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조각의 발견
휴식이 끝나고 상여가 다시 들려 올려졌다. 이제 마지막 구간이었다. 선산까지는 십 분 남짓. 하지만 가장 가파른 길이었다. 상여꾼들이 구령을 맞춰 걸음을 옮겼다. "하나, 둘. 하나, 둘." 군대 행군 같은 리듬이었다. 무거운 짐을 함께 나르는 자들의 연대였다.
선산 입구에 도착했다. 소나무들이 울창했다. 수백 년은 됐을 법한 큰 소나무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그 아래는 어두웠다. 솔잎이 두껍게 쌓여 있어서 발걸음 소리가 죽었다. 부드러운 침묵이 공간을 채웠다. 바람이 솔잎 사이를 지날 때마다 쏴아- 하는 소리가 났다. 바닷소리 같기도 하고, 먼 곳의 속삭임 같기도 한 소리였다.
묘지는 이미 파여 있었다. 직사각형의 구멍이 땅에 뚫려 있었다. 깊이는 2미터쯤 될까. 그 안은 어두워서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파낸 흙이 옆에 산처럼 쌓여 있었다. 붉은색과 검은색이 섞인 흙이었다. 표토와 심토가 뒤섞여 있었다. 층층이 다른 시간을 품고 있는 지층이었다.
지관이 나침반을 꺼내 방향을 확인했다.
- 정북향입니다. 자리가 좋습니다.
풍수를 보는 것이었다. 죽은 자의 안식을 위해 땅의 기운을 읽는 오래된 지혜였다. 나침반 바늘이 미세하게 떨렸다가 멈췄다. 그 떨림이 마치 땅의 맥박 같았다.
하관이 시작됐다. 굵은 밧줄을 관 아래로 통과시켰다. 여섯 명이 밧줄을 잡고 천천히 관을 내렸다. 아주 조심스럽게, 흔들리지 않도록. "천천히, 천천히." 누군가 낮게 지시했다. 관이 땅속으로 내려갔다. 천천히, 거스를 수 없는 중력의 인도를 받으며. 빛의 세계에서 어둠의 세계로. 산 자와 죽은 자 사이, 그 경계를 넘어가는 마지막 항해.
관이 무덤 바닥에 안착했다. 둔탁한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땅을 통해 전해져 왔다. 진동이 발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작은 지진 같은 떨림이었다. 모두가 그 진동을 느꼈는지 잠시 멈춰 섰다. 침묵이 흘렀다. 솔잎 스치는 소리만 들렸다.
상주가 첫 삽을 떴다. 붉은 흙이 삽에 실렸다. 무거워 보였다. 물기를 머금은 겨울 흙이었다. 삽을 기울여 흙을 부었다. 흙이 관 위로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둔탁하고 묵직한 소리. 그 소리에 모두가 움찔했다. 죽음의 최종성을 확인하는 소리였다.
가족들이 차례로 삽을 들었다. 큰아들, 둘째 아들, 딸들, 손자들.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방식으로 흙을 부었다. 누군가는 많이, 누군가는 조금. 아이들도 작은 손으로 흙을 집어 뿌렸다. 그들에게는 흙장난 같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도 의례의 일부였다. 죽음을 배우는 방식이었다.
현진의 차례가 왔다. 삽을 들어 흙을 떴다. 무거웠다.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다. 팔에 힘이 들어갔다. 삽을 기울여 흙을 부었다. 흙이 관 위로 떨어지며 작은 소리를 냈다. 사각사각. 모래시계 소리 같기도 하고, 키보드 소리 같기도 한.
사각사각. 흙이 떨어지는 소리가—어느새 다른 떨어짐과 겹쳐졌다.
사흘 전 오후. 연구실 창으로 떨어지던 겨울빛.
- 우르크 시대의 패턴이 흥미로워요.
박재원이 차트를 가리켰다.
- 기원전 4천 년. 도시의 갑작스러운 출현.
이수진이 자료를 넘겼다.
- 문자도 그때 시작되죠.
- 그런데 최초의 문자가 뭔지 알아요?
박재원이 멈췄다.
- 시가 아니라 장부였어요.
침묵. 낭만이 깨지는 소리.
- 보리 몇 포대, 양 몇 마리...
현진이 데이터를 확인했다.
- 85%가 경제 문서네요.
- 대부분 노동 관리.
이수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 누가 얼마나 일했고, 얼마를 받았는지.
박재원이 다음 슬라이드를 넘겼다.
- 그리고 이 시기부터 계급이 분화됩니다. 신관, 관료, 장인, 농민, 노예.
- 분업의 시작이네요.
로시가 말했다.
- 그런데 왜 갑자기?
이수진이 물었다.
- 수천 년 동안 평등한 부족사회였는데, 왜 갑자기 계급사회가 된 걸까요?
침묵이 흘렀다. 아무도 답하지 못했다.
박재원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 잉여 생산물 때문이라는 게 일반적인 설명이지만...
-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죠.
이수진이 고개를 저었다.
- 잉여가 있다고 자동으로 계급이 생기는 건 아니니까.
현진이 화면을 보며 말했다.
- 데이터를 보면, 이 시기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해요. 우르크만 해도 5만 명이 넘었대요.
- 5만 명을 어떻게 조직했을까?
로시가 물었다.
- 노동을 통해서죠.
박재원이 답했다.
- 대규모 관개 사업, 신전 건설, 성벽 축조. 이런 프로젝트가 사람들을 조직화했을 거예요.
이수진이 펜을 돌리며 말했다.
- 그럼 노동이 문명을 만든 건가요? 아니면 문명이 노동을 만든 건가요?
또 침묵이 흘렀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같은 질문이었다.
현진이 새로운 파일을 열었다.
- 길가메시 서사시 11번째 토판 데이터예요. 대홍수 이야기.
쐐기문자가 화면에 떠올랐다.
- 신들이 인간을 멸하기로 했다. 인간의 소음이 하늘에 닿았다. 엔릴의 잠을 깨웠다
시끄러움. 그것은 무엇의 은유였을까.
- 시끄러워서 멸망시켰다고?
로시가 의아해했다.
박재원이 설명했다.
- 여기서 '시끄럽다'는 건 인구 증가를 의미한다는 해석도 있어요. 인간이 너무 많아졌다는.
- 아니면 반란?
이수진이 제안했다.
- 노동에 지친 인간들이 반란을 일으킨 건 아닐까요? 아트라하시스에서 신들이 그랬듯이.
현진이 다른 데이터를 보여줬다.
- 실제로 우르 제3왕조 말기에 대규모 반란 기록이 있어요. '노동자들이 도구를 버리고 도시를 떠났다'고.
- 노동 파업이네요.
박재원이 말했다.
- 4천 년 전에도.
무덤으로 돌아온 현재. 봉분이 차츰 만들어지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도 합류해서 함께 흙을 부었다. 여러 손이 함께 움직이니 일이 빨랐다. 관이 완전히 흙에 덮였다. 이제 형태가 보이지 않았다. 오직 흙만 있을 뿐이었다.
- 옛날엔...
노인이 말을 멈췄다.
다른 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품앗이의 시대. 함께 짊어지던 시대.
- 이제는 다 흩어졌지.
하지만 여전히, 죽음 앞에서는 모인다.
흙을 다지기 시작했다. 발로 밟고, 삽으로 두드렸다. 탁, 탁. 그 소리가 고대의 리듬을 되살렸다. 지구라트를 쌓던 손들, 피라미드를 세우던 손들. 노동은 늘 이렇게 반복되고 누적되어 무언가를 만든다. 무덤이든, 신전이든.
봉분이 완성되었다. 둥근언덕 모양이었다. 작은 산처럼 솟아 있었다. 그 위에 떼를 입혔다. 초록색 잔디가 겨울임에도 생기를 띠고 있었다. 봄이 오면 뿌리를 내리고 자랄 것이다.
제사상이 차려졌다. 과일, 포, 술. 간소한 상이었다. 향이 피워졌다. 연기가 솔나무 사이로 올라갔다. 하늘로, 더 높이. 바람이 불어 연기를 흩뜨렸다. 그 연기가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났다.
상주가 술잔을 들어 올렸다. 맑은 막걸리가 잔에 담겨 있었다. 그가 무릎을 꿇고 술을 봉분 앞에 부었다. 술이 흙에 스며들었다. 알코올 냄새가 살짝 퍼졌다가 사라졌다.
축문을 읽기 시작했다. 한문으로 된 긴 문장이었다. 현진은 뜻을 다 알아듣지 못했지만, 억양에서 애도가 느껴졌다. 낮고 떨리는 목소리였다.
- ...평생 근면하게 사셨고...
근면. 그 한자가 공기 중에 떠올랐다가 스며들었다. 勤勉. 부지런할 근, 힘쓸 면. 평생을 압축한 두 글자. 해뜨기 전 호미를 들고, 해 진 뒤 호미를 놓던 손. 그 손이 이제 흙 속에서 쉰다.
축문이 끝나고 모두가 절을 했다. 두 번 반. 산 자가 죽은 자에게 올리는 마지막 인사였다. 현진도 무릎을 꿇고 절했다. 이마가 땅에 닿았다. 차가운 흙의 감촉이 전해졌다. 솔잎 냄새와 흙냄새가 뒤섞여 코끝을 자극했다.
절을 마치고 일어서자, 다리가 저렸다. 발을 동동 구르며 감각을 되살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들도 하나둘 일어서고 있었다. 의례가 끝났다. 이제 하산할 시간이었다.
- 고생 많으셨습니다.
상주가 사람들에게 인사했다. 목소리가 쉬어 있었다. 이틀 동안 제대로 쉬지 못한 탓이었다.
사람들이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올 때보다 빨랐다. 발걸음이 가벼워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내리막이라 빨랐을 뿐. 각자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무언가가 남아 있었다.
현진은 맨 뒤에서 천천히 걸었다. 발밑의 솔잎이 바스락거렸다. 그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앞서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이들도 언젠가는 여기 묻힐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자손이 이렇게 흙을 부을 것이다. 끝없는 순환이었다.
마을로 내려오는 길에 밭들이 보였다. 겨울이라 텅 비어 있었지만, 봄이 오면 다시 씨를 뿌릴 것이다. 그리고 여름에는 김을 매고, 가을에는 거둘 것이다. 그것이 농사의 순환이었다. 고인도 평생 그 순환을 살았다.
회관에 도착했다. 마당에는 상여가 분해되고 있었다. 장식들을 떼어내고, 나무 골조를 해체했다. 다음 장례 때까지 창고에 보관될 것이다. 그것도 일종의 순환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따뜻한 국과 전, 나물들이 상에 올라 있었다. 사람들이 둘러앉아 먹기 시작했다. 침묵 속에서 수저 소리만 들렸다.
- 고생하셨습니다.
누군가 상주에게 말했다. 상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필요 없는 시간이었다.
현진은 국을 한 숟가락 떴다. 뜨거운 국물이 목을 타고 내려갔다. 몸이 따뜻해졌다. 창밖을 보니 해가 서산으로 기울고 있었다. 붉은 노을이 하늘을 물들였다. 하루가 끝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끝이면서 동시에 시작이었다. 고인은 흙으로 돌아갔고, 그 흙은 다시 무언가를 키울 것이다. 내일 아침, 상주는 호미를 들 것이다. 아버지가 그랬듯이. 노동은 멈추지 않는다. 신들이 인간에게 부과한 그 오래된 멍에. 아니, 어쩌면 인간이 스스로 선택한 운명. 창밖의 노을이 붉었다. 내일도 해는 뜰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