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붉은 제단> 1부 [제단] - 2

2-(1)

by jeromeNa
이야기 속 단서, 문헌, 유물, 신화와 전설의 인용은 실제 기록을 기반으로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기록 사이를 잇는 인과와 해석, 그리고 모든 사건과 사건과 관련된 역사, 단체, 인물은 허구입니다.


월요일 아침 여덟 시, 연구실에 다시 모였다. 강윤서가 서류 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검은 정장에 흰 블라우스. 깔끔했다. 박재원은 주말 내내 찾은 자료를 프린트했다. 로마 신전 배치도, 마르스 신 관련 문헌, 실크로드 지도. 총 사십여 장.


- 가죠.


강윤서가 박재원을 봤다.


- 네.


박재원이 가방을 챙겼다.


나머지 팀원들은 각자 자리에 앉았다. 로시는 설형문자 노트를 펼쳤다. 현진은 노트북을 켰다. 이수진은 현미경 앞으로 갔다.


문화재청까지 이십 분. 월요일 아침이라 길이 막혔다. 차가 천천히 움직였다. 신호등에서 멈췄다. 다시 출발하고 멈추고를 반복했다.


박재원이 프린트한 자료를 다시 봤다. 로마 마르스 신전 분포도. 빨간 점들이 지도에 찍혀 있었다. 대부분 이탈리아 반도에 집중되어 있었다. 일부가 갈리아, 히스파니아, 북아프리카. 브리타니아에도 몇 개. 하지만 동쪽으로는 기록이 거의 없었다. 다키아까지. 현재의 루마니아. 그 너머는 공백이었다.


- 한반도까지 오려면...


박재원이 중얼거렸다.


- 최소 오천 킬로미터예요.

- 배로요?

- 배도 육로도. 어느 쪽이든 말이 안 돼요. 로마가 그렇게 멀리 원정 간 기록이 없어요.

- 트라야누스 황제는요?

- 트라야누스가 가장 동쪽까지 갔죠. 서기 백십육 년. 메소포타미아 정복. 티그리스 강까지. 근데 얼마 안 가 철수했어요. 하드리아누스가 영토 포기했고.


차가 다시 멈췄다. 광화문 사거리. 출근 차량이 가득했다.

아홉 시, 문화재청에 도착했다. 로비에서 최민석 형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사십대 초반. 회색 정장. 날카로운 인상. 눈빛이 예리했다.


- 강 검사님.


악수를 나눴다. 손에 힘이 있었다.

강윤서가 미소 지었다.


- 이제는 검사가 아닙니다. 변호사도 아니고요. 그냥 대표라고 불러주세요.

- 그래도 습관이..."


최 형사가 웃었다.


- 강 대표님. 이쪽은요?

- 저희 연구소장 박재원입니다.

- 반갑습니다.


최 형사가 박재원과 악수했다.


- 토요일에 현장 가셨다고요?

- 네. 제단 조사했습니다.

- 어떻던가요?

- 로마 양식이 맞는데... 설명이 안 됩니다.

- 설명이 안 된다는 게?

- 한반도에 있을 이유가 없어요. 시기적으로도, 지리적으로도.


담당관이 회의실로 안내했다. 긴 테이블. 의자 여덟 개. 네 명이 한쪽에 앉았다. 담당관이 파일을 펼쳤다. 김 교수 인적사항. 사진. 경력. OO대 고고학과 교수. 오십육 세.


- 김 교수님 어제저녁까지 연락 없었습니다.


최 형사가 노트를 꺼냈다. 검은색 수첩. 펜을 집었다.


- 금요일 밤 아홉 시 반에 현장을 떠나신 게 마지막이죠?

- 네. 경비원 진술입니다.

- 경비원 이름은요?

- 박철수. 오십팔 세. 현장 야간 경비 담당입니다.

- 진술 내용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담당관이 종이를 봤다.


- 금요일 저녁 아홉 시까지 김 교수님이 현장에서 제단 조사하셨대요. 사진 찍고, 메모하고. 아홉 시 십 분쯤 경비실에 들러서 내일 다시 오겠다고 하셨대요. 그리고 나가셨고.

- 차는요?

- 택시 타고 가셨대요. 경비원이 불러줬고요.

- 택시 번호는?

- 못 봤다고 합니다.


최 형사가 노트에 적었다.


- CCTV는요?

- 공사 현장이라 설치 안 되어 있습니다. 입구 펜스에만 하나 있는데, 각도가 안 좋아서 얼굴은 안 나와요.

- 영상은 확보했습니까?

- 네. 토요일 오전에 저희가 받았습니다. 형사님께 전달하겠습니다.

- 좋습니다.


최 형사가 펜으로 노트를 두드렸다. 딱, 딱, 딱. 리듬이 있었다.


- 제단 발굴이 금요일 오전이죠?

- 네. 오전 열 시쯤 굴착기가 건드렸어요.

- 김 교수님이 바로 현장 왔습니까?

- 네. 제가 연락드렸고, 한 시간 후에 오셨어요.

- 첫 반응이 어땠습니까?


담당관이 잠시 생각했다.


- 놀라셨어요.

- 놀란 것뿐입니까?

- 그것도 그런데...


담당관이 말을 이었다.


- 뭔가 아시는 것 같았어요.

- 아신다는 게 어떤 의미입니까?

- 표정이... 예상했던 것처럼 보였어요. 놀라긴 했는데, 전혀 예상 못 한 놀람이 아니라, '역시 여기 있었구나' 같은 느낌?


박재원이 끼어들었다.


- 잠깐만요. 김 교수님이 용산 부지에 뭔가 있을 거라고 예상하셨다는 얘기입니까?

- 확실하진 않지만...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침묵이 흘렀다.

위잉. 에어컨 소리만 들렸다.


최 형사가 물었다.


- 김 교수님 연구실이나 집 확인했습니까?

- 아직입니다.

- 오늘 중으로 해야겠네요.


최 형사가 강윤서를 봤다.


- 같이 가시겠습니까?

- 네. 제단 관련 자료가 있는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 좋습니다. 지금 바로 가죠.


회의가 끝났다. 시계를 봤다. 열 시.

강윤서가 박재원에게 말했다.


- 소장님은 연구실로 돌아가서 대기해 주세요. 탄소연대측정 결과 오늘 나올 수도 있어요.

- 알겠습니다. 연락 주세요.

- 네.


***


박재원은 택시를 잡아타고 북촌으로 돌아갔다. 기사가 라디오를 틀었다. 뉴스가 나왔다. 경제 소식. 주가. 환율. 박재원은 듣지 않았다. 창밖을 봤다. 광화문. 경복궁. 삼청동. 북촌.


연구실 문을 열었다. 이수진이 현미경 앞에 앉아 있었다. 토요일 채취한 샘플을 다시 보고 있었다. 슬라이드 위에 올려놓은 작은 돌가루.


- 어떻게 됐어요?


이수진이 고개를 들었다.


- 김 교수님 연구실 가신대. 대표님이랑 최 형사님.


박재원이 가방을 내려놓았다.


- 실종이 확실한가 봐요.


현진이 노트북에서 고개를 돌렸다.


- 어. 금요일 밤부터 연락 두절.


로시가 펜을 내려놓았다.


- 제단이랑 관련 있을까요?

- 모르겠어. 근데 담당관 말이... 김 교수님이 뭔가 미리 아셨던 것 같다는 뉘앙스였다고 하더군.

- 미리요?


이수진이 물었다.


- 제단을 처음 봤을 때 표정이 예상했던 것 같았대. '역시 여기 있었구나' 이런 느낌.


침묵이 흘렸다.


- 이상한데요.


로시가 의자를 뒤로 젖혔다.

박재원은 자리에 앉았다. 노트북을 켰다. 부팅음.


- 탄소연대측정 결과 언제 나온대?

- 아직 연락이 없어요.


현진이 대답했다.


박재원은 주말에 찾은 자료를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현진은 다시 3D 모델 분석으로 돌아갔다. 제단 문양을 확대했다. 동심원들. 직선들. 패턴을 찾고 있었다. 화면을 회전시켰다. 각도를 바꿨다. 다시 확대했다.


로시는 설형문자 사진을 노트에 다시 옮기기 시작했다. 하나씩. 천천히. 펜을 들고 정확히 따라 그렸다. 쐐기 모양. 가로선. 세로선. 각도. 길이. 모두 똑같이.


이수진은 현미경으로 돌아갔다. 샘플의 풍화도를 다시 확인했다.


박재원이 역사 기록을 확인했다. 로마 공화정 시기. 기원전 3세기.


기원전 264년 - 제1차 포에니 전쟁 시작

기원전 241년 - 제1차 포에니 전쟁 종료

기원전 218년 - 제2차 포에니 전쟁 시작 (한니발)

기원전 280년 전후.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 통일 중이었다. 타렌툼 전쟁. 피로스 왕. 동쪽? 전혀 관심 없었다. 서쪽의 카르타고와 경쟁 중이었다.


한반도는? 고조선 후기. 위만조선 이전. 철기시대. 중국과의 교류는 있었다. 하지만 로마와? 기록 전무.

실크로드는? 기원전 130년경 한나라 장건이 개척. 기원전 280년엔 존재하지 않았다.


열한 시, 담당관에게서 전화가 왔다. 박재원이 받았다. 스피커폰으로 돌렸다.


[박 소장님, 국과수에서 탄소연대측정 결과받았습니다.]

- 말씀하세요.

[기원전 삼세기래요. 정확히는 기원전 이백팔십 년. 오차범위 플러스마이너스 오십 년.]


박재원이 펜을 떨어뜨렸다. 탁. 책상에 부딪치는 소리.


- ...확실합니까?

[국과수에서 재측정 두 번 했답니다. 샘플 네 개 모두 비슷하게 나왔고요. 평균 기원전 이백팔십 년.]

- 오염 가능성은요?

[샘플 채취 과정도 확인했대요. 문제없답니다. 결과 신뢰도 높다고 합니다.]

-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었다.


모두가 박재원을 봤다. 로시가 펜을 내려놓았다. 현진이 노트북에서 고개를 돌렸다. 이수진이 현미경에서 일어났다.


- 기원전 이백팔십 년.


박재원이 말했다. 목소리가 낮았다.


- 로마 시대는 맞네요.


이수진이 말했다.


- 맞긴 한데...


박재원이 빠르게 계산했다.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 그때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 통일 중이야. 타렌툼이랑 싸우고, 곧 카르타고랑 전쟁 시작하고. 동쪽? 관심도 없었어.

- 그럼 한반도는요?


이수진이 물었다.


- 고조선 후기. 철기 문화. 로마랑 교류? 전혀 없어. 기록도 없고, 가능성도 없고.


로시가 의자를 뒤로 젖혔다.


- 그럼 누가 만든 거예요?


대답이 없었다. 에스프레소 머신이 웅웅거렸다.


박재원이 화이트보드로 갔다. 토요일에 적어둔 것들이 있었다. 마커를 들었다. 뚜껑을 땄다. 추가로 적었다.


탄소연대: 기원전 280년 (±50년)
로마: 이탈리아 반도 통일 중 / 포에니 전쟁 직전
한반도: 고조선 후기 / 철기시대
실크로드: 아직 개척 전 (BC 130년경 개척)
로마 최동단: 메소포타미아 (AD 116, 트라야누스)
???


다섯 줄을 추가했다. 그리고 큰 물음표를 세 개 그렸다.


정오가 되었다. 점심을 간단히 해결했다. 편의점 도시락. 이수진이 사 왔다. 김치볶음밥, 제육덮밥, 참치마요, 불고기. 각자 골랐다. 먹으면서도 계속 생각했다.


박재원이 스마트폰으로 다시 확인했다.


- 실크로드 개척... 기원전 백삼십 년경. 한나라 장건.

- 그럼 기원전 이백팔십 년엔 실크로드가 없었네요.


이수진이 말했다.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 어. 그전엔 중국과 서역이 단절되어 있었어. 흉노 때문에.

- 바닷길은요?


현진이 물었다.


- 더 없어. 해상 무역로는 훨씬 나중이고.

- 그럼 어떻게 온 거예요?


로시가 물었다.


- 그게...


박재원이 도시락 뚜껑을 덮었다.


- 그게 문제야.


오후 한 시, 로시가 고개를 들었다. 노트를 들어 올렸다.


- 일부 해독했어요.


모두가 모였다. 로시의 노트. 설형문자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 옆에 해석. 연필로 쓴 글씨.


- 여기 이 부분이 신의 이름이에요.


로시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 뭐라고?



[계속]


keyword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