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7화

시간은 최고의 스승이다

by 제나랑


<2024년 07월 18일>

AM 09:15

아침부터 스텔라가 트레킹 준비에 한창이다.

한라산 등반이 목표라서 둘레길은 세 개의 코스만 걸을 예정이었으나, 7코스를 걷고 나와서 택시를 타고 9코스로 이동해, 8코스를 건너뛰고 걷는 건


너무 비효율적이며, 7~9코스는 걷기 편한 길이라는 정보를 보고 아침 일찍 출발해서 걷고 함덕해수욕장에서 어제와 비슷한 시간에 맞춰 노을을 보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호텔 레스토랑 조식은 9시 30분 마감, 중식은 12시부터 시작이라 시간이 애매해서 조식을 먹은 후, 중간에 쉬면서 먹을 간식거리를 가져가기로 하고,


조식을 먹기 위해 호텔 레스토랑으로 향한다.

조식은 호텔의 꽃이기 때문에 호텔을 예약할 때 일정 중 조식을 먹어야 하면 조식의 평이 좋은 곳으로 예약 하곤 하는데, 후기가 좋아서 기대를 안고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간 스텔라

스프와 전복죽부터 소불고기 등의 한식과 파스타와 피자 등의 양식, 그리고 쌀국수까지 적절하게 간이 베어 있었고, 고기국수의 고기는 부드럽고,


육수는 진해서 여느 맛집 못지않았으며, 아이들을 위한 김과 주먹밥도 있어, 다른 테이블에 있던 아이들도 맛있게 먹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디저트로는 각종 토핑을 뿌려 먹는 요거트, 다양한 종류의 시리얼, 우유와 각종 생과일주스, 여러 과일과 커피 그리고 휘낭시에, 마들렌, 도넛, 파이, 크루아상,


소금빵까지 빵 종류도 다양했는데, 빵 종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그녀도 고소한 빵 냄새에 이끌려 마들렌과 소금빵을 집어 왔고, 다 먹고도 몇 개 더 가져올


정도로 맛있었다.

평소보다 든든하게 식사를 한 그녀는 호텔 편의점에 들러서 간식거리는 산 후, 객실로 돌아가 짐을 챙긴다.

프론트에서 체크아웃을 하고는 차로 이동한다.

PM 12:00

우선 도착 지점인 숫모르편백숲길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택시를 타고 출발 지점인 사려니숲길 입구로 이동해서 7코스 사려니숲길부터 8코스 절물조릿대길을


지나, 9코스 숫모르편백숲길까지 걷기로 한다.

새벽에 이슬비가 내려, 아직 마르지 않은 숲길은 아직 촉촉이 젖어 있어, 길이 미끄러울까 봐 마음이 심란했지만, 조급해하지 않고 여유 있게 걸으면 괜찮겠지,


라는 생각으로 첫걸음을 내디뎠다.

7코스 사려니숲길은 입구부터 쾌청한 사려니숲길은 제주시 봉개동 절물오름 남쪽 비자림로에서 물찻오름을 지나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붉은오름까지


이어지는 총길이는 10km, 소요 시간은 2시간 30분인 숲길로, 한라산국립공원 동쪽 경계인 성판악휴게소의 동남쪽에 형성된 요존국유림 지대에 위치해 있으며,

난대아열대 산림연구소 한남 시험림에 있는 사려니오름의 명칭을 이용하여 사려니숲길이라 부르고 있다.

평화롭게 걷던 와중에 시험림길 삼거리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곳에서 고라니를 만났다.

갑작스러운 만남에 발길을 멈추고 선뜻 지나가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었는데, 한동안 미동도 하지 않고 눈을 맞추던 고라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숲길을 가로질러 왼쪽 숲 쪽으로 사라졌다.

길을 조금 더 올라가자, 시험림길 삼거리가 나왔고, U자 모양의 사려니숲길은 시험림길과 이어져 있어, 여기서부터 비로소 한라산 둘레길을 걷게 되는 것이며,


시험림길 삼거리를 지나 내려가다 보니, 한적한 숲길은 한없이 고요했다.

7코스는 남조로와 비자림로에서 진입이 가능한데, 남조로는 항상 어수선하지만, 비자림로는 적막해, 두 가지 진입로의 분위기는 상반된 느낌이며,


물찻오름은 길이 막혀 있어 올라갈 수 없었다.

숲길은 평지라 걸리적거리는 것 없이 편하게 걸을 수 있었고, 중간에 삼나무와 편백나무를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었으며,


그녀처럼 둘레길 도보 여행자가 아닌, 관광객들도 명소처럼 들렀다가 7코스만 걷기도 한다.

PM 02:30

사려니숲길을 벗어나면 절물조릿대길로 이어지는데, 8코스 절물조릿대길은 2013년 사려니숲길에서 봉개까지, 총 길이 3km, 소요 시간은 1시간인 구간으로


조성된 숲길을 말하며, 2016년 사려니숲길 주차장이 완공 되면서 기존 구간을 확장 한 후, 새롭게 재정비 하여 사려니숲길 임도 구간과 주차장을 연결하는


산림 문화 생태탐방로이다.

최근에 새롭게 연장하여 조성한 길인 만큼 탐방로가 잘 되어 있었고, 하늘 높이 솟은 삼나무와 그 아래에 바짝 엎드린 키 작은 조릿대,


그리고 푹신한 야자 매트의 조합이 산책로로 아쉬울 게 없었다.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이 조릿대를 흔들어댔고, 흔들리는 조릿대는 그녀의 마음을 흔들었다.

좀 더 걷다 보면 아스팔트 차량 도로를 만나게 되는데, 올레길에선 자주 볼 수 있었던 도로지만 둘레길에선 처음이라 다소 의아했으며,


다시 숲속으로 들어서 혼자 걷는 길 한가운데에 그녀보다 외롭게 걷는 달팽이가 보였고, 다른 숲길에 비해 달팽이, 고라니 등 동물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조릿대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자연과 하나가 되는 기분이 들었고, 이따금 서서 숲을 깊게 들이마시며 숲 내음을 온몸으로


느끼곤 했다.

민오름으로 가는 안내판이 보였지만, 민오름은 들르지 않기로 하고 나무 벤치에서 간식거리를 먹으며 쉬기로 하고, 적당한 벤치를 찾아 앉아,


배낭에서 편의점 간식들을 꺼내는 스텔라

그녀는 편의점에서 데우지 않아도 먹을 수 있는 간편식을 보다 보니, 죽이 가장 적당할 거 같아서 소고기죽 하나와 한라봉 주스 병 음료를 구매했고,


휴식을 취하면서 배고픔을 달랬다.

간단히 요기를 하고, 이어서 걷기 위해 재활용 쓰레기들을 배낭에 넣고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삼나무 사이로 깔린 야자 매트가 깔린 숲길이 8코스에서 이어지는 새로 연장된 한라산 둘레길임을 직감할 수 있었으나, 의문이었던 건 둘레길 표시나


그 어떤 것도 찾아볼 수 있었는데, 행여 길을 잃을까 봐 핸드폰으로 지도 어플을 켜서 확인하면 걸어야 했다.

PM 04:00

절물자연휴양림에 다다르면 둘레길 표시가 보이지 않는데, 안내소에 물어도 휴양림이 아닌 둘레길에 대해선 잘 모르는 건지, 알아도 알려주지 않는 건지,


적합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일단 입장료를 지불하고 안으로 들어가자, 절물자연휴양림에는 길고 짧은 여러 갈래의 길이 나오는데, 그중에 한라생태숲으로 이어지는 길로 가야 한라산


둘레길 9코스인 숫모르편백숲길을 만날 수 있다.

9코스 숫모르편백숲길은 절물자연휴양림 입구에서 한라생태숲까지 이어지는 총길이 6.6km, 소요 시간은 2시간 30분인 숲길로 편백나무와 삼나무 숲이 길게


펼쳐져 있으며, 셋 개오리 오름 정상을 지나, 한라생태숲으로 진입하면 '숯을 구웠던 등성이'란 뜻의 옛 지명 숫모르편백숲길을 만나게 되고,


이 구간에는 노루생태 관찰원이 있는 거친오름과 절물자연휴양림 내 절물오름 등이 있다.

마지막 코스이기도 한 숫모르편백숲길에 대한 안내가 왜 이렇게 부실한 걸까.

심지어 어렵게 발견한 안내판조차도 헷갈릴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었고, 겨우 마주한 한라생태숲 정문까지 걸어가더라도 둘레길에 대한 표시는 보이지 않았지만,


야자 매트가 깔린 숲길만 따라가면 헤매지는 않았다.

PM 06:30

드디어 한라생태숲이라고 적힌 돌을 발견하면서 사려니숲길에서부터 한라생태숲까지 6시간이 걸린 한라산 둘레길이 끝이 났다는 생각에,


항상 마무리가 좋아야 하지만 그런 면에서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았지만 금방 기분이 좋아졌고, 시작할 때만 해도 비 온 뒤 축축한 바닥 때문에 미끄러지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마칠 수 있었으며, 숲이 짙고 나무도 높고 바르게 자라서 경치를 떠올리면서 그 아쉬움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미리 숫모르편백숲길 주차장에 주차해놓은 차량으로 30분 거리에 있는 함덕해수욕장에서 보게 될 일몰을 기대하며 이동했고,


해변에 도착하니 관광 명소인 만큼 많은 사람이 일몰을 보기 위해 모여 있었다.

PM 07:00

적당한 위치에 있던 바위 위에 자리를 잡고 앉은 스텔라는 곧 어두워지는 하늘을 바라봤다.

한 30분쯤 기다리니, 바다 위로 넘어가는 붉은 태양이 하늘을 핑크빛으로 물들이기 시작했고, 붉은 노을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으며,


그녀가 제주에 와서 여러 해변에서 노을을 봤고, 어제도 김녕해수욕장에서 봤지만, 함덕해수욕장에서의 노을은 또 다른 벅차오르는 감정이 느껴졌다.

핑크빛 하늘은 점점 주황빛으로 변하면서 붉게 물들기 시작하더니, 금방 하늘은 깜깜해졌다.

중간에 죽을 먹긴 했지만, 오래 걸어서 그런지, 출출해진 그녀가 주린 배를 달래기 위해 차량은 주차장에 그대로 주차해두고는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아롱사태 전골 맛집인 [ㄷ삭]으로 향했다.

전골을 먹기에는 혼자라서 부담스러웠던 그녀는 소고기 양지, 아롱사태, 스지가 한 접시에 나오는 모둠 수육, 육회를 주문했고, 든든하게 배를 채우는 것만으로도


피로가 풀리는 듯했다.

식사를 마치고 가게를 나와, 다시 함덕해수욕장 주차장으로 돌아갔고, 이제는 펜션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6시간을 걸었어도 고도가 높은 길은 아니었기에 1시간 운전까지는 가뿐했다.

PM 09:30

그렇게 1시간을 달리자, 펜션이 보이기 시작했고, 펜션이 그녀의 집은 아니었지만, 2주 넘게 지내고 있다고 집에 돌아온 느낌이 들었으며,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거실 소파에 몸을 던지듯 누워버렸다.

가슴 깊은 곳에서 뿌듯함과 만족감이 차올랐고, 이제 한라산 등반만 남았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금세 잠이 들었고, 잠깐 깨서 시계를 보니 벌써 11시를 가리키고


있었으며, 마스크팩도 하고 반신욕까지 한 후에 다시 잠자리에 들기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욕실로 들어온 그녀는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고 입욕제를 풀며 반신욕 준비를 했고, 물이 차오르는 동안, 오늘 찍은 숲길, 해변과 노을 사진들을 보며 하루를


회상했으며, 사진 속에는 세 개의 코스를 걸으며 느꼈던 감정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마스크팩을 하고는 물이 다 차오른 욕조에 들어가,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자, 긴장이 풀리며 노곤함이 밀려 왔고, 조금 전, 씻으면서 달아났던 졸음이 반신욕을


하면서 꾸벅꾸벅 졸 정도로 잠이 와서 평소보다 더 오래 반신욕을 하게 되었다.

물속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이 그녀의 몸을 부드럽게 감싸주었다.

작년까지도 불면증과 우울증 약을 먹으며, 반신욕으로 피로를 풀어도 잠을 못 자고, 오히려 반신욕을 하다가 졸음이 왔다가도 깨곤 해서 잠이 들기까지 한참이


걸리곤 했지만, 지금은 씻으면서 달아난 졸음도 반신욕을 하고 나면 근육들이 이완되면서 노곤해져, 거의 눈도 뜨지 못한 채로 더듬거리며 침대로 올라갔다.

그녀가 이불을 덮자, 몸이 사르르 녹으며 금방 잠이 쏟아졌고, 스르르 눈이 감겼다.

오늘 하루 동안 느꼈던 피곤함과 성취함, 그리고 자연 속에서의 평화로움이 뒤섞인 감정을 오래 곱씹지 못하고 내일로 미뤄두고는 금방 잠이 들었다.

이번에도 스텔라는 꿈을 꾸었지만, 평온함 속의 한라산이 보였고, 그녀의 눈앞에 한라산의 우거진 숲과 아름다운 절경이 펼쳐졌으며,


꿈속에서의 그녀는 한라산 둘레길을 1코스부터 9코스까지 다시 한번 걷고 있었다.

둘레길을 다 걷고 나자,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고, 그다음은 한라산 정상까지의 등반이었다.

한라산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은 그녀가 검색하면서 보았던 이미지 그대로였다.

올레길과 둘레길을 일부 코스만 걸었던 게 아쉬움으로 남아서 그랬는지, 한라산 등반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그랬는지,


그녀는 꿈속에서도 계속해서 끊임없이 걷고 있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