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고 싶은 것이 참 많은 엄마다.
그냥 나로서 잘 하고 싶은 것도 있지만 또 엄마이기에 아이들도 잘 키우고 싶다.
욕심 많은 내가 하루하루를 정말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고 있지만..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 밤이 되면 어딘가 마음이 휑할 때가 많다.
앞으로의 막연한 미래에 대한 막막함이 내 마음을 압도해 버리고,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불안해져 이것저것 하다가도 난 뭘 하고 있는가 허무함에 마음이 시리고,
그럼에도 어떻게든 내가 속한 현실을 살아나가야 하기에 마음의 발만 동동 구르게 된다.
육아, 요리, 일, 상담 등등 좀 더 뚜렷하게 자기만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지인들이 부럽다.
내가 모호하고 애매하게 느껴진다.
... 다 잘하고 싶었지만 결국 난 뭐 이도 저도 아닌 거 같다.
아이들마저 마음만큼 잘 따라주지 않는 날은 더 힘들다.
애매한 나에 대해 자신감이 없어진다. 이대로 이렇게 살아도 될지 방향에 대해 의문이 든다.
아이들을 이렇게 키우는 것도 괜찮을지, 너무 아무것도 안 해주는 것 같고 생각에 꼬리를 물고 가다 보면 별게 다 걱정이다.
......아니야 잠깐 stop.
이렇게 조급하게 달려나가는 마음을 멈추고 기도하는데, 문득 며칠 전 딸에게 읽어주고 싶어 빌려온 그림책이 생각났다.
내가 잘하는 건 뭘까
"누구나 잘하는 한 가지는 있어요. 그걸 쓰면 돼요."
내가 잘 하는 걸 써보라는 선생님,
그때부터 주인공의 고민은 시작된다.
내가 잘하는 걸 찾아야 하는데 자꾸 다른 사람들의 잘하는 것들이 먼저 떠오른다.
엄마는 안내장을 기가 막히게 잘 찾아내고,
가케부는 달리기를 제일 잘하고,
유키는 노래를 잘 하고,
미키는 발표를 잘 한다.
... 아니 사실 지금 내가 딱 이러고 있었다.
누구는 이것도 잘하고, 누구는 이거도 잘하는데.. 난 이거저거 다 해도 둘 다 잘 못해..라며..
비교하는 것이 나쁜 거라는 걸 머리로는 잘 알지만
너무도 자연스럽고 익숙한 인간의 본성이기에 방심하는 순간 이렇게 마음의 틈을 내어주게 된다.
그렇게 되면 본연의 내가 보이지 않고 안개 낀 것처럼 희미해진다.
주인공의 마음에 공감해 보며, 잠깐 멈춰 서서 다시 한번 내 마음의 문을 정비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잘하는 걸 찾지 못한 주인공은 눈물이 날 거 같은가 보다.
애꿎은 지우개만 이리저리 쥐어본다.
되게 낙심되겠다. 진짜 잘하는 게 없다고 느껴지니까.
때로는 사실 그 자체보다 느낌에 마음이 무너진다.
잘 하는 게 있더라도 자신이 못한다고 느끼면 나에게는 "못한다."라는 것이 사실이 돼버린다.
남들이 나에게 아무리 잘한다 잘한다 하더라도 내 스스로가 "나는 별로야, 애매해"라고 느껴버리면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이 돼버리는 것 같다.
사실이 아니다. 내 느낌인데.. 진짜 이 주인공 아이도 제일 잘하는 게 없었을까, 그건 아닐 건데.
다행인 건, 솔직하게 자기 마음을 믿을만한 누군가에게 털어놔본다.
내가 지금 이 공개적인 일기장에 마음을 털어놔보는 것처럼.
사실 어른이 된 나는 이게 점점 부끄럽다.
자신이 없을 때도 자신 있는 척하고,
괜찮지 않을 때도 괜찮은 척하고,
나를 좀 그대로 드러내보기보다는 포장하는 데 점점 더 익숙해진다.
어른이 된 나는, 엄마인 나는, 선생님이자 상담자인 나는 내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이 꽤 어렵다. 의연하고 괜찮은 척하는데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주인공 아이의 용기에 감탄했다.
내 비참하고 초라한 지금의 마음을 좀 솔직하게 고백해 봐도 괜찮겠다는 다짐이 선다.
있는 그대로 자신을 드러내고 진솔하게 고백하니 자신의 진가를 알아봐 주는 누군가가 나타난다.
선생님이 스스로 생각지도 못한 장점을 찾아준다.
사실 이 아이는 다른 사람의 장점을 누구보다 잘 발견해 주는 엄청난 재능이 있었다.
세상에, 나도 못 찾았는데...... 이 선생님 너무 멋있다.
나도 이렇게 누군가가 가진 고유성을 발견해 내주는 사람,
그 사람의 색과 결을 인정해 주는 사람,
노력의 과정을 지켜봐 주고 격려해 주는 사람,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보석 같은 면을 알아채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구나 자신의 잘하는 걸 진심으로 인정받을 때, 다시 나아갈 힘을 얻는다.
가벼워 보이는 발걸음을 보니 이 아이는 쪼르르 달려가 엄마 아빠에게 자랑할 거 같다.
"엄마엄마!! 나는 누군가의 장점을 진짜 잘 찾아내요! 장점 찾아내기 선수에요!" 하고.
이 밤, 그래 나도 내 진가를 한 번 알아봐 주자고 생각하면서 잘하는 걸 쭉 써내려가 봤다.
가식적인 것 말고 진짜 나를 알아야만 발견할 수 있는 나만의 장점,
눈에 띄는 좋은 것이나, 돈이 되는 좋은 것이나, 아주 실질적인 결과물이 나올 수 있는 어떤 것과 상관없이 그저 나라서 괜찮은 것들.
그러니 나라는 사람이 점점 뚜렷해진다.
좀 애매모호한 면이 있긴 해도 그래서 이것저것 적당히 잘 하고, 더 융통성 있고, 마음이 넓다.
나름 괜찮구나 나도.
그리고 나니 우리 아이들의 진가가 보인다.
그들만의 고유한 개성에 참 감사하다.
느리며 느린 대로, 크게 울면 크게 우는 대로, 여리면 여린 대로 다 좋다.
그것이 곧 이 아이들이 품고 있는 보석 같은 달란트 일 테니까.
나 스스로에게, 나라서
내 아이들에게, 너희들이라서
이래도 저래도 다 괜찮고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