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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너스의 흉터 3부 「얼굴」 - 1

1-(1)

by jeromeNa
이 작품은 고고학적, 역사적 사실과 기록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과 장소, 기업, 사건은 모두 허구이며, 실제와는 무관합니다.


"프락시텔레스가 여신의 얼굴을 조각하려 하자 아프로디테가 말했다. '내 얼굴을 완성하는 자는 돌이 되리라. 아름다움은 미완에 머물러야 하느니라.'"

— 『그리스 조각가 열전』, 플리니우스, 서기 77년


1.


목요일 아침은 비가 내렸다. 가랑비였다. 창문에 빗줄기가 흐릿하게 그어졌다. 현진이 연구실에 도착했을 때는 여섯 시 반이었다. 계단을 올라가며 우산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를 들었다.


똑, 똑.


복도 끝에서 불빛이 새어 나왔다. 문을 열자 강윤서가 보였다. 검은색 정장. 커피를 마시며 노트를 보고 있었다.


- 비 오네요.


강윤서가 창밖을 보며 말했다.


- 네.


현진이 우산을 세워두고 가방을 내려놓았다. 노트북을 꺼내 켰다. 부팅음. 윈도우 시작 화면.

여섯 시 사십 분, 박재원이 도착했다. 머리에 빗물이 묻어 있었다. 재킷을 벗으며 말했다.


- K씨 몇 시에 만나기로 했어요?

- 아홉 시요. 홍대 카페에서.


박재원이 시계를 확인했다. 가방을 책상에 던지듯 놓고 코트를 벗었다.

이수진이 들어왔다. 베이지색 우산을 접으며 인사했다.


- 안녕하세요.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창밖을 봤다.


- 비가 많이 오진 않네요.


로시가 마지막으로 도착했다. 머리가 젖어 있었다.


- 미안해요. 늦었어요?

- 아니요. 정각이에요.


강윤서가 화이트보드 앞에 섰다. 마커를 집었다.


목요일 일정:
09:00 K씨 만남 (홍대) - 봉투 수령
15:00 민정 면담 (클리닉) - 전화 기록 확인


마커 뚜껑을 닫았다.


- 오전에 K씨 만나고, 오후에 민정 씨 면담이에요.


팔짱을 꼈다.


- 22:17 인물이 누군지 확인해야 해요.


박재원이 펜을 돌렸다. 빙글빙글.


- 체형 매칭 결과가 세 명이었죠?

- 네. K씨 92%, J씨 87%, S씨 85%요.


현진이 파일을 열었다.


- K씨는 어젯밤 증언으로 제외됐고.

- 그럼 J씨나 S씨네요.


이수진이 조용히 말했다.

로시가 노트북을 열었다.


- J씨 SNS 확인했는데, 토요일 밤 11시에 집에서 셀카 올렸어요. 위치 태그도 신사동이고요.

- 알리바이가 있네요.


박재원이 말했다.


- S씨는요?

- 토요일 게시물이 없어요. 금요일이 마지막이고.


강윤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 일단 민정 씨 면담에서 더 확인해 보죠. 원장이 누구한테 전화했는지.


시간이 흘렀다. 각자 준비했다.

강윤서는 질문 리스트를 다시 점검했다. K씨에게 물어볼 것들. 편지 내용, 원장과의 마지막 대화, 그룹에 대한 생각.

박재원은 『그리스 조각가 열전』을 펼쳤다. 프락시텔레스 부분. 형광펜으로 줄을 그었다.

이수진은 대리석 샘플 분석 보고서를 출력했다. 보험사에 제출할 자료였다.

로시는 J씨와 S씨의 SNS를 더 확인했다. 행적. 패턴.

현진은 데이터를 최종 정리했다. CCTV 영상, 복원 이미지, 타임라인. USB에 백업했다.


여덟 시 반. 강윤서가 코트를 입었다.


- 출발할게요.

- 저도 같이 갈게요.


박재원이 일어났다.


- 차에서 대기하면 돼요. 혹시 모르니까.

- 좋아요.


강윤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연구실을 나갔다.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 딱, 딱.


세 사람이 남았다. 조용해졌다.

이수진은 창밖을 봤다. 비가 계속 내렸다. 북촌 기와지붕이 젖어 어두웠다.

로시는 화면을 보며 중얼거렸다.


- 22:17 인물이 누굴까...


현진은 빈 화면을 봤다. 새로운 복원 작업은 없었다.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아홉 시 사십 분, 강윤서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수진이 스피커폰으로 받았다.


- 네, 대표님.

[봉투 받았어요.]


강윤서의 목소리가 차분했다.


[지금 돌아가는 중이에요. 삼십 분 후에 도착할 거예요.]

- K씨는요?

[괜찮아 보였어요. 많이 안정됐고. 편지 읽어봤는데... 중요해요.]

- 알겠습니다. 기다릴게요.


전화가 끊어졌다.


***


열 시 십 분,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 두 사람. 강윤서와 박재원이 들어왔다.


강윤서가 가방에서 갈색 봉투를 꺼냈다. A4 크기. K씨 이름이 적혀 있었다. 검은색 펜으로. 정미선 원장의 필체였다.


책상 위에 놓았다. 모두가 모였다.

강윤서가 봉투를 열었다. 안에 두 가지가 들어 있었다.


편지 한 장. 흰색 편지지. 손글씨. 대리석 조각 하나. 작은 파편. 1센티미터 정도.

강윤서가 편지를 펼쳤다. 소리 내어 읽었다.


K에게.

완벽함은 거짓이다. 나는 30개의 거울을 만들었다. 모두 같은 얼굴로. 나의 얼굴로. 처음엔 아름다움을 복제하는 것이라 믿었다. 비너스를. 완전함을.
하지만 15번째를 만들고 나서 깨달았다. 그들은 거울이 아니었다. 감옥이었다.
완벽한 얼굴은 자유가 없다. 완벽한 얼굴은 변화가 없다. 완벽한 얼굴은 죽은 얼굴이다.
너는 다르다. 너는 그룹에 들어가지 않았다. 너는 거울을 거부했다.
균열이 진실이다. 이 조각 파편을 네게 준다. 비너스의 눈. 완벽함의 시선.
부수어라. 녹여라. 버려라. 그리고 자유로워라.
나는 오늘 밤, 나의 비너스에게도 균열을 줄 것이다. 완벽함을 깨뜨리는 것이 나의 마지막 작품이다.
용서를 구하지 않는다. 다만 네가 살기를 바란다.

정미선


침묵이 흘렀다.


박재원이 편지를 다시 집어 들었다. 천천히 읽었다. 펜이 떨렸다.


- 15번째부터...


중얼거렸다.


- 절반 지나서 깨달은 거네요.


이수진이 창밖을 보며 말했다.


- 너무 늦게.


로시가 조각 파편을 집어 들었다. 빛에 비춰봤다. 대리석이 반짝였다. 비너스의 눈 부분. 균열에서 떨어진.


- 이게 증거예요.


로시가 말했다.


- 원장이 직접 균열을 만들었다는.

- 보험사 보고서에 명확히 써야겠어요.


강윤서가 편지를 내려놓았다.


- 원장 본인이 의도적으로 훼손. 자살 전 유서 성격의 편지에 명시. 조각 파편도 물증으로.


펜으로 메모했다.


- 하지만 균열이 두 번 그어진 건...


박재원이 펜을 돌렸다.


- 제3자 개입 가능성이에요.


강윤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 그게 보험금 지급에 결정적이에요. 원장 본인이 고의로 훼손했으면 피보험자의 고의 행위로 면책이에요. 하지만 제3자가 단독으로 했다면 외부 범죄 행위로 보험금 지급 대상이 될 수 있어요.


박재원이 펜을 돌렸다.


- 그런데 균열이 두 번 그어진 거면...

- 1차가 원장이면 이미 그 시점에서 면책 사유가 성립해요.


강윤서가 단호하게 말했다.


- 2차 훼손 여부는 법적으로는 의미가 없어요. 이미 보험금 지급 불가니까.

- 그럼 왜 확인해요?


로시가 물었다.


- 사건의 전모 파악이요.


강윤서가 팔짱을 꼈다.


- 경찰 수사 자료가 될 수도 있고, 원장 사망과 연관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현진은 편지를 다시 봤다. "30개의 거울". "감옥". "죽은 얼굴".


- 30명을 만든 이유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 자기 복제였어요. 거울을 만드는.

- 나르시시즘이죠.


박재원이 펜을 돌렸다.


- 하지만 거울이 너무 많아지면...

- 자기 자신이 사라져요.


이수진이 조용히 말했다.

강윤서가 시계를 봤다.


- 점심 먹고 클리닉 가야 해요. 민정 씨 세 시에 만나기로 했으니까.

- 편지는 경찰한테 제출해야 하나요?


로시가 물었다.


- 보험사 통해서 전달할게요.


강윤서가 말했다.


- 우리 조사 결과랑 함께. K씨 신원은 보호하고.


현진이 편지를 스캔했다. 고해상도로. 조각 파편도 사진을 찍었다. 여러 각도에서.


점심은 간단히 김밥으로 해결했다. 강윤서가 근처 분식집에서 사 왔다. 참치, 야채, 치즈. 각자 책상에서 먹었다.


먹으면서도 편지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15번째를 만들고 나서". 왜 하필 15였을까. 절반. 중간. 되돌릴 수 없는 지점.


오후 두 시, 강윤서와 박재원이 출발 준비를 했다.


- 현진 씨도 가요.


강윤서가 말했다.


- 민정 씨 증언 들으면서 CCTV 타임스탬프 대조해야 할 수도 있어요.

- 알겠습니다.


현진이 노트북을 가방에 넣었다.


- 저희는 여기서 J씨랑 S씨 더 확인할게요.


이수진이 말했다.


- 토요일 행적.


세 사람이 연구실을 나갔다. 비는 그쳤지만 하늘은 여전히 흐렸다.

차를 타고 강남으로 향했다. 도로가 젖어 있었다. 타이어가 물을 튀겼다.


***


오후 세 시, 클리닉에 도착했다. 로비는 조용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으로 올라갔다. 직원 휴게실. 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검은색 상복을 입고 있었다. 눈이 붓어 있었다.


- 와주셔서 감사해요.


목소리가 쉬어 있었다.


- 장례식 어땠어요?


강윤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 힘들었어요. 오전에 끝났는데... 환자분들이 많이 오셔서.

- 환자분들이요?


박재원이 펜을 꺼냈다.


- 네. 스물여덟 명이요.


민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 다 똑같은 옷 입고 왔어요. 흰색 원피스. 같은 헤어스타일까지.

- "키테라의 딸들"이었나요?


강윤서가 물었다.

민정의 눈이 커졌다. 숨을 멈췄다.


- 어떻게...


목소리가 떨렸다.


- 어떻게 아세요? 그 이름을?


강윤서와 박재원이 눈을 마주쳤다.


- 조사 중에 알게 됐어요.


강윤서가 차분하게 말했다.


- 환자들이 만든 비공개 그룹이죠. 페이스북에.


민정이 의자를 뒤로 당기며 앉았다. 손이 떨렸다.


- 저는... 원장님한테서만 들었어요. 그것도 몇 번 안 돼요.


휴지를 꺼내 손을 닦았다.


- 아무한테도 말 안 했는데... 비밀이라고 하셨거든요.

- 저희는 보험 조사 과정에서 환자 정보를 확인했어요.


박재원이 설명했다.


- 30명 수술 기록, SNS 활동, 그룹 존재까지.


민정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놀란 표정이었다.


- 원장님이... 걱정하셨어요. 그 그룹 때문에.


목소리를 낮췄다.


- 작년 12월쯤부터요. "너무 깊이 들어갔다"고 하시더라고요.

- 어떤 의미로요?


강윤서가 펜을 들었다.


- 종교처럼 됐다고.


민정이 말했다.


- 원장님을 "어머니"라고 부르고, 비너스를 "진정한 자아"라고 부르고. 서로를 "자매"라고 부르고.

손을 깍지 꼈다.

- 장례식에서도... 무서웠어요. 스물여덟 명이 줄 서서, 똑같은 표정으로, 관 앞에 서 있는 게. 마치...


말을 잇지 못했다.


- 의식 같았어요. 종교의식.


민정이 휴대폰을 꺼냈다. 사진을 보여줬다.


- 이분들이요.



[계속]


*** 단편을 생각했는데... 쓰다보니 중편이 되어버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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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