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비너스의 흉터 1부「균열」- 1

1-(2)

by jeromeNa
이 작품은 고고학적, 역사적 사실과 기록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과 장소, 기업, 사건은 모두 허구이며, 실제와는 무관합니다.


차는 강윤서가 직접 운전했다. 검은색 볼보 XC90. 현진은 뒷좌석에, 이수진은 조수석에 앉았다. 박재원은 준비할게 있다며, 자신의 차로 따라오기로 했다.


출발하기 전, 강윤서가 조수석 수납함에서 태블릿을 꺼냈다. 화면을 켜고 이메일을 열었다.


- 김 차장님이 보낸 자료 확인하고 출발할게요.


손가락으로 화면을 스크롤했다. PDF 파일. 보험 계약서. 페이지를 넘기며 읽었다. 가입 일자, 보험 금액, 면책 조항. 2분 정도 읽더니 태블릿을 이수진에게 건넸다.


- 더 보시면서 가세요. 특이한 조항 있으면 말씀해 주시고.

- 네.


이수진이 태블릿을 받아 무릎 위에 올렸다.

강윤서가 시동을 걸었다. 북촌을 벗어나 강남으로 향했다. 월요일 아침의 도로는 혼잡했다. 출근 차량들이 줄지어 있었다.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강윤서가 말했다.


- 보험사 담당자가 현장에서 만나자고 했어요. 김성훈 차장. 제로화재 예술품 파트 베테랑이에요.


이수진이 태블릿 화면을 보다가 물었다.


- 까다로운 분인가요?

- 정확한 분이죠.


강윤서의 손이 핸들을 가볍게 두드렸다.


톡, 톡.


- 애매한 결론을 싫어해요. 흑백 논리. 중간은 없어요.


창밖으로 강남의 빌딩들이 지나갔다.


- 정미선 원장, 들어본 적 있어요?


강윤서가 물었다.

이수진이 태블릿을 내려놓고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했다. 화면 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췄다.


- 유명하네요. SNS 팔로워 50만. 강남 톱클래스 성형외과 원장. 예술적 성형으로 유명하대요.

- 예술적 성형?

- 단순히 예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이수진이 화면을 스크롤했다.


- 고전 미술의 비율을 적용한다고 해요. 황금비율, 신고전주의 조각의 얼굴 비례 같은 거요.

- 비너스 두상을 왜 샀을까요?


현진이 중얼거렸다. 조용한 목소리였지만 차 안에서는 들렸다.

강윤서가 백미러로 현진을 봤다. 그들의 눈이 거울 속에서 마주쳤다.


- 보험 계약서에 나와 있던데, 작년 10월에 가입했어요. 경매 낙찰 직후. 클리닉 로비에 전시할 목적이었다고요.

- 영감의 원천이었을 거예요.


이수진이 창밖을 보며 말했다.


- 예술적 성형을 한다면, 아프로디테 조각이 최고의 레퍼런스잖아요.


차가 강남대로로 접어들었다. 고층 빌딩들이 하늘을 가렸다. 아침 햇살이 유리 외벽에 반사되어 눈부셨다.


- 도착했습니다.


강윤서가 말했다. 시계를 봤다. 오전 아홉 시였다.


***


아프로디테 클리닉은 청담동 한복판, 12층 건물 전체를 쓰고 있었다. 외벽은 흰색 세라믹 타일로 마감되어 있었다. 그리스 신전을 연상시키는 기둥 형태의 장식이 입구를 장식했다. 과장되지 않았지만 분명한 메시지가 있었다.


{이곳은 예술이다.}


차에서 내려 건물을 올려다봤다. 유리창들이 하늘을 반사하고 있었다. 구름이 유리에 비쳐 움직였다.


입구에는 흰색의 파란 줄무늬 경찰 차량이 한 대 서 있었다. 노란 테이프는 없었다. 현장 봉쇄가 풀렸다는 뜻이었다.

로비로 들어갔다. 대리석 바닥이 발소리를 반사시켰다. 딱, 딱, 딱. 세 사람의 리듬이 달랐다.


정장 차림의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사십 대 중반쯤. 회색 정장에 감색 넥타이. 안경을 쓰고 서류 가방을 들고 있었다.


- 강윤서 대표님.


그가 악수를 청했다.


- 반갑습니다.


강윤서가 팀원들을 소개했다.


- 이수진 팀장, 보존과학 전문가입니다.


악수.


- 반갑습니다.


- 나현진 연구원. 디지털 분석 담당입니다.


악수.


김성훈의 손이 단단하고 건조했다.


- 상황 설명 드리겠습니다.


김성훈이 서류 가방에서 파일을 꺼내고, 검은색 클리어 파일을 펼쳤다.


- 피보험자 정미선 원장. 토요일 밤 사망. 어제 일요일 오전 9시경 클리닉 직원이 출근해서 발견했습니다.


손가락으로 문서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 경찰 1차 소견은 사고사. 과다 마취로 추정. 부검 결과는 오늘 오후 나올 예정입니다.

- 보험에서 어떤 경우에 보상되나요?


강윤서가 물었다.


- 보험 약관상 화재, 도난, 천재지변, 사고로 인한 파손은 전액 보상됩니다. 다만 고의 훼손은 보상에서 제외되고요.

- 고의는 어떻게 판단하나요?

- 피보험자나 제3자가 일부러 파괴한 경우입니다. 입증은 저희가 해야 합니다.

- 현장 접근 권한은요?

- 경찰과 조율 완료했습니다. 예술품 부분은 독립 조사 가능합니다. 단, 오늘 오전 중으로 마쳐주셔야 해요. 오후 1시부터 유족 측 변호사와 회계사가 와서 재산 목록 작성에 들어간다고 해서요.

- 알겠습니다.


강윤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김성훈이 사고 경위를 설명하는 사이 박재원 연구소장이 도착했다.


- 올라가죠.


[계속]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