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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부지런해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by 제나랑


<2024년 07월 14일>

AM 11:15

제주도의 삼복더위에 올레길을 걸었던 스텔라는 한라산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던 중, 한라산 중턱의 시원한 숲길을 걸을 수 있는 둘레길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올레길과 마찬가지로 가장 걷기 좋다는 3개의 코스만 걷기로 하고, 오늘 걷게 될 첫 번째 코스를 위해 오전부터 충분히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한라산 둘레길은 1코스 천아숲길부터 9코스 숫모르편백숲길까지 해발 600~800m의 국유림 일대를 둘러 싸고 있는 일제강점기 병참로와 임도,


표고버섯 재배지 운송로 등을 연결하는 총 80km의 한라산 숲길을 말하며, 제주올레 파트너 기업에서 개발한 상품으로, 코스를 날마다 이어 걸으며


완주 하는 프로그램이 있을 정도로 도보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하지만 그녀는 제주 올레길과 한라산 둘레길만 걷기 위한 나중을 기약하며, 선택한 3가의 코스 중 첫 번째는 펜션이 있는 애월읍에 위치한 1코스로,


천아수원지에서 보림농장 삼거리까지 걷는 구간인 천아숲길이다.

천아숲길은 총 8.7km의 거리에 한대오름, 노로오름, 천아오름 등이 분포하고 있는 코스로, 노로오름 인근의 한라산 중턱 일대에 검벵듸, 오작지왓이라고도


불리는 '숨은물벵듸'가 있으며, 무수천 계곡으로 흘러가는 수자원의 보고인 광령천이 내려오는 곳에 천아수원지와 어승생 수원지도 만날 수 있다.

종주 코스지만, 렌터카나 자차로 방문하는 사람들은 일부 중간 지점까지만 걷고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스텔라는 코스별로 종주하고 싶은 마음에 택시로 이동해, 천아숲길 입구에서 내려, 2.2km를 걸어서 시작 지점인 천아수원지에서 보림농장 삼거리까지 걷은 후,


영실 입구까지 또 2.1km를 더 걸어서 택시를 타고 돌아올 예정이며, 협재해수욕장에 들러, 일몰까지 보고 올 생각으로 조금 늦게, 오후쯤 출발하기로 했다.

천아수원지에서 첫 번째 중간 지점인 임도 삼거리까지는 40분, 다음 중간 지점인 노로오름까지 1시간 10분, 도착 지점인 보림농장 삼거리까지


1시간 10분 이내로, 총 3시간이 소요되는데, 천아오름을 오르는 시간까지 합하면 4시간 이내로 걸리기 때문에 어디까지 걸을지, 미리 생각하고 걷는 것이 좋다.

점심은 간단하게 시리얼로 때우고는 여유롭게 트레킹을 위한 외출 준비를 하는 스텔라

PM 02:30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질 것 같은 흐린 날씨였지만, 올레길과는 또 다른 설렘을 안고 펜션을 나선 스텔라는 길가로 걸어 나와,


천아숲길까지 택시로 이동했고, 천아수원지부터 걷기 시작했다.

PM 03:30

천아숲길 입구에 도착한 스텔라는 잠시 숨을 고리고 본격적인 트레킹을 시작했고, 숲길이 시작되자, 시원한 그늘과 상쾌한 공기 그리고 코끝을 스치는 숲 내음이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온 듯, 그녀를 맞이 했으며,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잠시 날씨가 개면서 고개를 슬쩍 내민 햇빛이 스며들고 새소리와 바람 소리가 어우러져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1코스는 정방향으로 걸으면 고도가 완만한 편이지만, 마지막 구간이 오르막이기 때문에 역방향으로 보림 농장 삼거리부터 걸으면 소요 시간이 단축되기 때문에


역방향으로 걷는 사람들도 종종 볼 수 있었다.

올레길에 비하면 오르막 내리막이 많이 없고, 중간중간 돌길만 지나면 전체적으로 어렵지 않은 편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걸으며 주변 경치를 감사했고, 중간중간 쉼터가 있었던 올레길과는 다르게 별도로 쉼터가 없어, 때로는 나무 그늘 아래, 큰 바위 위에 앉아


쉬기도 하고, 또 때로는 계곡물에 발도 담그면서 땀을 식히기도 했다.

길 양쪽으로 편백나무와 삼나무가 가득한 숲길이라 땡볕을 피해 그늘 속에서 걷기 때문에 땀이 나더라도 금방 식고, 온통 초록빛으로 가득한 길을 걸으니,


저절로 힐링이 되는 시간이었다.

표고버섯 재배지 인근에 가까워지면 한라산 표고버섯 무인 판매대도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으며, 적당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고 도심을 거쳐 가고


비 오듯 땀을 흘리며 해안가를 걷던 올레길과는 달리, 숲속으로 들어오니 최소 5~7도가량 낮은 온도 차여서 걷는 내내 숲 내음과 시원한 바람을 온몸 샤워한 듯

기분 좋게 더욱 오롯이 자연 속에서 걸을 수 있었던 천아숲길이었다.

PM 06:30

그렇게 3시간 동안 이어진 트레킹 끝에, 스텔라는 천아숲길의 도착 지점이자, 1코스의 끝인 보림농장 삼거리 지점에 도착했고, 영실 입구까지 더 걸어가서야


나오는 도로에서 잠시 숨을 돌리며, 어플로 택시를 불렀다.

30분 동안 배차와 취소를 여러 번 반복하다가 겨우 배차되어, 조금 더 기다려서야 택시가 스텔라 앞에 섰고, 협재해수욕장에 도착하자,


타이밍 좋게 일몰이 시작되기 직전, 하늘이 조금씩 어두워지는 중이었다.

태양이 서서히 수평선 아래로 내려가면서 하늘은 붉은색과 주황색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바다는 태양의 빛을 반사해 윤슬을 만들어내며 반짝였으며,


바람은 부드럽게 불어와 스텔라의 머리카락을 흩날렸다.

그녀는 이 아름다운 절경을 바라보며 자연의 웅장함에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해변가에 바위 위에 앉아 일몰을 바라보았고, 노을이 짙어지면서 하늘은 더욱더 깊은 색으로 변했으며, 모두가 이 순간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랐지만,


일몰은 언제나 그렇듯 순식간에 수평성 너머로 넘어갔다.

그녀는 이 순간을 기억 속에 가득 담아 간직하며 첫 한라산 둘레길을 걸었던 피로를 씻어냈다.

점심을 간단히 때웠기에 출출해진 스텔라는 협재해수욕장에서 택시를 타고 7분 거리에 있는 [바다ㅈㅂ]로 향했고, 신메뉴라는 접짝뼈 칼국수와


제주 위트 에일 수제 맥주를 곁들여 저녁을 먹었다.

제주 돼지 뼈를 푹 고아 깊고 깔끔한 맛의 국물과 비주얼만 봐도 든든함이 느껴지도록 살이 두툼하게 붙은 큼지막한 접짝뼈 2대가 들어간 접짝뼈 칼국수와


시원한 제주 위트 에일 수제 맥주는 그녀의 피로를 풀기에 충분했다.

천아숲길을 걸으며 자연과 함께 힐링하는 시간이 올레길과 다른 느낌으로 너무 좋았으나, 날씨가 흐려서 땀이 나더라도 빠르게 식으면서 체감온도가 낮아져,


집업 자켓을 꺼냈다가 넣었다가를 반복해서 번거로웠던 점이 조금 아쉬웠다.

날씨가 화창하고 더웠어도 아름다운 풍경과 시원한 숲길 덕분에 그 더위를 이겨낼 수 있었을 것이고, 협재해수욕장에서의 일몰과 뜨끈하고 진한 국물의 칼국수로


하루를 마무리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바다ㅈㅂ]에서 펜션까지는 차로 5분 거리지만, 또다시 택시를 잡기보다는 아직 남아 있는 체력으로, 맥주도 한 병 마셔서 산책하듯 걸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40분을 걸어서 이동했고, 펜션으로 돌아왔다.

PM 09:30

펜션에 도착하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마친 스텔라는 아일랜드 식탁 위에 둔 노트북 앞에 앉아, 천아숲길과 협재해수욕장에서의 노을을 보고


떠올랐던 영감을 글로 옮기기 시작했다.

시나리오를 쓰는 동안, 그녀는 깊이 몰입했고, 마치 자신이 노을 속에서 길을 잃은 주인공이 된 것처럼 상상을 하며 글을 써 내려갔으며,


자정이 넘도록 그녀의 손끝에서 문장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다음 챕터를 완성한 스텔라는 휘영청 밝은 달과 반짝이는 별들을 수없이 박혀있는 밤하늘을 잠시 바라보다,

한라산 둘레길 7코스와 9코스가 위치해 있는 조천과 김녕해수욕장이 있는 구좌에 대해 검색해 본다.

차량을 이용하기로 하고, 첫날은 구좌를 돌아다니고, 둘째 날은 7코스와 9코스를 걷고 나서 다시 펜션으로 돌아오는 동선까지 짠 후,


조천에 있는 호텔에 1박을 예약하고는 지친 몸을 풀기 위해 마스크 팩을 하며 반신욕을 하고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노트북은 아일랜드 식탁 위에 그대로 두고는 2층으로 올라가 욕조에 물을 채운다.

물의 온도는 적당히 따뜻하여 몸을 편안하게 할 정도로 맞추고, 물이 채워지는 동안, 그 위에 입욕제 하나를 풀고는 가운으로 갈아입은 후,


마스크팩이 담긴 대용량 팩에서 한 장을 꺼내, 얼굴 전체에 밀착시킨다.

욕조에 물이 다 채워지자, 그녀는 가운을 벗고 욕조 안으로 들어갔다.

따뜻한 물이 온몸을 감싸며, 긴장했던 근육이 풀리는 느낌이 들었고, 욕조 가장자리에 기대어, 눈을 감고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자,


마음까지 안정되는 것 같았다.

마스크팩의 시원한 느낌과 따뜻한 물의 조화가 그녀의 기분을 더욱 좋게 만들었고, 이것이 그녀가 항상 하는 저녁 루틴이 된 이유이며,


일종의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즉, 그녀의 소확행이다.

이처럼, 마스크팩을 하며 반신욕을 하는 시간을 통해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으며, 더불어 하루를 마무리하는,


그녀에게 매우 소중한 시간이 되어버렸다.

반신욕을 마치고 욕실에서 나온 그녀는 입욕제가 묻은 몸을 간단히 헹군 후, 벗어둔 홈웨어로 갈아입는다.

마스크팩도 얼굴에서 떼어내고는 손끝으로 두드려, 남은 에센스를 마저 흡수시킨다.

몸이 한결 가벼워진 걸 느끼며, 침대에 누웠다.

노곤해진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잠이 들었고, 평소 꿈을 자주 꾸기에, 이번에도 역시나 꿈을 꾼다.

[스텔라의 꿈속]

파스텔 톤의 원피스를 입은 스텔라가 노을이 지는 해변을 맨발로 걷고 있다.

시원한 바람이 그녀의 머리카락 사이로 스치며 흩날리고 있었고, 발가락 사이로 파고드는 모래알들이 그녀의 발을 간지럽혔다.

해변가는 아무도 없이 조용해서 파도 소리만이 그 해변가에 울리고 있었다.

그녀는 노을을 바라보며, 어디에 있는 해변인지도 모른 채, 정처 없이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 갑자기 순식간에 주변이 어두워졌고, 어딘지 몰랐던 그녀는 막막했다.

보통은 주변이 아무리 깜깜해도 금방 눈이 적응해 형체가 보이기 시작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고, 두려움도 잠시,


호기심과 모험심이 생겨, 무작정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으며, 걷다 보니 커다란 나무들이 하나둘씩 나타나, 그녀를 둘러싸고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며,


그녀에게 말을 거는 듯했다.

나무들 사이로 작은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고, 곧이어 그 불빛은 문에서 새어 나오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마치 동화 속 세상처럼 아름다운 곳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녀가 좋아하는 푸른빛 수국과 보랏빛 라벤더가 만발하고, 새들이 노래하는 듯했다.

환상 속의 세계를 연상케 했던 곳을 지나자, 갑자기 길이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다시 파도 소리가 들려와, 조금 전의 그 해변가로 다시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짙은 어둠이 깔린 해변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두려움 때문에 파도 소리조차 잔뜩 화가 나 있는 듯이 날카롭게 들렸다.

그러다 갑자기 멀리서 누군가가 소리치는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바다 한가운데 허우적거리는 그 누군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누군가의 정체가 메이든이라는 걸 깨닫고, 스텔라는 너무 놀라 뒤로 넘어지고 말았고, 수영을 하지 못하는 그녀는 목소리를 쥐어짜며 소리쳤지만,


소리가 나오기는커녕, 도와줄 만한 사람은 주변에 아무도 없어,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면 메이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바다에 뛰어든 그녀는 자꾸 몸이 둥둥 뜨자, 바닷속 주변을 둘러보았고,


배를 항구에 정박할 때 밧줄이 달린 닻을 발견해, 그 밧줄을 안간힘을 다해 잡았다.

밧줄에 의지하며, 메이든이 가라앉아 있는 수심 밑으로 내려갔고, 이미 정신을 잃은 메이든을 향해 손을 뻗었다.

메이든의 셔츠 옷깃이 손에 잡히자, 꽉 움켜쥐고 있는 힘껏 끌어당겼다.

더욱 단단히 잡을 수 있는 벨트를 다시 잡고는 밧줄을 이용해 수면 위로 올라갔다.

무게 때문에 불가능할 줄 알았지만, 다행히 올라가는 건 생각보다 쉬웠다.

끝끝내 해변가로 메이든을 끌어올린 그녀는 곧바로 그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녀가 그의 양 볼과 가슴을 치자, 다행히도 물을 뱉어내며, 숨과 의식이 한꺼번에 돌아왔다.

의식이 돌아온 그가 그녀를 양팔 가득 안았다.

물에 젖어 차가웠던 그의 몸이 점점 따뜻해졌고, 그녀에게 무언가 말을 하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그가 먼지처럼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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