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으로, 다시 흙으로
이 작품은 고고학적, 역사적 사실과 기록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과 장소, 사건은 모두 허구이며, 실제와는 무관합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네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얻으리니"
— 『창세기』 3:19, 히브리 성서
서울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고속도로에 차가 많지 않았다. 일요일 저녁, 사람들은 이미 집에 있을 시간이었다. 현진은 라디오를 껐다. 침묵이 필요했다. 엔진의 낮은 울림과 바람이 차체를 스치는 소리. 그 단조로운 진동이 의식을 가라앉혔다. 마치 독경의 리듬처럼.
창밖으로 들판이 지나갔다. 겨울 들판은 황량했다. 수확이 끝난 논에는 볏짚만 남아 있었고, 밭고랑은 얼어붙어 있었다. 하지만 그 밑에서는 이미 봄을 준비하고 있다. 씨앗들이 어둠 속에서 기다리고 있다. 때를 기다리는 인내였다.
톨게이트를 지났다. 요금을 내고 다시 속도를 냈다. 한강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도시의 불빛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광공해라고 하던가. 별이 보이지 않는 하늘. 고향 마을의 별이 총총하던 밤하늘과는 달랐다.
한강다리를 건너며 물결을 봤다. 검은 물이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불빛을 반사하며 반짝였다. 저 물도 바다로 가고,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다시 돌아올 것이다. 순환이었다. 모든 것이 순환이었다.
집에 도착한 것은 밤 아홉 시였다. 아파트 주차장은 조용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거울에 비친 자신을 봤다. 피곤한 얼굴이었다. 검은 정장에 흙이 묻어 있었다. 손으로 털어도 자국이 남았다. 흙은 그렇게 집요했다. 한번 닿으면 쉽게 떠나지 않는. 죽음처럼, 기억처럼.
집에 들어와 옷을 갈아입었다. 샤워를 하며 뜨거운 물이 몸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 피로가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마음속 무언가는 씻겨지지 않았다. 고인의 마지막 모습, 흙 속으로 사라지는 관, 상주의 울음소리.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며칠 전 읽던 책이 펼쳐져 있었다. 『길가메시 서사시』 번역본이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었다. 펼쳐진 페이지에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그는 모든 것을 보았다 지혜의 근원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먼 길을 여행하고 지쳐서 돌아왔다 돌판에 모든 고난을 새겼다"
돌판에 새긴 고난. 그것이 인류 최초의 서사시였다. 영생을 찾아 헤맨 왕의 이야기. 결국 그도 죽어 흙으로 돌아간다. 모든 왕들이 그랬듯이.
창밖을 봤다. 맞은편 아파트의 창문들이 보였다. 네모난 빛의 조각들이었다. 어떤 집은 TV를 보고 있었고, 어떤 집은 이미 잠들었다. 각자의 일요일 밤이었다. 내일이면 모두 일어나 월요일을 시작할 것이다.
전화가 울렸다. 이수진이었다.
「잘 도착했어요?」
「네.」
침묵. 전화기 너머 TV 소리가 희미했다.
「시골 장례는... 다르죠?」
「온 마을이 함께였어요. 흙을 붓고.」
「우리 할머니 때도 그랬어요.」
또 침묵. 공유된 기억이 전화선을 타고 흘렀다.
간단한 안부 대화 후 전화를 끊고 현진은 부엌으로 갔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셨다. 차가운 물이 목을 타고 내려갔다. 싱크대에 기대어 서서 생각했다. 오늘 하루가 꿈처럼 느껴졌다. 새벽의 출발, 빈소, 상여 행렬, 봉분, 그리고 돌아온 집.
다시 거실로 돌아와 책을 들었다.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대홍수 이야기였다.
"신들이 인간을 멸하기로 했다 인간이 너무 시끄러워서 엔릴이 잠을 잘 수 없었다"
시끄러워서 멸망시켰다는 이야기. 연구실에서 이 부분을 놓고 토론했던 기억이 났다. 박재원은 인구 폭발의 은유라고 했고, 이수진은 노동자들의 반란이 아니었을까 추측했었다. 로시는 그저 신화적 과장이라고 웃었고.
시계를 봤다. 열 시가 넘었다. 내일은 아침 일찍 연구실에 가야 했다. 월요일 회의가 있었다. 책을 덮고 일어섰다.
침실로 가서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올려다봤다. 어둠 속에서 형광등의 잔상이 떠다녔다. 눈을 감았다. 오늘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상여 소리, 곡소리, 스님의 독경. 그리고 흙. 붉은 흙, 검은 흙, 젖은 흙.
그 흙을 만지던 감촉이 아직 손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차갑고 묵직한 무게. 삽을 들 때마다 팔에 전해지던 진동. 흙이 관 위로 떨어질 때 나던 둔탁한 소리.
손끝에 남은 흙의 감촉이—다른 감촉을 불러왔다.
며칠 전, 점토판 복제품의 부드러운 표면. 스타일러스로 쐐기문자를 새기던 순간. 푹, 푹. 누를 때마다 시간이 새겨지는 듯했다.
흙과 점토. 같은 것이면서 다른 것. 하나는 죽음을 덮고, 하나는 기록을 담는다. 하지만 결국 둘 다 흙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점토판도 부서져 다시 흙이 될 것이다.
잠이 오려는 순간, 멀리서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도시는 잠들지 않았다. 어디선가 누군가는 여전히 일하고 있다. 병원의 의사, 경찰, 소방관, 편의점 직원. 밤에도 계속되는 노동.
그들도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그전까지는 계속 일할 것이다. 그것이 삶이니까.
현진은 몸을 뒤척였다. 베개를 다시 베고 편안한 자세를 찾았다. 눈을 감으니 고향 마을의 풍경이 떠올랐다. 안개 낀 새벽, 논둑, 산길, 소나무. 그리고 그 아래 잠든 고인.
평생 일하다 이제야 쉬는.
***
새벽녘, 현진은 잠깐 깨어났다. 동쪽 하늘이 희미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커튼 사이로 새어 들어온 빛이 천장에 흐릿한 선을 그렸다. 곧 해가 뜬다. 그리고 사람들이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다시 눈을 감았다. 아직은 잘 시간이었다. 알람이 울릴 때까지 두 시간 남았다.
잠의 경계에서 봉분이 떠올랐다. 아니, 봉분이 현진을 찾아왔다. 초록 잔디 위 노란 민들레. 바람에 날리는 하얀 씨앗들. 그것들도 일하고 있었다. 생명을 퍼뜨리는 고요한 노동.
그것도 일종의 노동인지 몰랐다. 자연의 노동. 끊임없이 생명을 이어가는.
밖에서는 참새들이 짹짹거리기 시작했다. 도시의 아침이 시작되고 있었다. 어디선가 빵 굽는 냄새가 스며들었다. 새벽의 노동. 도시가 깨어나기 전, 누군가는 이미 반죽을 치대고 있었다. 오늘을 먹일 빵을 위해.
현진은 완전히 잠들었다. 깊고 꿈 없는 잠이었다.
그 사이 지구는 계속 돌았다. 동쪽에서 해가 떠오르고, 서쪽에서는 아직 어둠이 계속되고 있었다. 어디선가는 씨를 뿌리고, 어디선가는 거두고 있다. 어디선가는 아이가 태어나고, 어디선가는 누군가 숨을 거두고 있을 것이다.
시작과 끝이 맞물려 돌아가는 세상이었다.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그 오래된 문장이 지구의 자전처럼 반복된다.
어디선가는 씨를 뿌리는 손.
어디선가는 흙을 붓는 손.
시작과 끝이 맞물려 도는 이 행성 위에서 우리는 계속 일한다.
신들이 쉬기 위해 우리를 만들었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아직 답은 없다.
다만 내일도 해는 뜰 것이다.
알람이 울릴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