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분동지 신혼(그림) 일기
잠이 오지 않는 밤들이 있다. 언제나 곁에서 함께 잠드는 사람이 없는 날, 그런 날은 일찍 잠이 들어도 새벽 2-3시쯤이면 언제나 깨곤 한다. 그리고 여전히 곁에 없는 그를 느끼며 나는 조금 마음이 울적해지곤 했다.
'아무리 사회생활이 이런 것이라고해도 새벽 두시까지 들어오지 않는 건 너무 한 거 아니야?'
갑자기 혼자 남겨진 방에 내가 만들어내는 작은 소음들이 유난히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오지도 않는 잠을 어떻게든 청해보려 한 시간이 넘게 애꿎은 이불만 부스럭 거리고 있던 중이었다.
그리고 설핏 잠의 끝자락을 잡을 듯 할 무렵, 그제서야 그가 열쇠를 짤랑거리며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런 대꾸도 없이 바닥에 쓰러져 그는 몇 번을 웅얼거리더니 결국은 화장실에서 속을 비워내고 그제서야 잠들었다. 행여라도 내가 깰 새라 그는 차가운 부엌 바닥 어딘가에서 잠을 자고 있다.
움푹 패인 눈 밑, 하루종일 절어버린 머리카락, 무릎이 튀어나온 청바지...
그는 언제나 잠이 든 나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고 했지만 나 역시, 잠이 든 그를 보면서 가장 쓰린 마음의 사람이 된다. 하루종일 얼마나 집요한 사람들에 시달리며 집으로 돌아온걸까. 그는 집에만 돌아오면 가까스로 잡고 있던 긴장의 끈을 놓아버리고 만다.
애처로운 표정으로 그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고 나면 어느 새 걱정과 애처로움을 잊어버릴만큼 신경을 긁는 코골이가 시작된다. 새벽 2시 반, 3시, 3시 반.. 오지 않는 잠 너머로 그의 끊이지 않는 코골이와 온 몸을 뒤척이는 소리 그리고 하염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느껴진다. 다음 날 출근을 해야한다는 사실이 나를 더 예민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이었다.
결국 참다 못한 나는, 엄청난(?) 일을 감행하고 말았다.
짜증과 분노를 웃음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평소에 눈여겨 보았던 그의 가슴털을 면도기로 깔끔하게 깎고 덤으로 웃고 있는 스마일들을 가슴 양쪽에 예쁘게 그려넣어 주었다. 그가 즐거워 하는(?) 상상만으로도 새벽 3시 반까지 잠 못든 나의 애환이 스르르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결국 우리는 그 누구도 화나지 않은 채로 다음 날을 맞이할 수 있었다.
물론, 가슴 뿐만 아니라 양쪽 손톱 가득 앙증맞은 네일아트까지 서비스로 제공해주었다. 술로 인해 지각을 한 그는 헐레벌떡 샤워를 하며 한 번 놀랐고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있는 본인으로 향하는 누군가의 시선을 통해 두번의 놀람을 겪었다고 했다.
물론 찡그리는 얼굴 대신, 밝고 행복하게 웃고 있는 손톱을 선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