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는 일어나는 이유가 있다
<2024년 07월 15일>
AM 04:10
꿈에서 깬 스텔라는 불안감에 휩싸였고, 일어나 침대에 앉아 생각에 잠긴다.
꿈이 너무 생생하고 강렬해서 어느새 그녀의 눈가에는 꿈에서 느낀 감정의 여운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녀는 '이 꿈이 단순한 꿈이겠지.' 하는 생각과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미래에 대한 경고나 예시가 아닐까, 혹시 메이든이나 내가 앞으로 겪을 일이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공존하면서 혼란스럽다.
종종 현실과 연관된 꿈을 꾸곤 했기 때문에 더욱 신경이 쓰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메이든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협탁 위에 둔 핸드폰을 집어 드는데, 괜히 잘 자고 있는 사람을 깨우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
일단 톡으로 메시지를 남긴다.
>>메이든
메이든, 자는 데 깨울까 봐 전화는 못 하고 톡 남겨.
메이든이 안 좋은 일을 당하는 꿈을 꿔서…
괜히 덩달아 불안하게 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며칠 동안만이라도 물, 특히 바다 조심해…
특히나 제주는 해변가가 가까운데 걱정되네…
톡 보면 연락 줘…
그녀가 메이든에게 톡을 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읽음 표시가 뜨고 바로 전화가 온다.
>>메이든
(작가님, 안 좋은 꿈 꿨어요?)
"아...나 때문에 깼어?"
(괜찮아요~ 걱정 많이 하셨구나...)
"게스트 하우스 투숙객들이랑 잘 놀러 다니는 거 같아서..."
(걱정해주고 말 해주셔서 고마워요...조심할게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그래...다시 자~"
(작가님, 꿈은 그냥 꿈일 뿐이니까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요. 작업하는 데 스트레스 많이 받고 있나
보다~ 불안해하지 마시고 좀 더 자요~)
"...알았어..."
(이따 만날까요? 꿈 얘기 듣고 싶어요~)
"나 어제 둘레길 걷고 와서 오늘은 좀 쉬려고~"
(와, 작가님 체력 좋으시구나~ 올레길도 걷고 둘레길을 또 걸으셨어요? 그럼 제가 가도 돼요?)
"온다고?"
(불편..하시려나...?)
"아냐, 와~ 오후쯤에 올래?"
(네~! 출발할 때 연락할게요~)
"응~"
(일단 좀 쉬세요~)
"그래, 알았어~"
두 사람의 통화가 끝나고, 스텔라는 메이든의 따뜻한 말에, 조금 안정된 듯, 깊게 심호흡을 한다.
다시 침대에 주워 눈을 감고,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해 노력했다.
한참을 뒤척이며 다시 잠들지 못하다가 날이 밝아오면서 커튼 사이로 비치는 햇빛 한 줄기가 비집고 들어오고 나서야 잠이 들 수 있었고,
그마저도 오래 가지 못하고 계속해서 깨곤 했다.
AM 06:20
결국,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아 침대에서 일어난 스텔라
1층으로 내려가 드립 커피를 내리고는 노트북을 연다.
머그잔에 다 내린 커피를 들고 아일랜드 식탁에 앉은 그녀는 한숨을 쉬고는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한다.
잠을 잘 자지 못한 탓인지, 글을 써 내려가는 속도는 한없이 더디기만 하다.
제주에 처음 도착하고 나서부터 어제 걸었던 둘레길까지 곳곳을 돌아다니며 찍었던 제주의 절경 사진들을 하나씩 넘기며 보던 그녀는 틈틈이 적었던
핸드폰의 메모들도 꺼내 본다.
그리고는 다시 시나리오 작업을 이어가다 보니 점심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하지만 배가 고프지도, 먹고 싶은 것조차 생각나지 않아, 계속 글을 써 내려가는 데에 집중했다.
PM 01:00
작은 볼륨으로 재생시켜 놓은 음악만이 1층을 채우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띵~동~)
스텔라가 대문을 열자, 메이든이 푸른빛 수국 한 송이와 쇼핑백을 들고 서 있었다.
평소 수국을 좋아하지만 꿈속의 수국이 떠올라 당황해한다.
일단 메이든을 본관 안으로 안내한다.
"왜 그래요?"
"아...내가 수국 진짜 좋아하긴 하는데 새벽에 꾼 꿈에 파란 수국이 나와서..."
그녀는 메이든이 수국과 함께 내민 쇼핑백 안에 있던 상자를 열어보고 다시 한번 놀란다.
그 상자 안에 든 건 다름 아닌, 꿈속에서 자신이 입고 있었던 파스텔 톤의 원피스였다.
그녀의 평소 자주 입지 않는 원피스를 입고 있어서 의아했는데 이렇게 메이슨이 선물을 하니, 소름이 돋았다.
불안함도 잠시, 오히려 자신을 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메이든의 눈빛을 보며 고마움을 느꼈다.
아직 점심을 안 먹었다는 스텔라의 말에 그는 냉장고를 열었고, 등심, 로제 파스타 소스와 각종 재료를 꺼내더니 요리하기 시작하는 메이든은
능숙하게 등심 스테이크와 마늘을 굽고, 파스타 면을 삶으며 로제 파스타를 만들어 아일랜드 식탁에 올려 둔다.
"작가님, 일단 드세요~"
"요리 되게 잘 하는구나~"
"요리라기보단 혼자 살면서 이것저것 만들어 먹는 거 좋아해서요~"
"파스타는 내가 해 먹는 거 보다 훨씬 맛있는데?"
"입맛에 맞아요? 다행이다~"
스텔라는 메이든이 만든 점심을 맛있게 먹는 자신의 모습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그의 모습에, 불안감이 점차 사라지는 것을 느꼈고,
새벽에 꿨던 꿈의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꿈에 대해 듣고 나니, 왜 스텔라가 그렇게 불안해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고, 아무리 꿈이라고 해도 수영을 전혀 하지 못하고 심지어,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적이 있어 물 공포증이 있다는 그녀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바다에 뛰어들었던 그 심정과 자신을 향한 걱정에
그녀에게 다시 또 반하게 되었다.
비록,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더라도 그런 마음을 가진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고 메이든이 무슨 타노스가 인구 절반 없앴을 때처럼 먼지가 돼서 사라지는데 너무 먹먹하더라~"
"아, 감동 먹을라고 하는데 웬 타노스? ㅎㅎ"
"ㅋㅋ"
"이제야 웃네요~"
점심 식사를 마친 후, 드립 커피를 내린 머그잔을 들고 거실 소파에 앉아 대화를 나눈다.
"가족들이랑은 어때요?"
"내가 외동이라 어렸을 때부터 사랑 많이 받고 자랐고, 지금도 여전하셔~ 늘 내 걱정뿐이고~"
"그런 거 같았어요~ 저는 형 하나 있고, 엄마가 저희 형제를 거의 혼자 키우셨고 아버지는 캐나다에서 근무 하셔서 한국에서 한 달에 한 번
들어오실까 말까여서 기억할 만한 추억이 별로 없어요. 항상 형이 아버지 대신이었던 거 같아요. 저희가 이중 국적이었는데 형이 캐나다 국적을 포기하고
UDT를 간 게 너무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도 캐나다 국적 포기하고 UDT까지는 아니지만, 육군 현역으로 제대했죠.
그러다 보니 형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지금도 존경하는 부분이 많아요. UDT에서 부사관으로 근무한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전역하고 나서
지금은 소방구조대원으로 일하고 있어요."
"아, 진짜~? 더 대단한 분이 있었네~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 군대에 입대하는 거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건데~ UDT에, 소방구조대원이라니~"
"그쵸~ 미친 사람이에요~ 좋은 의미로요~ㅋㅋ 취미까지 형의 영향이 컸어요. 형이 LP판 수집에, 낚시가 취미인데 같이 하다 보니 저도 덩달아
좋아하게 돼서 저도 취미 중 하나가 LP판 사러 다니고, 낚시하러 다니는 거예요~"
"해외엔 LP판 파는 데 많던데 한국에선 잘 못 본 거 같네~"
"아무래도 그렇죠? 근데 인사동 같은 데 가면 아직 몇 군데 있더라구요~"
"그래? 그럼 인사동 자주 가겠네?"
"로드뷰로 건축물 같은 거 보는 것도 취미인데, 주말에 가끔 실사 찍으러 다니면서 꼭 들렀다가 오죠~구하고 싶은 LP가 없으면 공치고 올 때도 많고,
생각지도 않았던 LP를 발견할 때도 있어요~"
"수집은 그 재미로 하는 거지~ 나도 다른 사람 그림 사기도 하고 여행 가면 기념품이나 작은 소품 같은 거 모으는 것도 좋아해~"
"같이 여행 다니면 너무 좋을 거 같아요~"
"시간 맞으면~"
스텔라는 메이든과 대화를 하면 마음이 편안해져 마치 들고 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 순간부터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메이든을 향한 친밀감과 두 사람 사이의 유대감도 더욱 짙어졌고, 서로에게 마음이 기울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으며, 대화하면서 메이든이 스텔라의 눈을
자주 바라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메이든은 스텔라와 함께하는 이 순간이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고, 매일 매일 그녀를 보고 함께하고 싶었지만,
그녀가 제주에 온 이유가 시나리오 작품 때문이고, 자신의 감정 때문에 그녀를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녀가 자신에게 시간을 내어줄 때를 기다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카페 [맨도롱]에서 처음 만났던 날, 브런치 카페에서 우연히 만났던 날, 요트 투어 갔던 날, 다 같이 생일 홈파티 했던 날, 처음으로 둘이 점심 먹었던 날,
올레길 같이 걸었던 날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두 사람의 대화 주제는 충분했고, 스텔라가 혼자 조용히 지냈던 이 공간은 어느새 두 사람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내일 제주 시내 같이 돌아다니는 거 어때요? 용두암 보러 가려고 하는데 같이 가요~"
"그래~"
두 사람은 함께 서로의 핸드폰을 번갈아 보면서 용두암 말고도 갈만한 곳이 있는지 찾아본다.
"이달 말까지 작품 끝내고 일정대로 말일에 서울 가면 뭐 하실 거예요?"
"미국 본가 가려고~ 8월 초에는 아버지 생신, 9월에는 엄마 생신 있거든~"
"아, 진짜요? 매년 그렇게 8, 9월에 미국 가세요?"
"그치~ 아무리 바빠도 글은 거기서도 써도 되니까 매년 가지~"
"부모님 너무 좋아하시겠다~"
"8, 9월만 기다리셔~하나밖에 없는 딸내미인데 이젠 70대셔서 장시간 비행도 힘드시니까 딸내미가 미국 와야 얼굴을 보니까 아예 미국에서 같이 살자고 하지~"
"미국에서 살 생각도 있으신 거네요?"
"언젠가는? ㅋ"
"미국에 진출하면 그 시기는 당겨지지 않을까요? ㅋ"
"기대조차 안 해~ㅋ"
"왜요~ 미국에 유명 감독이 한국 영화 보고 이거 누가 극본 썼냐고, 작품같이 하자고 할 수도 있죠~"
"그거야말로 꿈 같은 일이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라잖아요~"
"그건 그렇지~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사람 일이니까~"
"나중에 미국에서 더 유명해지고 나서 저 모른 척하시면 안 돼요~ㅋ"
"으이구~ 비행기 그만 태워~ 어지럽다~ㅋㅋ"
"노래 들을까요? 작가님 플레이리스트 궁금해요~ 플레이리스트를 보면 성향을 알 수 있다잖아요~"
"내 플레이리스트? 거의 팝송인데?"
스텔라는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 둔 블루투스 스피커에 핸드폰을 연결해 자주 듣던 플레이리스트를 재생 하고는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듣는 곡을
메이든에게 알려 준다.
블루투스 스피커에서는 Shawn Mendes의 There's Nothing Holdin' Me Back가 흘러나왔다.
I wanna follow where she goes 그녀가 가는 곳이면 따라가고파
I think about her and she knows it 그녀를 맘에 두고 있고, 그녀 역시 그걸 알아
I wanna let her take control 그녀가 하는 대로 따라가고 싶어
'Cause everytime
that she gets close, yeah 매번 그녀는 내게 가까워지니까.
She pulls me in enough to
keep me guessing 그녀는 날 계속해서 생각하게 만들게끔 당겨.
And maybe I should stop 이제 다가가서
and start confessing 고백 하는 게 낫겠지
Confessing, yeah 고백을, 그래
Oh, I've been shaking 흔들려 왔어
I love it when you go crazy 미쳐버리게 행동하는데 난 그게 좋아.
You take all my inhibitions 넌 어색함을 날려버려 줘
Baby, there's nothing holding me back 그 무엇도 날 막지 못해
You take me places
that tear up my reputation 넌 내 명성에 금가게 만들어.
Manipulate my decisions 내 판단력을 흐리게 하지.
Baby, there's nothing holding me back 그 무엇도 날 막지 못해
There's nothing holding me back
There's nothing holding me back
She says that she's never afraid 그녀는 뭔가를 두려워한 적이 없다 말하네
Just picture everybody naked 그저 사람을 벌거벗은 채로 만들어.
She really doesn't like to wait 그녀는 기다리는 걸 정말 싫어해
Not really into hesitation 망설이질 않아
She pulls me in enough
to keep me guessing 그녀는 의문을 남길 만큼 날 끌어당겨.
And maybe I should stop 이제 난 다가가서
and start confessing 고백하는 게 낫겠어
Confessing, yeah 고백을, 그래
'Cause if we lost our minds
and we took it way too far 이성을 잃고 그걸 쭉 받아들여 간다고 해도
I know we'd be alright, 우린 괜찮을 거라 생각해,
I know we would be alright 우린 괜찮을 거라 생각해.
If you were by my side
and we stumbled in the dark 내 옆에서 서서 우리가 어둠 속에 엉키는 것도
I know we'd be alright, 우린 괜찮을 거라 생각해,
I know we would be alright 우린 괜찮을 거라 생각해
(X2)
Oh, I've been shaking 나 흔들려 왔어
I love it when you go crazy 미치게 행동하는데 난 그게 좋아
You take all my inhibitions 넌 어색함을 날려버리지
Baby, there's nothing holding me back 그 무엇도 날 막지 못해
You take me places
that tear up my reputation 넌 내 명성에 금가게 만들어.
Manipulate my decisions 판단력을 흐리게 해
Baby, there's nothing holding me back 그 무엇도 날 막지 못해
There's nothing holding me back 그 무엇도 날 막지 못해
I feel so free when you're with me, baby 내 곁에 있어 줄 땐 난 기분이 좋아, 너
Baby, there's nothing holding me back 그 무엇도 날 막지 못해
저녁은 야외에서 함께 바베큐에 오겹살과 목살을 굽고, 와인을 마시며 대화를 이어갔다.
메이든의 따뜻한 말 한마디 한마디가 스텔라의 마음을 토닥여주었고, 안정을 되찾았으며,
메이든과 함께한 오늘 하루는 두 사람 모두에게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