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미는 아프리카 초원에 사는 생후 2년 된 치이타입니다. 얼마 전에 3마리의 새끼를 출산하였으나 두 마리는 잃고 오직 한 마리만을 데리고 살고 있었습니다. 엄마 치타 미미는 새끼를 포식자로부터 보호해야만 합니다. 사자나 하이에나가 주변에서 호시탐탐 어린 치이타를 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새끼를 먹이려면 사냥도 해야 합니다. 어느 날 미미는 새끼를 잘 숨겨 놓고 사냥을 나갔습니다. 아무리 맹수라도 사냥하기는 만만하지가 않습니다. 사냥을 잘한다는 치타의 사냥 성공률도 20% 정도라 하니까요. 그날도 미미는 사냥에 실패하고 새끼에게로 돌아갔으나 그 자리에 새끼가 보이지 않습니다. 주변을 다 돌아다녔으나 결국은 새끼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아마도 하이에나에게 당한 것 같습니다. 미미의 새끼 찾기는 그 뒤로도 한 달 이상 계속된다는 말에 가슴이 찡했습니다. 자연이 참 냉혹합니다. 어린 어미 미미는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당당한 어미 치타로 성장해 갈 것이라는 해설자의 말이 내 귀에 오랜 여운을 납깁니다.
결혼 후 일 년이 지나 우리에게 첫아기 소식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아기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부모가 될 준비가 덜 되었었나 봅니다. 다시 아기를 얻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습니다. 아내는 여자들이 한 달에 한번 하는 달거리를 규칙적으로 하질 않습니다. 아내 말에 의하면 대략 3개월에 한 번 있답니다. 나는 아내의 배란일을 찾기 위해 매일 아침 잠자리에서 깨자마자 아내의 기초체온을 체크하였습니다. 누워있는 아내의 입에 체온계를 물려주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온도를 읽어 기록합니다. 이 일을 매일 아침마다 한 일 년은 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의 노력이 인정되었는지 다시 우리에게 아기가 왔습니다. 결혼 4년 만에 첫 아이가 태어났고, 다음 해에는 생각지도 못한 둘째가 왔습니다. 이렇게 나는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이재현 씨는 지는 법을 배워야겠네요
직장 동료가 나에게 했던 말입니다. 지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던 사람이었습니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정도 되었을 때로 기억합니다. 가수 현진영이 한창 인기가 있었습니다. 추석에 할아버지 댁에 가는 도중에 차 안에서 아이가 힙합 바지를 입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너무 놀랐습니다. 할아버지가 보면 애들 교육을 어떻게 시키느냐고 한 말씀하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딸아이에게 바지를 바꾸어 입으라 말했으나 딸아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짜증을 내었습니다. 나는 딸의 태도에 화가 나 당장 옷을 벗으라 했으며, 그런 바지나 입고 다니니까 아빠에게 버릇없이 구는 아이가 되었다고 말해버렸습니다. 그리곤 창문을 열고 그 옷을 창밖 도로가에 던져버렸습니다. 새벽에 잠이 깨었는데 어제 일이 생각이 났습니다. “도대체 내가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나는 차를 몰고 어제 그 장소로 갔습니다. 다행히도 그 힙합바지는 이슬에 젓은 채로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난 딸아이가 빨랫줄에 널려있는 바지를 보며 “어! 내 바지네!!”라며 미소 지었습니다. "밤새도록 계룡산 정기를 머금은 옷이야"라고 말하며 나도 웃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지는 법도 배우고 말투도 바꾸며 조금씩 조금씩 변해 갔습니다.
대학생인 딸이 방학이 되어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발톱에 빨간색 매니큐어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지금껏 한 번도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한 적이 없습니다. 나는 은근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때는 그것이 여성의 우아함의 상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나 봅니다. (물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딸이 손톱도 아닌 발톱에 매니큐어를 하다니 그것도 빨간색으로. 나는 도저히 그것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점잖게, 그렇지만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아빠는 네가 발톱에 매니큐어를 한 것을 보기가 힘들다. 그렇지만 성인이 된 너에게 하라 하지 말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내 공간(나의 집)에서 난 그 모습을 안 보았으면 한다.” 지금 생각하면 예의로 포장된 잔인한 요구였습니다. 다음 날 딸아이는 그것을 지웠습니다. 이제는 그 아이가 나에게 져 준 것입니다. 이렇게 아이들은 나를 넘어 성장해 나갔습니다.
오늘 아침에 아들과 통화를 하였습니다. “아버지가 누나를 많이 힘들게 한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너에게는 그렇게 가혹하게 한 적은 없었지?” 어느 날 아버지가 자기가 책상 밑에 숨겨 놓은 만화를 발견하였답니다. 아버지는 그 만화들을 집어던지며 자기에게 “너는 인간도 아니라”라고 말했답니다. 절대로 나는 그런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을 거라고 항변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그때 그 말이 아직도 자기 기억에 또렸이 남아 있답니다. 나보고 지금은 다 이해하니까 너무 염려하지 말라네요. 무엇을 이해한다는 걸까요. 우리 아버지는 예전에 어린 아들에게 인간도 아니라고 말하는 비인간적인 사람이었었다는 것을 이해한다는 말인가요?
나는 지금 궁금합니다. 내가 힙합바지를 창 밖으로 던졌을 때, 발톱의 매니큐어를 지우라고 요구했을 때, 딸아이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런 나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아이들이 고맙습니다. 아이들의 부모 역할을 해오는 과정에서 나는 성숙한 인간이 되어갔습니다.