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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Nov 10. 2019

오랫동안 미워했던 사람에게

오늘은 병원 면회를 다녀왔습니다

 오늘은 정신과 병동에 다녀왔다. 

몇 번을 다녀가겠다고 했지만 실제로 병원으로 걸음을 옮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여전히 소란스러운 정치판과 말도 안되는 상황을 옹호하는 현수막들을 지나며 삶이라는 여정 위에서 살아야겠다는 의지조차 없을지도 모르는 사람들도 당신들이 농성을 하고 있는 공간 어딘가에서 어렵게 살아가고 있으니 부디 조용히 해달라는 말을 무척이나 건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걸음을 옮기느라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어야했다. 



 오늘 내가 면회를 가는 사람을 나는 오랫동안 진심으로 미워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은 사실 스스로의 삶까지도 피폐하게 만드는 일이었기에 결국 나는 살면서 가장 아끼던 것들을 포기하는 선택을 했다. 애정해 마지 않는 일을 버렸고 인생의 전부였던 호주를 등지고 돌아왔다. 그 시절의 나는 가난했고 가난은 전부 그의 탓이라고 여겨왔다. 그와 함께 일을 해왔던 사람들이 말하곤 했던 레퍼토리 속에서 가난은 필수 요소라는 것을 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점차 깨달아가고 있었다. 내가 호주에서 해오던 일은 분명 의미있고 미래 지향적인 관점에선 훌륭한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것은 다수를 위한 일이었으며 정작 그 속에서 살아가는 나는 지나치게 가난한, 스스로를 희생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한국에서 호주로 여행을 온 사람들이 나에게 어렵지 않게 건내던 "너무 부러워요. 호주에서 이렇게 살 수 있다니"라는 말은 한 때 나에게 조롱처럼 여겨졌다. 돈을 벌고 가족과 주변에 떳떳한 삶을 사는 것이 더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사실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고 있는 것인지 나는 알지 못했었다. 부모를 등지고 집을 나오면서까지 선택한 일을 포기하고 돌아간다는 사실도 나에게는 무척이나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기에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흘러가는 시간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어려운 상황과 나를 그 상황 속에 남겨둔 사람을 미워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어렸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그 것 뿐이었으니까 말이다. 몇 년의 시간이 흘러 결국 마침표를 선택하게 되었을 때 나는 나를 비난하고 힐난하던 그리고 이따금 손찌검을 하던 그 상황들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그런 행동들이 결국 당신에게 어떻게 돌아갈 것인지를 차갑게 쏟아냈다.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장소였고 만나지 않게 될 사람이라고 믿었기에 그토록 차갑고 냉정할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너무나도 미워해서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치가 떨리던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 병원 별관 건물 앞에 덩그러니 서서 층별 안내 표지판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처음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땐 자업자득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서는 결국엔 나의 미움 때문에 이 모든 상황들이 찾아온 것이 아닐까 자책하는 일이 더 짙어졌다. 자꾸만 풀리지 않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먼 발치에서 듣고 있는 일을 꽤나 괴로운 일이었다. 나는 그토록 바랐던 평범한 삶을 살면서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을 받고 가족과 주변인들에게 때론 베풀기도 하며 살고 있는데 정작 내가 떠난 그 곳은 점점 더 황폐해져가고 있었다. 사고를 겪은 후 결코 회복되지 않는 한 사람의 삶과 한 때 내가 청춘을 바쳐 일궈온 것들이 부숴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나에겐 너무도 괴로운 일이었다. 한 사람을 미워하는 일에서 벗어나기까지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그때는 왜 그러셨냐고, 왜 나를 그렇게 가난하게 살아가도록 해야했냐고, 그때 나를 왜 때려야했는지에 대한 물음은 이미 잊혀진지 오래였다. 나는 한 사람의 인간이 되어서 또 다른 사람을 마주하러 병원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정신과 병동에 들어가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입구에서 가족의 일원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1분의 침묵이 있고서야 들어가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가방과 핸드폰을 모두 사물함에 넣어두고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채로 병실로 걸어 들어갔다. 비어있는 병실의 하늘색 침대를 잠시 둘러보다가 익숙한 이를 찾기 위해 걸음을 옮긴 휴게실에는 의욕도 의지도 없는 익숙한 뒷모습이 TV를 보고 있었다. "똑똑"하고 소리를 내자 돌아본 누군가의 눈에는 반가운 기색이 가득 비쳤다. 보호자가 있어야 비로소 바깥 산책이 허락된다며 차가운 공기가 또 커피 한잔이 먹고 싶다고 했다. 사고가 난 이후로 쉬이 잠들지 못하는 터라 오전에 딱 한 잔의 커피만 허락된다했지만 하루쯤은 규칙을 어겨도 괜찮을 거라 믿으며 우리는 산책겸 나간 병원 인근의 카페에서 따뜻한 라떼 두잔을 주문했다. 언제나 얻어먹기만 했던 나는 이제 커피값을 계산할 줄 아는, 곁에서 보폭을 맞춰 같이 걸을 수 있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인생에서 너무도 크다고 느꼈던 사람이 작아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무척이나 슬프고도 아픈 일이었다. 그 사람이 병원 환자복을 입고 연초를 피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은 더 가슴 아픈 일이지만 나는 이젠 쭈그려 앉아 시선을 맞추고 연초 두개피 즈음 피우는 모습을 기다릴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



 미움을 내려놓을 때까지 묻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미움을 참지 못한 날에는 날이 가득 선 글들을 화면 가득 쏟아놓은 적도 있었고 수화기 너머로 분노를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그 누구보다 마음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산티아고를 걷고 돌아와 아빠에게 원망했던 마음을 전했을 때 흔들리던 아빠의 눈동자가 내 앞에 웅크리고 앉은 사람의 것에서 똑같이 느껴지던 그 순간, 나는 미움을 내려놓았다.가을이 저물고 있는 병원의 가로수들을 지나쳐 걸음을 옮기면서 서른 두살의 겨울에야 나는 비로소 어른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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