발해서 물찻오름 (오름은 스킵함), 월든삼거리를 경유해서 한남 출구로 향하는 코스를 선택했습니다.

월든삼거리를 지나서 시험림 구간을 향해 남으로...

월든삼거리까지 오는 길에도 사진을 여러 컷 남겼지만 대부분 평범한 숲길 사진이고, 또 시험림 구간을 중심으로 글을 적으려고 사진을 더 추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글을 적으려고 보니 시험림 구간의 사진도 별로 없ㄴ... 월든삼거리에서 남으로 내려가면서 사진을 찍어뒀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사진이 없는 듯합니다. 바로 위의 사진도 남으로 좀 걸어가서 찍은 사진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갘기도 하고...

햇빛이 비친 6월의 나뭇잎

한남 시험림으로 3km 정도 걸어가면 올해부터 새로 생긴 목장길로 분화되는 곳이 나옵니다. 처음에는 시험림 구간을 걸을지 아니면 목장길로 빠져서 내려갈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월든삼거리에 세워진 표지판을 보니 숲길에서 갈라져서 목장/초원을 좀 지나서 다시 예전에 걸어봤던 머체왓길로 이어지는 코스였습니다.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계속 걸었는데, 길이 분기되는 곳에서 가이드분이 (행사 때문에 일시적으로 있음) 목장길은 앞으로 상시 개방할 거라고 전해줬습니다. 아마도 다시 찾아서 걸을 가능성이 매우 낮지만 막상 상시 개방이라는 얘기를 들으니 목장길에 대한 매력이 뚝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한시 개방인 시험림으로 길을 계속 걸었습니다.

시험림으로 들어가는 입구

작년에는 이곳에 너무 일찍 도착해서 (아침 8시경?) 출입문을 열어두지 않아서 월담했던 기억이 있는데 (그 앞에서 30분 정도 사람을 기다리다가 뒤에 오신 분들과 함께 같이 월담했음), 올해는 늦게 왔더니 문이 활짝 열려있었습니다.

하늘을 보면서 걷다

작년에는 안개가 짙었는데 올해는 맑은 날입니다. 작년에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지 못했던 것이 아쉬웠는데, 올해는 막상 맑은 날이지만 하늘색이 파랗지는 않습니다. 이미 해가 중천에 뜬 시간이라서 하늘은 푸릇하다기보다는 그냥 하얗게 변한 후였습니다. 오히려 햇볕이 강하니 그늘도 많이 져서 명암대비가 심해서 제대로 된 사진을 찍기가 더 어려웠습니다. 오히려 작년의 날씨가 더 나았다는 것을 1년이 지난 후에 깨달았습니다. 사진을 찍기에도 더 좋았고, 긴 길을 걸어가기에도 더 편했습니다.

숲길
단풍나무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는 날에 숲길에서 사진을 찍기에 안 좋은 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오랜만에 선글라스를 끼고 걸었는데 연두색의 나뭇잎이 그저 채도가 낮은 녹색으로 보여서 지금 아름다운 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 그래서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생각을 앗아가 버렸습니다. 작년에는 급하게 걸으면서도 엄청 많은 사진을 찍었었는데, 올해는 채 200장을 채우지도 못했습니다. 물론 작년에 이미 걸으면서 봤던 풍경이라서 셔터를 덜 누른 것도 있지만, 저는 선글라스의 영향이 더 커다고 봅니다. 이 글을 제목을 '기억의 숲길'이라고 정한 것은 단지 1년 전에 한번 걸어갔던 길이었지만 작년에 걸으면서 봤던 모습과 올해의 모습이 겹쳐져서 같이 보이는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작년에 여기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작년에는 여기를 지날 때 앞에 가던 분의 모습이 생생한데, 작년에는 여기에 베어낸 나무 무더기가 있었는데... 단 한번 걸었던 길을 1년 만에 다시 걷는데 마치 어릴 적 추억처럼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이 참 신기했습니다.

20m가 넘는 삼나무가 자라는 삼나무 전시림... 작년에는 들어가 보지 않았던 곳입니다. 작년처럼 안개가 자욱했더라면 얼마나 신령스러운 장면을 연출할까?가 상상이 됩니다.

삼나무길

출구가 가까운 곳에는 삼나무길이 이어집니다. 작년에는 사려니오름에 올랐는데, 올해는 작년과 다른 코스로 출구로 향합니다.

길의 끝에서... 출구를 나와서 좀 더 걸어가니 행사 중에만 운영하는 무료 셔틀이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운 좋게 시간을 잘 맞춰서 셔틀 (B: 남조로 ~ 한남 출구)을 타고 남조로 입구까지 왔습니다. 셔틀에서 내려서 다시 셔틀 (A: 사려니 주차장 ~ 남조로)을 타고 사려니 주차장으로 가서, 다시 셔틀에서 내려서 한라생태숲으로 가는 셔틀 (사려니 주차장 ~ 비자림로 입구 ~ 한라 생태숲)를 타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셔틀 A & B는 행사 중에만 한시적으로 운행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생태숲에서 차를 찾아서 렛츠런팜으로 양귀비꽃 사진을 찍기 위해서 운전해 갔습니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여전히 붉게 물든 양귀비꽃에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렛츠런팜은 교래리에 있는 목장으로 마사회에서 운영하는 곳입니다. 일종의 사회적 활동으로 무료 개방한 곳인데, 시수마를 관리하고 상반기에는 교미하는 곳입니다. 하지만 도로가 한편으로 계절마다 여러 꽃을 심어서 도민들이나 관광객들이 찾아와서 볼 수 있도록 만들어뒀습니다. 뿐만 아니라, 목장 사이를 산책할 수도 있고, 자전거도 무료로 대여해주고 몇몇 종의 동물도 키우고 있어서 어린이들과 함께 가기에도 좋은 곳입니다. 최근 제주도에 해바라기밭들도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렛츠럼팜에도 지금 해바라기가 자라고 있어서 6월 말에는 또 다른 볼거리를 기대해도 됩니다.

바람에 흩날리는 양귀비꽃

원래는 사려니숲길을 걸으며 사진을 찍는 것이 목표였는데, 나중에 사진을 확인해보니 오히려 양귀비꽃 사진이 더 많았다는 불편한 진실... 

사려니숲길과 렛츠런팜 관련 이전 글들

- 사려니 숲길 https://brunch.co.kr/@jejugrapher/41

- 사려니의 가을 https://brunch.co.kr/@jejugrapher/54

- 에코힐링 2016 https://brunch.co.kr/@jejugrapher/112

- 에코힐링 2016 (시험림 구간) https://brunch.co.kr/@jejugrapher/113

- 렛츠런팜 https://brunch.co.kr/@jejugrapher/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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