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이 작품은 고고학적, 역사적 사실과 기록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과 장소, 기업, 사건은 모두 허구이며, 실제와는 무관합니다.
점심은 북촌 한식집에서 간단히 해결했다. 된장 끓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창가 자리에 앉았다. 네 명이 좁은 테이블을 마주했다.
- 된장찌개 정식 네 개요.
강윤서가 주문했다.
잠시 후 작은 접시들이 테이블을 채웠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된장찌개. 젓가락을 들었지만 아무도 빨리 움직이지 않았다.
- 황금비율을 따르는 균열이라…
박재원이 중얼거렸다. 시금치나물을 집었다.
- 계획적이었다는 얘기죠.
- 하지만 누가?
이수진이 물었다. 국을 떠서 입김을 불었다.
- 원장 본인? 아니면 다른 누군가?
강윤서가 물컵을 들어 물을 마셨다. 컵을 내려놓는 둔탁한 소리.
- 보험사 입장에서는 '누가'보다 '왜'가 더 중요해요. 동기가 분명하면 고의성이 입증되니까.
국을 한 숟가락 떠 입에 넣었다. 뜨거웠다.
- 민정 씨 증언이 중요할 것 같아요.
이수진이 나물을 조심스럽게 집으며 말했다.
- 환자 얼굴에도 균열이 생겼다는 게... 우연일 리 없잖아요.
- 원장 태블릿을 더 자세히 봐야 해요.
목소리가 작았다.
- 3D 파일이 많았잖아요. 거기 뭔가 더 있을 거예요.
- 오후에 집중 분석하죠.
강윤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가 계속됐다. 느렸다. 젓가락이 접시를 오가는 소리, 숟가락이 그릇을 긁는 소리. 각자 다른 템포로 움직였다.
박재원이 먼저 수저를 내려놓았다. 이수진은 천천히 계속 먹었다. 작은 입으로 조금씩. 밥그릇을 비웠지만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강윤서가 계산을 했다. 밖으로 나왔다.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맞았다.
***
연구실로 돌아온 것은 오후 한 시였다.
계단을 올라갔다. 박재원이 가장 앞서 올라갔고, 발소리가 빨랐다. 두 계단씩 건너뛰는 소리가 좁은 계단실에 울렸다. 문을 여니 로시가 이미 책상에 앉아 있었다. 노트북 화면 앞에 얼굴을 가까이 댄 채였고, 의자는 뒤로 한껏 젖혀져 있었다.
발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
- 어떻게 됐어요?
의자를 앞으로 당기며 물었다. 바퀴가 나무 마루를 구르면서 낮은 소리를 냈다.
- 흥미로운 건이에요.
박재원이 코트를 벗으며 말했다. 코트를 옷걸이에 걸었는데, 동작이 빨랐다. 한 손으로 옷깃을 잡고 훌쩍 벗어던지듯 걸이에 걸었다.
- 로시가 좋아할 만한 패턴이 있어요.
- 패턴?
로시의 눈이 반짝였다. 앞으로 몸을 숙였다.
강윤서가 화이트보드 앞으로 걸어갔다. 구두 소리가 나무 마루에 울렸다. 딱, 딱, 딱. 일정한 간격. 화이트보드 앞에 서서 마커 뚜껑을 돌려 열었다. 찰칵하는 소리. 보드에 적기 시작했는데, 글씨가 또박또박했다.
사실:
비너스 두상 훼손 (균열, 38도 각도, 황금비율 1.618)
정미선 원장 사망 (토요일 밤, 일요일 아침 발견)
금속 도구 (메스?) 사용 흔적
왼쪽 눈 조각 파편 분실
토요일 오후: K씨 재수술 (얼굴 균열 증상)
마커가 보드를 긁는 소리가 조용한 연구실에 울렸다.
스윽, 스윽.
현진은 자리에 앉아 가방을 내려놓고, 노트북을 열었다.
팬이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 얼굴 균열?
로시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의자를 화이트보드 쪽으로 굴렸다.
- 네. 금요일 수술받은 환자가 토요일 아침에 얼굴에 균열 같은 게 생겼다고 해서 재수술받았대요.
강윤서가 마커를 내려놓으며 설명했다. 뚜껑을 다시 닫았다.
- 우연이 아니네요.
로시가 턱을 괴었다. 손가락이 턱을 두드렸다. 톡, 톡.
현진이 노트북 화면을 켰다. 오전에 복사해둔 태블릿 데이터를 불러왔다. 폴더를 열자 '3D Scan Pro'라는 이름의 폴더가 보였다. 클릭하니 파일 리스트가 나타났는데, 수백 개가 넘었다.
가장 최근 파일을 더블클릭했다. 로딩 중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프로그레스 바가 천천히 차올랐다.
잠시 후 화면에 3D 모델이 나타났다. 여성의 얼굴.
마우스로 드래그하자 모델을 회전시킬 수 있었다. 얼굴이 천천히 돌아갔다. 정면에서 측면으로, 다시 후면으로. 그 얼굴 위에는 빨간 선들이 그어져 있었다. 수술 계획을 표시한 선. 코의 높이, 턱선의 각도, 광대뼈의 위치를 나타내는 표시들이 정밀하게 그려져 있었다.
- 이게 뭐죠?
이수진이 뒤로 다가왔다. 발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 환자 얼굴 스캔이에요.
마우스를 움직이며 설명했다.
- 수술 전에 3D로 스캔해서 어디를 어떻게 수술할지 계획하는 거죠.
다른 파일들을 열었다. 클릭, 로딩, 화면. 모두 비슷했다. 환자 얼굴 스캔본들이었다.
파일 목록으로 돌아가 스크롤을 내렸다. 수백 개의 파일이 있었다. 대부분은 실명으로 저장되어 있었다.
Kim_JH_20240115.obj, Park_MS_20240122.obj, Lee_SY_20240203.obj...
그런데 최근 3개월 파일들의 이름이 달랐다.
Patient_K_20250110.obj
Patient_Y_20250111.obj
Patient_T_20250112.obj
...
- 최근 파일들 보세요.
로시가 화면을 가리켰다.
- Patient_K, Patient_Y, Patient_T... 이니셜로만 저장했네요. 다른 건 다 실명인데.
스크롤을 계속 내렸다. 2024년 10월 15일부터 2025년 1월 12일까지. 이니셜로만 저장된 파일이 정확히 30개였다.
- 이 30명만 특별하게 저장했어요.
같은 폴더 안에 다른 파일이 하나 더 있었다.
Reference.obj.
용량이 컸다. 더블클릭하자 로딩이 시작됐다. 프로그레스 바가 천천히 차올랐다.
10%, 30%, 50%.
기다리는 동안 하드디스크가 돌아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화면에 나타난 것은 비너스 두상이었다. 오전에 클리닉 원장실에서 본 그 조각. 하지만 완벽한 상태였다. 균열이 없었다. 파손되기 전의 모습을 담은 3D 스캔본. 해상도가 높았다. 대리석 표면의 미세한 결까지 선명하게 보였고, 텍스처가 살아 있었다.
- 레퍼런스가 비너스예요.
박재원이 화면을 보며 말했다. 다가왔다. 손에 펜을 들고. 펜이 빙글빙글 돌았다.
- 환자 얼굴을 스캔하고, 비너스와 비교해서, 어디를 수술할지….
두 개의 프로그램 창을 띄웠다. 하나에는 Patient_K_20250110.obj를, 다른 하나에는 Reference.obj를 불러왔다. 창을 나란히 배치한 뒤 비교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AI 기반 안면 분석 도구. 두 얼굴을 겹쳐서 차이를 수치화하는 프로그램. 클릭 한 번으로 분석이 시작되었다.
화면에 선들이 그어지기 시작했다. 얇은 초록색 선. 측정점들이 하나씩 찍혔다. 이마에서 시작해 눈썹, 눈, 코, 입, 턱으로 이어졌다. 수백 개의 점이 두 얼굴 위에 동시에 표시되었고, 점과 점 사이를 연결하는 선들이 복잡한 그물망을 만들어냈다.
결과가 나타났다.
코: +2.3mm (높이)
턱: -3.1mm (폭)
눈썹: +1.7mm (높이)
입술: -0.8mm (두께)
밀리미터 단위.
정밀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