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먹은 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고, 사람에 실망하고, 반복되는 실패 속에 좌절하고, 나의 한계에 부딪히고, 내가 잘 못하는 것에만 주목되고,
그러다 내가 너무 작게 보이다 못해 아무것도 아닌 거 같은 하찮은 초라함에 몸부림치는 날
내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그리고 나와 같은 하루를 보낸 누군가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다.
"넌 중요해"
가깝거나 멀거나 크거나 작거나 맨 먼저 거나 나중이거나 어쨌든 넌 중요해
그런데 네가 중요한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지 않아. 그냥 넌 중요해.
작아서 너무 작아서 잘 안 보이는 것도 있지
큰 흐름을 따르는 이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어.
맨 먼저 가기도 하고 맨 나중에 가기도 하지
...넌 중요해
무언가 거의 손에 닿지 않는 곳에 있을 때,
모두들 너무 바빠서 아무도 도와줄 틈이 없을 때,
...넌 중요해
때때로 길을 잃은 것 같고 외롭게 느껴지기도 할 거야
그래도 넌 중요해
작아서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 않는 것도 있지..
넌 중요해
안나 프로이트에 따르면 "대상 항상성은 그 사람이 비록 불만족스러울 때에도 계속 애착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능력, 동일한 대상에 대해 사랑과 적개심의 두 감정을 동시에 인식하고 인정하는 능력."이라고 한다. 대상 항상성은 한 사람 안에도 좋고 나쁜 게 다 있을 수 있다는 걸 아는 능력이다.
이 대상 항상성은 만 3세가 되어야 겨우 시작된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만 3세 전에는 아직까지도 좋은 엄마와 나쁜 엄마가 같은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만큼 서로 결이 다른 두 마음을 동시에 지닌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대상 항상성이 생기면 아이는 엄마가 옆에 있을 때나 없을 때도, 엄마는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나에게 다시 돌아온다는 걸 알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유튜브를 안 보여주는 엄마가 그 순간 너무나도 미울지라도, 그래도 엄마는 날 사랑하고, 나도 엄마를 사랑한다는 두 가지 마음을 동시에 지닐 수 있게 된다.
대상 항상성은 우리가 살아나갈 때 무엇보다 필요하고 중요한 능력이다. 대상에 대한 안정적인 느낌을 갖게 하고,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해서 부정적인 감정이 느껴질 만한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정서를 기억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상 항상성은 "통합적 관점"을 제공해 준다.
그리고.. 내 어떤 모습이라도 "중요해"라고 이야기해 주는 이 그림책도 내게 잔잔한 위로와 함께 통합적 관점을 제공해 준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굉장히 좋거나 또는 굉장히 나쁜 사람은 없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굉장히 좋은 하루 또는 굉장히 나쁜 하루란 없다. 내가 없애버리고 싶을 정도로 싫은 내 모습도 있는 반면 참 괜찮은 내 모습도 공존한다.
힘들다고 대충 보니까 작아서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 않을 뿐... 너무 싫은 내 모습이 부각돼서 보이니까 괜찮은 내 모습이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일 뿐..
나는 좋고 나쁜 게 다 함께 버무려져 있는 통합적인 인간이다.
나는 내가 느꼈던 것처럼 그렇게 형편없지도 않고, 그렇다고 내가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때처럼 아주 대단하지도 않다는 걸 인정해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중간을 봐주고 이만하면 괜찮다고, 이만하면 나는 중요하다는 걸 알아준다. 넌 중요해. 그냥 너라서 중요해.
그래..
이 시선으로 나 자신을, 상대를, 그리고 우리 아이들을 바라봐 주면 참 좋겠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을 통합시킨 그럭저럭 괜찮은 나와 네가 살아가고 있다고, 그리고 엄마로서의 나도 이만하면 참 괜찮은 거라고. 이만하면 참 많이 노력하고 있는 거라고..
전체적으로 나를 봐주니까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정말 애 많이 썼구나.. 참 고맙다."
무엇보다 나의 하루를, 내 마음을, 내 상황을 나보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계신 그분의 시선과 마음을 느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상황에서라도 "넌 중요해"라고 말해주시는 그분의 음성에 모든 것이 잠잠해지고 괜찮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