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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고고학적, 역사적 사실과 기록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과 장소, 기업, 사건은 모두 허구이며, 실제와는 무관합니다.
수술실 쪽으로 걸어갔다. 방 한쪽에 수술 공간이 있었다. 수술대가 중앙에, 그 옆에 의료 기구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스테인리스 트레이 위에 메스, 집게, 주사기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모두 소독된 상태였다.
현진이 캐비닛을 열었다. 문이 삐걱거렸다. 소독약, 거즈, 붕대. 아래 서랍에는 서류들이 있었다.
수술 동의서, 환자 기록.
그 밑을 더 뒤졌다.
손에 차가운 금속 감촉이 닿았다. 은색 케이스의 아이패드였다.
전원을 켰다. 애플 로고. 잠금화면.
- 태블릿이 있어요.
박재원에게 보였다.
- 비밀번호?
- 모르겠어요. 김 차장님한테 물어봐야겠네요.
박재원이 복도로 나갔다. 구두 소리가 멀어졌다. 잠시 후 돌아왔다.
- 유족한테 확인하고 허락받았대요. 대부분 원장 생일이래요. 1-2-0-5.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하나, 둘, 영, 다섯. 화면이 열렸다. 홈 화면에 여러 앱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눈에 띄었다.
[3D Scan Pro]
파란색 아이콘에 얼굴 형상.
앱을 열었다. 로딩 화면이 지나가고 파일 리스트가 나타났는데, 수백 개의 파일이 날짜순으로 정렬되어 있었다.
Kim_JH_20240115.obj
Park_MS_20240122.obj
Choi_YS_20240203.obj
... (스크롤 후 최근 파일들)
Patient_T_20250112.obj
- 환자 얼굴을 3D로 스캔한 거네요.
박재원이 화면을 들여다봤다.
- 파일이 너무 많아요.
스크롤을 내렸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 연구실에서 제대로 봐야 할 것 같은데.
- 데이터 복사할 수 있어요?
- 네. 케이블로 옮기면 돼요.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USB-C 케이블을 연결했다. 아이패드와 노트북이 연결되자 신뢰 확인 창이 떴고, '신뢰'를 눌렀다. 파일 탐색기를 열어 '3D Scan Pro' 폴더를 선택하고 복사를 시작했다.
프로그레스 바가 나타났다. 0%에서 천천히 차올랐다.
1%. 2%.
- 얼마나 걸려요?
박재원이 물었다. 펜이 다시 돌기 시작했다.
- 10분 정도요.
기다리는 동안 이수진이 수술 기구들을 자세히 봤다. 스테인리스 트레이를 들여다봤다.
- 메스가 여러 개네요. 크기가 다른.
- 성형외과니까 정밀한 작업이 필요하겠죠.
박재원이 말했다.
- 그런데 이 메스…
이수진이 하나를 가리켰다. 손가락이 떨리지 않았다.
- 끝이 조금 이상해요.
가까이 가서 봤다. 메스 날 끝에 미세한 흠집이 있었다. 반짝이는 날 위에 작은 스크래치들. 단단한 것을 긁은 것처럼.
- 대리석을 긁으면 이런 흔적이 남을 수도 있어요.
이수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 사진 찍어두세요.
이수진이 카메라를 들었다. 메스를 여러 각도에서 촬영했다. 확대 사진도 찍었다.
찰칵, 찰칵.
데이터 복사가 계속됐다. 45%. 50%. 노트북 팬이 돌아가는 소리.
웅---.
- 3D 스캔 완료했어요.
박재원이 진열장 쪽에서 말했다. 스캐너의 레이저가 꺼졌다.
- 저도 거의 다 됐어요.
프로그레스 바가 89%를 넘어섰다. 90%. 그리고 100%. 복사가 완료됐다.
케이블을 분리하고 태블릿을 서랍 안 원래 위치에 돌려놓았다.
노트북에는 수백 개의 3D 모델 파일들이 저장되어 있었다.
obj, stl, ply.
강윤서가 돌아왔다. 걸음이 빨랐다.
- 민정 씨 증언 들었어요.
코트 단추를 풀며 말했다.
- 토요일 오후에 환자 재수술이 있었대요. 금요일 수술받은 환자가 얼굴에 이상이 생겼다고 해서.
- 어떤 이상이요?
박재원이 펜을 멈추고 물었다.
- 균열이래요.
강윤서가 그들을 똑바로 봤다.
- 얼굴에.
방 안이 조용해졌다.
- 환자 이름은요?
- K 씨. 이니셜만 알려줬어요. 의료정보라서요.
- 태블릿에 환자 데이터가 있어요.
노트북을 보였다.
- 방금 복사했어요. 연구실 가서 확인해 볼게요.
- 잘했어요.
강윤서가 시계를 확인했다.
- 철수해야 할 것 같아요. 유족이 곧 올 겁니다.
이수진이 마지막 사진을 몇 장 더 찍었다. 박재원이 장비를 정리했다. 확대경을 케이스에 넣고, 스캐너를 분해해 가방에 담았다.
방을 나서며 다시 한번 뒤돌아봤다.
비너스가 창가에서 서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황금비율의 균열을 얻은 채.
***
로비로 내려와 김성훈과 악수했다.
- 빠른 결론 부탁드립니다.
- 정확한 결론을 드리겠습니다.
강윤서가 답했다.
차에 탄 후 강윤서가 시동을 걸었다. 정오였다.
- 점심 먹고 연구실 가서 분석하죠.
북촌으로 돌아가는 길. 노트북을 무릎에 올려놓고 생각했다.
태블릿 안에 답이 있을 것이다. 수백 개의 얼굴, 원장의 계획, K 씨의 정체.
균열은 사고가 아니었다.
누군가 의도했다.
황금비율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