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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고고학적, 역사적 사실과 기록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과 장소, 기업, 사건은 모두 허구이며, 실제와는 무관합니다.
복원 완료.
- 끝났어요.
현진이 말했다.
현진의 책상 앞으로 모두가 모였다. 강윤서가 뒤에 섰다. 박재원과 이수진이 양옆에. 로시가 의자를 끌고 와 앉았다.
현진이 결과 파일을 열었다. 먼저 21:58 입장 장면. 영상이 재생되었다. 후드를 쓴 인물이 주차장에서 클리닉 입구로 걸어가는 모습. 어제보다 훨씬 선명했다. 걸음걸이가 또렷하게 보였다. 한 걸음, 한 걸음. 체형도 명확했다. 날씬한 몸. 165센티미터 정도.
- 얼굴은요?
강윤서가 물었다.
- 후드 때문에 거의 안 보이는데...
현진이 프레임을 천천히 넘겼다. 하나씩. 후드가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하지만 클리닉 문을 열 때. 단 한순간. 고개를 살짝 올리는 동작.
0.4초.
현진이 그 프레임을 캡처했다. 확대했다. AI 보정을 실행했다. 프로그램이 돌아갔다. 픽셀들이 재배열되었다. 흐릿했던 부분이 선명해졌다.
턱선이 나타났다.
부드러운 곡선. 너무 매끄러웠다.
- 이 턱선...
이수진이 숨을 죽였다.
- 너무 완벽해요.
- 수술한 턱선이에요.
현진이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 자연스러운 턱선은 이렇게 매끄럽지 않아요. 뼈를 깎았어요.
- 환자 중 한 명이네요.
박재원이 단정적으로 말했다.
- 30명 중에.
현진은 어제 정리한 파일을 열었다.
30명의 SNS 사진들. 전신사진들을 골라냈다. 체형을 비교할 수 있는 사진들. 15장이 있었다.
체형 매칭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AI가 분석을 시작했다. 키, 어깨너비, 팔 길이, 다리 비율, 전체 실루엣. 복잡한 알고리즘이 돌아갔다.
3분이 걸렸다.
결과가 나타났다. 화면에 세 개의 이름이 떴다. 확률과 함께.
@bOOO_k (92%)
@vOOO_j (87%)
@pOOO_s (85%)
- K씨가 가장 높네요.
로시가 화면을 두드렸다.
- 내일 만나는.
- 92%면 거의 확실한데요.
박재원이 말했다.
- 하지만 다른 두 명일 수도 있어요.
현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 확률적으로.
- 맞아요.
강윤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 일단 K씨 면담에서 확인하는 수밖에.
시계를 봤다. 오후 세 시 반.
- 내일 저녁까지 시간이 있어요. 오늘은 각자 준비하죠.
강윤서가 말했다.
- 저는 질문 리스트 만들게요. 박 소장님은 비너스 신화 더 정리해 주시고. 이수진 팀장님은 샘플 분석 마무리. 로시는 30명 SNS 패턴. 현진 씨는 데이터 백업하고 시각화 작업.
각자 자리로 돌아갔다.
강윤서는 노트를 펼쳤다. 질문 리스트를 적기 시작했다. 또박또박한 글씨로.
박재원은 『그리스 신화 대계』를 계속 읽었다. 비너스와 관련된 모든 부분을 찾아 포스트잇을 붙였다. 노란색 포스트잇이 책 곳곳에 붙었다. 탄생, 미의 여신, 사랑의 여신, 트로이 전쟁, 아도니스 신화.
이수진은 대리석 샘플의 산화 정도를 측정했다. 분광기를 사용했다. 빛을 쏘고 반사되는 파장을 측정하는 장비였다. 데이터가 그래프로 나타났다. 산화 정도가 다른 두 구간이 명확히 보였다. 최소 두 시간 차이였다.
로시는 30명의 SNS 게시물 패턴을 그래프로 만들었다. 가로축은 시간, 세로축은 게시물 수. 수술 후 2주는 매일 올렸다. 그 후로는 급격히 감소했다. 어떤 사람은 완전히 멈췄다. 왜일까. 신기함이 사라져서? 아니면 다른 이유?
현진은 모든 데이터를 정리했다. 폴더별로 분류하고 파일명을 정확히 붙였다. 클라우드에 백업했다. 그리고 주요 데이터를 시각화했다. 30명의 얼굴을 격자로 배열한 이미지. 균열의 황금비율을 보여주는 그래프. 체형 매칭 결과 차트. 타임라인 도표.
오후 네 시가 되었다. 창밖에 그림자가 길어졌다. 북촌 골목의 관광객이 줄어들었다.
박재원이 책을 덮었다.
- 비너스 조각 중에 팔이 없는 게 많아요.
로시가 고개를 들었다.
- 왜요?
- 완벽함의 결핍이에요.
박재원이 펜을 돌렸다.
- 완벽한 몸에 결핍이 있어야 더 아름답다는 역설. 밀로의 비너스, 카피톨리나 비너스... 다 팔이 없죠.
- 균열과 비슷하네요.
이수진이 창밖을 보며 말했다.
- 그렇죠. 완벽함에는 항상 결핍이 따라와요. 완벽하면 더 이상 인간적이지 않으니까.
오후 네시 반. 강윤서가 질문 리스트를 화이트보드에 붙였다.
K씨 면담 질문:
토요일 밤 21:58 클리닉에 갔습니까?
무엇을 했습니까?
왜 갔습니까?
원장을 만났습니까?
원장 상태는 어땠습니까?
손에 든 봉투는 무엇이었습니까?
정 원장과 마지막 대화는 언제였습니까?
"얼굴에 균열이 생겼다"는 무슨 의미입니까?
왜 혼자 오라고 했습니까?
- 이 정도면 될까요?
박재원이 봤다.
- 좋아요. 상황에 따라 추가 질문하면 되죠.
- 녹음 들으면서 필요하면 문자 보내주세요.
- 네.
박재원이 다시 『그리스 신화 대계』로 돌아갔다. 페이지를 넘기다 멈췄다.
- 재미있는 게 있어요.
- 뭔데요?
로시가 물었다.
- 아프로디테가 전쟁의 신 아레스와 바람을 피우다 걸렸을 때 얘기예요. 헤파이스토스가 황금 그물로 두 사람을 묶어서 신들 앞에 공개했죠.
- 완벽한 여신의 추문이네요.
강윤서가 말했다.
- 그렇죠. 아름다움의 여신도 욕망이 있고 실수를 해요. 완벽하지 않아요.
박재원이 펜을 돌렸다.
- 그런데 그게 오히려 그녀를 더 매력적으로 만들었어요. 신화 속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신이 된 이유죠.
- 불완전함이 매력이 되는...
이수진이 창밖을 보며 말했다.
- 정 원장은 반대로 갔네요.
로시가 화면을 보며 말했다.
- 완벽함만 추구했어요. 30명 다 똑같이.
현진이 엑셀 파일을 열었다. 30명의 수술 날짜 리스트.
- 수술 간격이 규칙적이에요. 매주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 계획적이네요.
박재원이 다가왔다.
- 네. 그리고 첫 번째 환자가 작년 3월이에요. K씨는...
현진이 스크롤을 맨 아래까지 내렸다.
- 올해 2월. 서른 번째예요.
- 11개월.
강윤서가 말했다.
로시가 SNS 그래프를 확대했다.
- 패턴이 흥미로워요. 초기 환자들은 수술 후 한 달간 매일 게시했는데, 후기로 갈수록 게시 빈도가 줄어들어요.
- 왜요?
이수진이 물었다.
- 모르겠어요. 피곤해서? 아니면...
로시가 의자를 뒤로 젖혔다.
- 같은 얼굴이 너무 많아져서?
- 복제의 피로.
박재원이 말했다.
- 처음엔 특별했지만 점점 평범해지는.
강윤서가 화이트보드에 추가로 적었다.
패턴:
30명 수술: 작년 3월 ~ 올해 2월 (11개월)
주 3회 (월/수/금)
K씨: 30번째 환자 (올해 2월)
SNS 활동: 초기 환자 > 후기 환자
- 원장이 뭔가 깨달은 시점이 있을 거예요.
박재원이 노트를 펼쳤다.
- 처음엔 완벽함을 만들려고 했는데…
- 중간쯤에서 변화가 있었을 것 같아요.
이수진이 조용히 말했다.
- 절반 지나면 보통 뭔가 느끼잖아요.
로시가 추측했다.
- 멈출 수 없었던 거겠죠.
로시가 말했다.
- 이미 시작했으니까.
박재원이 『그리스 신화 대계』의 다른 페이지를 펼쳤다.
- 피그말리온 이야기 알아요?
- 조각가?
로시가 물었다.
- 네. 완벽한 여인상을 조각해서 사랑에 빠진 사람이죠. 아프로디테가 불쌍히 여겨서 조각에 생명을 줬어요.
- 정 원장의 반대네요.
강윤서가 말했다.
- 생명을 조각으로 만들려고 한.
- 그렇죠.
박재원이 책을 덮었다.
- 피그말리온은 조각을 사랑했지만, 정 원장은...
- 자기 자신을 사랑한 거예요.
이수진이 조용히 말했다.
- 30명의 거울을.
- 나르시시즘.
로시가 말했다.
현진이 30명의 얼굴 격자 이미지를 다시 열었다. 30개의 같은 얼굴. 미세한 차이만 있을 뿐.
- 원장은 이 중 어디 있을까요?
- 뭐요?
박재원이 물었다.
- 원장 얼굴이요. 수술 전 원장 얼굴이 30명 중 하나랑 같았을까요?
그 질문에 모두가 멈췄다.
- 원장 사진 있어요?
강윤서가 물었다.
- 클리닉 홈페이지에...
로시가 검색했다. 클리닉 소개 페이지. 정미선 원장 프로필 사진. 확대했다.
현진이 30명 격자 옆에 띄웠다. 비교했다. 거의 같았다. 턱선, 코, 입술. 원장도 비너스였다.
- 자기 얼굴이었네요.
이수진이 숨을 죽였다.
- 30명을 자기 얼굴로 만든 거예요.
박재원이 말했다.
- 나르시시즘이 아니에요.
강윤서가 조용히 말했다.
- 자기 증식이에요.
오후 여섯 시가 넘어갔다. 창밖이 어두워졌다.
강윤서가 일어났다.
- 내일이 중요해요. K씨가 뭘 알고 있는지.
현진은 마지막으로 모든 파일을 저장했다. 클라우드에 백업했다. 모니터를 끄기 전에 원장과 30명의 얼굴을 나란히 놓은 이미지를 봤다. 31개의 같은 얼굴.
자기 증식. 완벽의 복제.
불을 끄고 연구실을 나왔다.
내일이면 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