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관자재 1 05화

양예수 영감과 홍삼 신화

제주 한의사의 한의학 이야기

Screenshot 2022-11-07 at 15.50.31.JPG


조선시대 선조 임금의 어의(御醫) 양예수 영감을 아시나요? 양예수 영감은 값비싼 중국 약재 대신 우리나라 토종 약재로 처방전을 만들라는 선조의 어명에 따라 인삼을 애용한 한의사입니다. 우리나라 대표 특산물인 인삼 선호는 당연했는데 양예수 영감의 인삼 처방들은 제자를 통해 대중화됩니다. 그의 제자가 허준 선생이지요. <동의보감>에 인삼 처방이 많은 이유가 그래섭니다.


백성을 긍휼히 여기는 선조의 어명으로 시작된, 스승 양예수와 제자 허준의 인삼 대중화를 우려하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선조의 다른 어의인 안덕수 영감이 양예수의 인삼 애용을 비판했습니다. 성질이 급하고 강한 인삼을 함부로 처방하면 안된다고 말이죠. 이후 대중은 양예수, 허준의 인삼 처방을 기억하고, 안덕수의 경고는 잊었지만 당시 설화집인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흥미로운 글이 있습니다.


“양예수는 집중적인 투약으로 효과를 빨리 보는 반면 사람 상하는 일이 많았지만 안덕수는 효력은 느리나 사람 상하는 일이 없었다.”


부작용 염려되는 강한 약재로 신속하게 치료하는 것과 시간 걸려도 순한 약재로 안전하게 치료하는 것. 여러분은 어떤 방법을 택하겠습니까? 선택을 돕고자 역사적 인물에 대해 말씀 드립니다. 조선시대 정조 임금 말이죠. 학계 일부에선 독살설을 제기하지만 한의사 관점에서 정조는 의료사고 피해자입니다. 인삼 부작용 사례의 대표 인물이지요.


양(陽) 체질임을 알았던 정조는 양성(陽性) 강한 인삼을 거부하다가 어의의 강요에 인삼 처방을 복용하면서 위독해집니다. 어의의 실수는 그의 인삼 선호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는 선조 임금부터 시작된 인삼 처방의 대중화가 2백년 동안 고착된 결과입니다. 당대 실력 있는 한의사인 어의조차 처방 관습에 매몰되어 환자 체질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로부터 또 2백년이 지난 지금, 4백년 역사의 인삼 선호는 ‘홍삼 신화’로 이어졌습니다. 4백년 동안 맹신하면 종교처럼 되지요. 종교는 그 믿음을 함부로 건드릴 수 없고요. 게다가 광고가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면역 증진을 내세운 홍삼 광고들. 안덕수 영감이 지금의 홍삼 광고를 보면 어떤 말씀을 하실까요?


제 글은 인삼, 홍삼을 폄하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한의사로서 그 약성이 훌륭함을 알기 때문에 경계하는 것입니다. 칼이 날카로울수록 주방에선 좋은 도구이지만 강도가 쥐면 위험한 흉기가 됩니다. 인삼, 홍삼처럼 약성 강한 한약재는 그 부작용을 주시하는 한의사의 손에서 도구로 사용되어야지 대중에게 주어지면 위험합니다. 인삼, 홍삼을 임의로 복용한 후에 컨디션이 좋지 않을 경우 그것이 흉기로 사용되었음을 인식하시길 바랍니다.


keyword
이전 04화약재 복용은 체질에 맞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