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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Apr 17. 2020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사람들

돼지족&멸치족&소수족

돼지족


평균 몸무게 100kg에 달하는 돼지족은 주로 파워 리프터다. 이들은 역도를 너무 잘해서 그런지 상대적으로 짐네스틱(체조) 계열에 취약해 보인다. 돼지들은 늘 더 잘 먹기 위해 운동한다고 한다. 돼지로 태어나 종족 유지와 번영을 위해 이들 나름의 운동 기준이 있다.


기준 1. 고중량은 유산소와 똑같지 그러니 더 먹어도 됨.

기준 2. 저중량 고반복은 무산소지. 산소가 없으면 안 되니 그냥 중량 더 올려서 조금만 하자


나는 이런 돼지족이 참 인간미 있다.


멸치족


멸치족은 먹어도 살이 잘 찌지 않는 체질을 가지고 있다. 모든 요리에 베이스로 쓰이는 멸치처럼 늘 기본에 충실하다. 주특기는 짐네스틱이며 숨 찬 운동을 잘하는데 사실 이건 피나는 노력 끝에 이뤄낸 결과물이다. 물리학의 아버지 뉴턴이 말했던 것처럼


F=MA(힘이란 질량을 가진 물체를 가속하는데 필요한 것)


강해지기(F) 위해서 질량(M)은 필수 불가결한데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이들에겐 중량이 느는데 시간이 좀 오래 걸린다. 대신 질량(M)이 작을수록 속도 변화(A)가 용이해 고반복 유산소 운동을 잘하고 쉴 틈 없이 힘을 기르려 운동한다. 푹 우려냈을 때 그 맛이 살아나는 멸치처럼 무수히 많은 연습량이 이들을 성장시킨다.


나는 이런 멸치족을 존중하고 닮고 싶다.

 



위 두 가지 부류의 유형이 크로스핏에서 보통 찾아볼 수 있는 인간 유형이다. 그래서인지 돼지족과 멸치족을 만화로 그려서 공개된 곳에 올리고 나니 사람들이 모두 자기 얘기라며 열띤 반응을 보여주었다. 누군가는 전국의 돼지족이  만나러 쫓아온다고 했고 누군가는 자기 얘기를 그려줘서 정말로 고맙다고 했다.


"곰족이나 갈치족은 어떡하죠?"

"나는 주류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네"

"저는 복어족"


와중에 이런 의견도 하나둘 올라오기 시작했는데 댓글들을 보다 보니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그즈음 읽고 있던 책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에는 이런 말이 나왔다. 무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항상 그것들을 이원론적 세계관으로 바라본다. 서양과 동양, 인간과 자연, 남성과 여성, 부자와 빈자.... 설마 나 또한 뜻하지 않게 이분법적 논리를 구현해버린 걸까. 돼지족과 멸치족으로 나눴지만 크로스핏에서도 어느 유형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본의 아니게 누군가에겐 소외감을 불러일으킨 게 아닐까 생각하며  나는 소수족에 대한 그림을 그려야겠다 마음먹었다.  




영화 <기생충>의 오스카 수상이 연일 화제가 되고 있던 2월의 어느 날, 단톡 방에서 누가 영자신문 링크를 가져와 물었다. 어떻게 하면 소수족에 대해 잘 그려낼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던 참이었다.


"이거 봉준호 감독 비꼬는 거 아니에요?"


링크를 눌러보니 월터 초(Walter chaw)라는 아시아계 미국인 영화 비평가가 기고한 뉴욕타임스 기사였다. 그 방에 있던 영어강사님이 비꼬는 게 아니라고 아시아계 미국인에 관한 이야기라 했다.


Parasite Won, but Asian-Americans are still loosing. The victory for Bong Joon Hoe's film at the Oscars has nothing to do with representation of people like me.

기생충이 상을 받았지만 아시아계 미국인의 입지는 여전히 좁습니다. 봉준호 감독 작품이 오스카에서 승리를 거머쥐었지만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대변하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그동안 백인들의 축제라고 불리던 오스카에서 기생충이 노미네이트 된 건 전 세계에 뜨거운 감자로 자리매김했다. 백인 심적이고 인종차별적이라 비판받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 영화가 4관왕이라니 정말이지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입니다."


마찬가지 이유로 이 날 봉준호 감독이 했던 수상소감 또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인종이 어떻든 태어난 곳이 어디든 콘텐츠만 좋다면 기생충처럼 주목받을 수 있고 세계 무대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의 마음에는 알 수 없는 희망을 싹 틔웠을 테다. 바로 이때 월터 초(Walter chaw)는 축제 분위기를 자제하라고 일침을 가했다.

대만계 이민 2세 월터 초(Walter chaw)는 어려서부터 민족주의로 인해 차별을 받아왔다.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대만에서도 외부인으로 인식됐다. 자신과 같은 아시아계 미국인의 이야기를 다룬 <The Farewell> 영화 또한 이번 오스카에서 아무 주목도 받지 못했다. 토종 한국인인 내가 어떻게 그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다만 아시아인도 아니고 미국인도 아닌, 문화적으로 아주 애매한 위치에 있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소수의 입장에 대해서 다시 한번 고민하고 생각해보게 됐다. 여기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고 우리들의 입장도 알아봐 주라고  글로 당당하게 외치는 그의 말은 곧 소수족에 대한 그림으로 이어졌다.


나는 그림 전공자도 아니고 작업량이 많으면 어깨가 아파서 웹툰을 그릴 때 컬러는 웬만하면 사용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이다. 지금껏 내 그림은 모두 흰색과 검은색으로 된 밑그림 형태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못다 한 소수족에 대해 그릴 땐 최대한 색을 많이 넣었다. 이왕이면 예쁘게 그들만의 특징, 색깔을 모두 다 담아내고 싶었다. 말족, 복어족, 갈치족, 멸치족, 돼지족.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한 곳에 담아내자 어쩌면 이렇게 다들 개성들이 강한지 보다 보면 겹쳐지는 얼굴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다시 한번, 운동에서도 일상에서도 다양성을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나 다양한 운동이 섞여있는 크로스핏에서는 더욱이 그러했다.



흰색이 아름다운 이유는 어쩌면 그 안에 수많은 색을 그려낼 수 있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검은색이 아름다운 이유는 수많은 색을 섞어야 비로소 검은색이 나올 수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고. 색깔에 대한 신념은 그림을 그리고 난 후에 더 확신하게 됐다.  다채로운 색깔처럼 우리가 속한 사회는 여러 사람이 어우러져서 만들어지는 공간이다. 내가 운동하고 있는 단체 공간도, 나아가 국가도, 세계도. 그러니 사람이 모두 다 다르다는 걸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것만이 조금 더 재미있고 아름다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멀리 갈 것도 없이 크로스핏 박스에서만 봐도 이들 한 명 한 명이 없다고 생각하면 너무나 하전하고 재미가 없었다. 흰색과 검은색으로만 이루어진 세상은 그렇게 금방이라도 질려버릴 만큼 단조롭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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