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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 단서, 문헌, 유물, 신화와 전설의 인용은 실제 기록을 기반으로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기록 사이를 잇는 인과와 해석, 그리고 모든 사건과 사건과 관련된 역사, 단체, 인물은 허구입니다.
강윤서가 고개를 들었다.
- 어젯밤부터요?
- 네. 저녁 아홉 시까지는 여기 계셨는데... 그 후로 전화도 안 받으시고.
- 가족한테도요?
- 네. 아침에 가족한테 연락했더니 집에도 안 들어오셨대요.
침묵이 흘렀다. 스캔 소리만 들렸다. 윙.
- 혹시 현장에 혼자 계셨습니까? 어젯밤에?
강윤서가 물었다.
- 경비원이 있었는데... 김 교수님이 먼저 가셨대요.
- 몇 시에요?
- 아홉 시 반쯤.
- 경찰에는 신고했습니까?
- 오늘 저녁까지 연락 없으면 하려고요.
- 신고하시면 연락 주세요. 제가 경찰 쪽에 아는 분 있으면 직접 연락드릴게요.
- 네, 알겠습니다.
열한 시쯤 되자 스캔이 완료되었다. 현진이 노트북을 봤다.
- 끝났어요.
3D 모델이 완성되었다. 제단 전체가 디지털로 재현되었다. 회전시킬 수 있었다. 확대도 가능했다. 문양이 선명했다. 동심원들. 직선들. 교차점들.
현진이 화면을 캡처했다. 여러 각도에서. 파일로 저장하고, 백업도 만들어 USB에 복사했다.
- 추가 작업 있습니까?
담당관이 물었다.
- 측정 결과 나올 때까지는 대기입니다.
강윤서가 대답했다.
- 며칠 걸립니까?
- 빠르면 월요일, 늦으면 화요일이요.
담당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 샘플은 제가 오늘 국과수에 전달하겠습니다.
장비를 정리했다. 스캐너를 분해했다. 삼각대를 접었다. 가방에 넣었다. 카메라도 챙겼다. 샘플 가방도. 하나씩 사다리로 올렸다.
마지막으로 박재원이 한참 제단을 봤다. 로마 양식. 설형문자. 한반도. 말이 안 됐다. 하지만 눈앞에 있었다.
사다리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햇빛이 눈부셨다.
담당관에게 샘플을 건넸다.
- 국과수에 긴급 의뢰 부탁드립니다.
- 네. 바로 보내겠습니다.
- 결과 나오면 연락 주시고요.
- 알겠습니다.
정오쯤 연구실로 복귀했다. 각자 자리에 앉았다.
현진은 노트북을 켜고, 3D 모델 파일을 공유 폴더에 올렸다. 박재원은 오늘 찍은 사진을 정리했다. 용산-제단-20XX.XX.XX. 폴더를 만들어 사진을 옮겼다. 총 이백칠십삼 장.
로시는 측면 문자 사진을 확대했다. 화면에 얼굴을 가까이 댔다. 펜을 들어 노트에 문자를 따라 그렸다. 하나씩. 천천히.
이수진은 샘플 리스트를 작성했다. 엑셀 파일. 샘플 번호, 채취 위치, 시각, 담당자. 네 행을 채웠다.
강윤서는 보고서 초안을 작성했다. 현장 상황, 제단 형태, 조사 내용, 예상 일정.
오후 세 시쯤, 로시가 고개를 들었다.
- 문자가 복잡해요.
- 어떻게요?
박재원이 물었다.
- 표준 설형문자가 아니에요. 변형된 형태예요. 시간이 더 필요해요.
- 월요일까지 가능해요?
- 최선을 다해볼게요.
박재원이 화이트보드로 갔다. 마커를 집었다. 정리하기 시작했다.
로마 양식 (정사각형 기단, 계단식)
설형문자 (메소포타미아, 로마 시대 X)
한반도 (실크로드 이전?)
김 교수 실종 (금요일 21:30 이후)
네 줄을 적었다. 연결선을 그으려다 멈췄다. 연결이 안 됐다.
- 탄소연대측정 결과를 기다려야겠어요.
이수진이 창밖을 봤다.
- 그전에 할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요?
강윤서가 물었다.
- 3D 모델 정밀 분석이요.
현진이 대답했다.
- 문양 패턴 같은 거.
- 좋아요. 그것부터 시작하죠.
현진은 3D 모델을 다시 열었다. 제단 상부를 확대했다. 동심원들. 여러 개가 겹쳐져 있었다. 중심에서 바깥으로. 간격이 일정하지 않았다. 규칙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 보이지 않았다.
AI 패턴 매칭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고대 유적 데이터베이스를 불러왔다. 전 세계 문양 패턴들. 비교 분석 시작. 프로그레스 바가 나타났다. 예상 시간 삼 시간.
오후 네 시, 담당관에게서 전화가 왔다. 강윤서가 스피커폰으로 받았다.
[김 교수님 가족이 경찰에 신고했답니다.]
- 언제요?
[방금요.]
- 담당 형사 누구인지 아십니까?
[최민석 형사래요.]
강윤서가 눈을 크게 떴다.
- 최 형사요?
[네. 혹시 아세요?]
- 검사 시절에 같이 일했어요. 제가 직접 연락드릴게요.
[그럼 부탁드립니다.]
전화를 끊었다. 강윤서가 연락처를 찾았다.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 세 번. 받았다.
[강 검사님?]
- 최 형사님, 오래됐어요.
[정말 오래됐네요. 무슨 일이세요?]
- 용산 미군기지 부지 제단 발굴 건 아세요?
[아, 그거요. 방금 해당 건으로 배정받았는데.]
- 저희가 오늘 현장 조사했어요. 제단 긴급 평가 의뢰받아서요.
[그래요? 그럼 얘기 좀 들어야겠는데요.]
- 월요일 시간 되세요?
[오전에 문화재청 가려고 하는데, 같이 가시겠어요?]
- 그럴게요. 몇 시에?
[아홉 시.]
-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었다.
- 경찰이랑 같이 움직이는 거예요?
박재원이 물었다.
- 협조하는 거죠. 김 교수님 실종이 제단이랑 관련 있을 수도 있으니까.
오후 여섯 시, 현진의 AI 분석이 완료되었다. 프로그레스 바 100%. 결과 창이 떴다.
- 끝났어요.
모두가 모였다. 화면을 봤다.
일치율 상위 결과:
바빌로니아 천문도 (87%)
이집트 태양력 (72%)
마야 달력 (68%)
- 천문도요?
박재원이 화면을 가까이 봤다.
- 바빌로니아 천문 관측 기록이랑 비슷하네요.
현진이 대답했다.
박재원이 펜을 돌렸다. 빠르게.
- 로마 제단에 바빌로니아 천문도?
- 말이 안 되는데요.
이수진이 조용히 말했다.
로시가 의자를 뒤로 젖혔다.
- 재밌어요. 로마 양식, 메소포타미아 문자, 바빌로니아 천문도. 전부 다른 시대, 다른 지역인데.
- 뭔가 연결고리가 있을 거예요.
박재원이 화이트보드에 추가로 적었다.
천문도 (바빌로니아 87%)
다섯 줄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연결이 안 됐다.
강윤서가 시계를 봤다.
- 오늘은 여기서 정리하죠. 월요일에 경찰이랑 문화재청 가야 하니까 일찍 출근해요.
- 몇 시요?
박재원이 물었다.
- 여덟 시 반에 출발할게요.
-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