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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고고학적, 역사적 사실과 기록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과 장소, 기업, 사건은 모두 허구이며, 실제와는 무관합니다.
"여신의 몸에서 흐른 이코르(ἰχώρ)는 피가 아니었다. 그것은 불멸의 상처, 영원히 아물지 않는 신의 눈물이었다."
— 호메로스, 『일리아스』 제5권 339행, 기원전 8세기
점심시간이 되었다. 열두 시. 강윤서가 근처 카페에 전화를 걸었다.
- 샌드위치 다섯 개요. 연어, 치킨, 야채... 네, 커피도 다섯 잔. 삼십 분 후에 가져다주세요.
기다리는 동안 박재원이 화이트보드를 봤다. 어제 적어놓은 타임라인. 눈을 가늘게 뜨고 읽었다.
- 이상한데요.
- 뭐가요?
강윤서가 물었다.
- 원장 사망 시각이 토요일 밤 21:50에서 22:10 사이잖아요.
- 네.
- 그런데 후드 인물이 22:17에 처음 나타났어요. 편의점 앞에서.
- 맞아요.
박재원이 펜으로 화이트보드를 두드렸다.
- 그럼 언제 들어간 거예요?
침묵이 흘렀다.
이수진이 고개를 들었다.
- 21:00 이전?
- 그런데 CCTV는 21:00부터 확인했잖아요.
박재원이 현진을 봤다.
- 그 전은 안 봤죠?
- 주차장은 22:00부터 봤어요.
현진이 말했다.
- 빨리 감기로.
- 그럼 21:00에서 22:00 사이에 놓친 게 있을 수도 있어요.
강윤서가 일어났다.
- 다시 확인해 봐야겠네요.
현진이 주차장 CCTV 파일을 불러왔다. 21:00:00부터 재생했다.
- 빨리 감기로 볼게요.
현진이 4배속으로 돌렸다.
사람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차들이 들어왔다 나갔다. 주차하고 내리고 타고 나갔다. 반복.
21:15. 21:30. 21:45. 21:58.
화면 왼쪽 하단에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 여기요.
현진이 멈췄다.
모두가 현진의 책상 앞으로 모였다. 정상 속도로 되돌렸다. 21:58:00부터 재생했다.
후드를 쓴 인물이 나타났다. 주차장 입구에서 걸어 들어왔다.
클리닉 방향으로. 같은 검은색 후드. 같은 체형. 한 걸음, 한 걸음. 클리닉 건물 입구로 사라졌다.
21:58:47.
- 들어갔네요.
박재원이 말했다.
- 원장 사망 시각 직전이에요.
이수진이 조용히 말했다.
강윤서가 시계를 봤다.
- 타임라인 다시 정리해야겠네요.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딩동.
샌드위치 배달이었다.
강윤서가 문을 열어 받았다. 큰 종이봉투. 샌드위치 다섯 개와 커피 다섯 잔. 식탁에 내려놓았다.
- 먹으면서 정리하죠.
각자 샌드위치를 집어 들었다. 연어, 치킨, 야채. 커피 잔을 들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식탁이 아니라 각자 책상에서 먹었다. 일하면서 먹는 점심이었다.
현진은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고 노트북을 열었다. 프로그레스 바를 확인했다. 90%. 아직 조금 남았다. 원래 오후 두 시에 끝날 예정이었다.
- 21:58 프레임도 복원에 추가해야겠어요.
현진이 말했다.
- 가능해요?
강윤서가 물었다.
- 네. 지금 추가하면 사십 분 더 걸릴 것 같아요.
- 해주세요.
현진이 21:58 구간을 캡처했다. 10 프레임. 후드 인물이 클리닉으로 걸어 들어가는 순간들. 복원 작업에 추가했다. 렌더링을 다시 시작했다.
프로그레스 바가 90%에서 다시 68%로 떨어졌다. 예상 시간 90분.
- 두 시 사십 분쯤 끝나겠네요.
현진이 말했다.
강윤서는 화이트보드로 갔다. 마커를 집어 타임라인을 수정했다.
토요일 밤 타임라인:
21:58 후드 인물 주차장 입장 (클리닉으로)
21:50~22:10 원장 사망
22:17 후드 인물 클리닉에서 나옴 (편의점 CCTV)
22:17~23:42 행적 불명
23:42 주차장에서 차 타고 퇴장 (손에 봉투)
- 원장 사망 시각이랑 거의 겹치네요.
박재원이 펜을 돌렸다.
- 그 현장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아요.
이수진이 말했다.
- 아니면...
로시가 의자를 뒤로 젖혔다.
- 목격자?
- 목격자라면 왜 신고 안 했을까요?
박재원이 물었다.
- 범인이거나.
강윤서가 단정적으로 말했다.
침묵이 흘렀다.
현진은 스마트폰을 꺼냈다. K씨의 인스타그램을 다시 봤다.
@bOOO_k. 최근 게시물은 일주일 전. 카페에서 찍은 셀카. 완벽한 얼굴. 비너스의 얼굴.
오후 한 시 반쯤, 로시가 갑자기 "오" 하고 소리를 냈다.
- 답장 왔어요!
흥분한 목소리였다. 모두가 고개를 들었다.
- K씨요?
강윤서가 달려갔다.
- 네. 지금 왔어요.
로시가 화면을 돌렸다.
@bOOO_k의 메시지였다. 인스타그램 DM.
박재원이 펜을 탁 놓고 왔다. 현진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수진이 로시 뒤에 섰다. 모두가 화면을 봤다.
> @bOOO_k: 만날 수 있어요. 하지만 혼자 오세요. 내일(수요일) 저녁 6시. 한남동 카페 아무르. 다른 사람 오면 안 만나요.
침묵이 흘렀다.
창밖의 관광객들의 카메라 셔터 소리만 희미하게 들렸다.
- 혼자 오라고 했네요.
박재원이 먼저 말했다. 펜을 다시 집어 돌리기 시작했다.
-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거예요.
이수진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 아니면 부끄러운 거거나.
로시가 의자를 뒤로 젖히며 말했다.
강윤서가 일어나며 말했다.
- 갈게요.
- 대표님이요?
이수진이 눈썹을 찌푸렸다.
- 네. 녹음기 준비하면 돼요. 실시간으로 여러분이 들을 수 있게.
- 위험할 수도 있어요.
박재원이 반대했다.
- 혼자 가시는 건...
- 공개된 카페예요. 저녁 시간이고. 사람 많을 거예요.
강윤서가 차분하게 말했다. 이미 결정한 목소리였다.
- 괜찮아요.
- 보안은?
박재원이 물었다.
- 녹음기 앱으로 실시간 전송하면 돼요. 현진 씨가 세팅해 줄 수 있죠?
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 가능해요.
- 좋아요.
강윤서가 화이트보드에 추가로 적었다.
수요일 일정:
18:00 K씨 면담 (한남동 카페 아무르)
조건: 대표 혼자
준비: 녹음기 실시간 전송
- 정리하는 동안 복원 작업 기다리죠.
강윤서가 시계를 봤다.
- 한 시간 정도 남았네요.
박재원은 책장으로 갔다. 빠른 걸음이었다. 『그리스 신화 대계』를 꺼냈다. 두꺼운 책. 표지가 낡았다. 책상으로 돌아와 펼쳤다.
- 비너스 신화를 좀 더 파야 할 것 같아요.
페이지를 빠르게 넘겼다.
- 원장이 왜 비너스에 집착했는지.
- 있네요.
박재원이 멈췄다.
- 아프로디테 탄생 신화.
로시가 고개를 돌렸다.
- 뭐래요?
- 우라노스의 성기에서 태어났어요.
박재원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 크로노스가 아버지를 거세하고 바다에 던졌는데, 그 주변에서 거품이 일어나며 여신이 탄생했죠.
- 폭력에서 아름다움이...
이수진이 조용히 말했다. 창밖을 봤다.
- 그렇죠. 폭력에서 아름다움이 탄생한 거예요.
박재원이 페이지를 넘겼다.
- 그리고 키테라 섬을 거쳐 키프로스 섬에 도착해요. 그래서 Kythereia라는 별명이 생긴 거고.
- 30명을 Kythereia와 Aphrodite로 나눈 게...
로시가 의자를 뒤로 젖혔다. 천장을 봤다.
- 의미가 있을까요?
- 첫 번째 그룹과 두 번째 그룹?
박재원이 펜을 돌렸다.
- 탄생과 도착? 여정과 완성?
- 아니면...
현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 원본과 복제?
그 말에 모두가 멈췄다.
원본과 복제.
Kythereia는 여정 중의 여신. Aphrodite는 완성된 여신.
그렇다면 30명은 무엇이었나. 여정이었나. 완성을 향한.
강윤서가 화이트보드를 봤다.
- 완성을 만들려고 했지만...
- 완성은 불가능했죠.
이수진이 말을 이었다.
- 그래서 균열을.
침묵이 흘렀다. 각자 생각에 잠겼다.
오후 한 두 사십 분. 현진의 노트북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작은 '띵' 소리.
프로그레스 바가 100%에 도달했다.
복원 완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