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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너스의 흉터 1부「균열」- 1

1-(3)

by jeromeNa
이 작품은 고고학적, 역사적 사실과 기록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과 장소, 기업, 사건은 모두 허구이며, 실제와는 무관합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9층으로 올라갔다. VIP 수술실이 있는 층. 엘리베이터 안은 조용했다. 천장 스피커에서 잔잔한 클래식이 흘렀다. 디스플레이의 숫자가 올라갔다.


5.

7.

9.


문이 열리자 복도가 나왔다. 흰색이 지배적이었다. 바닥, 벽, 천장. 형광등이 천장 전체에 박혀 있었다. 그림자가 없었다.


병원 특유의 소독약 냄새가 희미하게 풍겼다. 알코올과 베타딘. 하지만 그 아래 다른 냄새도 있었다. 무거운, 정체된 공기의 냄새.


복도를 걸었다. 구두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탁, 탁, 탁.


복도 끝 방으로 안내되었다. 문 옆에 '특별 회복실'이라는 표지가 붙어 있었다. 검은 글씨에 흰 바탕.

김성훈이 문 손잡이를 잡았다. 스테인리스 손잡이. 천천히 돌렸다. 찰칵. 잠금이 풀리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 여기입니다.


문이 열렸다.


방은 넓었다. 한쪽은 수술 공간, 다른 한쪽은 회복실. 수술대, 조명, 의료 장비들. 그리고 그 중간, 남향 창가에—


대형 유리 진열장이 있었다.

유리문이 열려 있었다. 그 안에 대리석 받침대가 있었고, 받침대 위에---


비너스 두상이 있었다.


이수진이 작은 소리를 냈다.


- 오.


박재원이 가장 먼저 진열장으로 다가갔다. 빠른 걸음.

두상은 약간 앞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30도쯤. 그리고 그 얼굴에---


균열이 있었다.


이마에서 시작해 왼쪽 눈을 가로질러 뺨까지 이어지는 금. 깊지는 않았다. 표면에서 2, 3밀리미터 정도 파인 듯 보였다. 하지만 선명했다. 너무나 선명했다. 마치 누군가 자로 그은 것처럼.


현진은 천천히 다가갔다. 무릎을 굽혀 눈높이를 두상과 맞췄다. 균열을 자세히 봤다. 선이 깔끔했다. 가장자리가 날카로웠다. 낙하나 충격으로 생긴 균열이 아니었다.


시선이 진열장 바닥으로 내려갔다. 유리 파편은 없었다. 유리문이 깨진 게 아니라 열린 것. 대신 대리석 가루가 조금 있었다. 미세한 흰 가루. 손가락 끝만 한 양이었다.


- 경찰은 조각을 조사했나요?


강윤서가 물었다.


- 사진 촬영만 했습니다.


김성훈이 답했다.


- 혈흔이나 지문이 없어서 사건과 무관하다고 판단했대요. 저희 요청으로 현장 보존해 뒀습니다.


이수진이 이미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고 있었다. 캐논 5D Mark IV. 렌즈 캡을 돌려 열었다. 찰칵. 셔터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전체 샷. 클로즈업. 측면. 후면. 다양한 각도. 이수진의 움직임이 조용했다.


현진은 태블릿을 켜고 현장 스케치를 시작했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터치했다. 방 배치를 그렸다. 진열장 위치, 두상의 각도. 수술대와의 거리. 창문의 위치.


박재원이 두상에 아주 가까이 다가갔다.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 헬레니즘 후기 양식이 맞습니다.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 기원전 2세기에서 1세기 사이. 파로스 대리석으로 보이는데…


그가 가방에서 돋보기를 꺼냈다. 10 배율 확대경. 균열이 아닌 대리석 표면을 자세히 봤다.


- 풍화 패턴이 자연스럽네요. 진품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 감정가는?


김성훈이 메모장을 꺼내 펜을 들었다.


- 보존 상태가 좋았다면 50억 도 가능했을 겁니다.


박재원이 균열을 가리켰다. 손가락이 떨리지 않았다.


- 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복원 가능성에 따라 달라지겠죠.


이수진이 진열장 옆에 쪼그려 앉았다. 무릎을 꿇고 바닥을 자세히 관찰했다. 대리석 가루를 손가락으로 살짝 만졌다. 그리고 코에 가까이 가져갔다.


- 샘플 채취해도 될까요?

- 네, 괜찮습니다.


이수진이 가방에서 작은 지퍼백을 꺼냈다. 플라스틱 집게로 대리석 가루를 조심스럽게 집어 봉투에 담았다. 유성 펜으로 봉투에 적었다. '샘플 001. 진열장 바닥. 09:23.'


현진도 두상에 가까이 다가갔다. 무릎을 꿇었다. 차가운 바닥이 무릎을 통해 전해졌다. 균열을 들여다봤다.

선이 너무 깔끔했다.


태블릿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각도 측정 앱을 실행했다. 수평선을 기준으로 균열의 각도를 재었다. 화면에 숫자가 떴다.


38도.


묘하게 정확한 숫자였다. 계산기 앱을 열었다. 이마의 균열 시작점에서 눈까지의 거리를 측정했다. 화면에 가상 자를 그었다. 약 8.5센티미터.


눈에서 뺨 끝까지는?


다시 자를 그었다. 약 13.7센티미터.

그 비율을 계산했다.


13.7 ÷ 8.5 = 1.611...


손가락이 멈췄다.

황금비였다. 1.618에 극히 근접한 수치. 오차 0.4%.


천천히 일어섰다. 이수진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도 뭔가 눈치챘는지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뭔가 발견하셨나요?


김성훈이 다가왔다.

현진은 태블릿을 그에게 보여줬다. 각도, 거리, 비율. 계산식이 화면에 떠 있었다. 김성훈의 눈썹이 올라갔다.


- 황금비율?

- 균열이 정확히 황금비를 따르고 있습니다.


조용히 말했다.


- 자연적 파손이나 우발적 충격으로는 이런 패턴이 나올 수 없어요.


김성훈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한 것. 손이 메모장 위에서 멈췄다.

강윤서가 조용히 물었다.


- 확실합니까?

- 오차범위 2% 이내입니다.


다시 계산식을 확인했다.


- 우연이라고 보기엔 너무 정확해요.


방 안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황금비율을 따르는 균열. 그것은 한 가지를 의미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계산해서 그었다는 것.


박재원이 두상을 다시 봤다. 펜이 다시 돌기 시작했다. 빙글빙글.


- 도구 흔적을 확인해야겠네요.


고성능 확대경을 꺼내 균열 단면을 관찰했다. 렌즈를 통해 들여다보는 눈이 집중했다.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말했다.


- 금속 도구로 그은 흔적이 있습니다.


확대경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 아마도 조각도나 메스 같은. 힘을 일정하게 가하면서 천천히 그었어요. 한 번에.

- 메스?


이수진이 반응했다.


- 성형외과에서 쓰는?

- 가능성이 있죠.


박재원이 확대경을 내렸다.


- 날이 얇고 날카로우니까. 정밀한 작업에 적합하고.


김성훈이 재빨리 메모했다. '고의적 훼손 가능성 높음. 보험금 지급 재검토 필요.'


- 복원은 가능합니까?


김성훈이 펜을 들고 물었다.

이수진이 균열을 다시 자세히 보며 답했다.


- 표면 손상만이고 깊이가 얕아서, 기술적으로는 가능합니다.


손가락으로 균열 길이를 가늠했다.


- 하지만 비용이 최소 2억은 들 거예요. 그리고 완벽하게 원상복구는 불가능하고요. 흔적은 남습니다.

- 현재 가치는?


박재원이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펜을 멈추고.


- 원래 40억이었다면, 지금은 25억에서 30억 사이. 복원 후에는 35억 정도 회복 가능할 겁니다.


김성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메모장이 빠르게 채워졌다.


- 왼쪽 눈 부분이 없는 것 같은데요.


현진이 균열을 더 자세히 보며 말했다. 균열 한가운데, 눈 부분. 조각 파편 하나가 빠져 있었다. 작은 구멍. 지름 1센티미터 정도였다.


- 네, 조각 파편 하나가 없습니다.


김성훈이 메모를 확인했다.


- 경찰도 찾지 못했어요. 방 전체를 수색했는데.

- 누가 가져갔을까요?


이수진이 조용히 물었다. 창밖을 보며.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창밖을 따라 봤다. 강남의 빌딩들. 유리 외벽이 아침 햇살을 반사하고 있었다.

시간이 없었다.


현진은 3D 스캐너를 꺼내 두상 전체를 스캔하기 시작했다. 삼각대를 펼치고, 스캐너를 고정하고, 높이를 조절했다. 노트북과 케이블로 연결했다. 프로그램이 실행됐다. 화면에 진행 바가 나타났다.


스캐너의 레이저가 두상 표면을 훑었다. 빨간 선이 천천히 움직였다. 좌에서 우로, 위에서 아래로. 데이터가 노트북으로 전송되었다.


예상 시간 12분.

균열의 정확한 깊이, 각도, 형태.


모든 것이 숫자로 변환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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